엄마가 갑자기 없어진 지 삼 개월이 며칠 못 되는 오늘 아침. 그간의 고통과 번뇌가 무색할 만큼 평화롭다. 아빠는 거실 소파에, 우리 부부는 식탁의자에 앉아 각자의 커피를 마시며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티브이에서는 외국의 성공한 헬스 사업 여성 오너가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 중 아무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자세히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앵커는 검은 머리 한국인인지 영어를 참 고급스럽게 구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존재한 적이 없는 듯 공간의 여백에 엄마의 자리가 점점 줄어 이대로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아 약간 공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웃고 있는 사진 속에서 엄마만 깔끔하게 삭제가 되었는데 나 빼고 아무도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한 느낌이랄까.
<차가운 평온>이 맴도는 우리 집의 일상생활. 가능한 한 엄마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어떤 약속이나 된 듯. 각자가 엄마의 생각에 힘들만한 물건, 음식을 가차 없이 버리며 엄마의 흔적 지우기나 한창인우리 집에서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예외 없는 모습이다.
아빠는 지난 한 달 사이에 컨디션을 좀 더 회복해 매주 목요일 한 번이지만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은 MBA 기말고사 공부로 단지 내 독서실에서 공부가 한참이다. 나는 경찰로 남겠다는 결심과 동시에 그간 붙잡고 있던 행정법 과목 공부를 덮은 대신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통번역 대학원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7월 3일이 입학시험이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하루에 네 시간씩 남편이 가있는 독서실에 내려가 볼 예정이다. 아, 제일 중요한 것은 엄마를 추모하는 마음에서 쓰기 시작한 이 글들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내기 위한 출간 계약서를 작성했다.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심심찮게 들리는 세상에서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가 비슷한 가정에 예방주사쯤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
안마의자에 누워 엄마가 죽고 3개월 때의 나는 어떤가를 되짚어보는 중에 몇 번이고 앞서 두 달의 기록을 들춰보았다. 그날 글을 쓰던 나의 감각이 되살아나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이라는데 아픈 기억도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발가벗은 채로 화상을 입어 날뛰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기분>이라든지 <체념에 가까운 묵념>이라든지 지난 두 달 동안의 감정들은 내 것인데도 낯설게만 느껴져 가슴에 진한 통증이 느껴졌다.
엄마가 죽은 지 석 달째. 우리 집에 감도는 <차가운 평온>은 언제든지 다시 불쏘시개로 쑤시면 아작 날 것 같은 불완전한 평온이다. 우리 가족은 평온을 재건하는 중에 또다시 재난을 맞이하면 안 되고 새로운 고통을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가 임계치에 달해있다. 그렇기에 요즘의 우리는 끝없이 <버리고 또 버리고>의 연속이다. 엄마가 생각나는 물건들은 치워도 치워도 어디에선가 굴러 나오고 석 달 전 정성껏 만들었을 반찬들은 냉장고에서 썩고 있다. 아빠는 집에 있는 시간 대부분 그것들을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도 막상 맛있는 반찬이 올라오면 으레 이거 너네 엄마가 한 거냐, 하고 묻는다.
산 사람은 살아진다. 어떻게 해야 더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답은 못하겠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각각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몰입할 어떤 것들을 찾아 나서 제 역할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잘 버티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엄마가 그립다. 나는 얼마 전에 엄마가 걸어준 목걸이를 빼고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가 하던 목걸이를 걸었다. 아빠는 내가 끄집어 내온 것이 뭔지 대번에 알아채곤 너한테 이게 어울리냐는 둥 잔뜩 구시렁거렸다. 그러면서도 익숙한 솜씨로 목걸이를 걸어주고 흘끗 쳐다보더니 시선을 피했다.
몇 달 전이나 지금이나 우린 모두 가슴에 구멍을 안고 살지만 갓 상처가 났을 때 너덜거리던 상처 겉면은 이제 간신히 둥글어지고 피가 멎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말하는 <차가운 평온>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