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된다

#90. <죽겠다고 엄살 부리던> 엄마와 <진짜 죽은> 엄마

by 풍선꽃언니

5월 초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내 발로 걷어찬 의자에 부러진 내 발가락. 철심 박는 수술을 했고 며칠 전에 철심을 뽑는 것으로 붕대도 풀고 드디어 맨발로 땅을 디딜 수 있다.


"아씨, 다 나은 거 맞아? 아파 죽겠네"


발을 딱 디뎠다. 발가락이 너무 오래 한 방향으로만 펴져 있었나 보다. 발바닥을 땅에 대자마자 아파 죽겠네, 하고 내뱉은 내 말을 내 귀로 들으며 온 몸에 기분 나쁜 통증이 싸악 퍼져나갔다. 흠칫 놀랐다. 발가락의 알싸한 통증 때문이 아니라 엄마를 너무 닮은 내 말투 때문에.


엄마는 과장된 몸짓을 가진 사람이었다. 안과를 가서 검사를 받고 백내장이 올 수도 있으니(혹은 그럴만한 전조증상이 있으니) 몇 달에 한 번씩 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말을 들었다면 엄마는 집에 와서는 "나 백내장 올 수도 있대. 실명할 수도 있어" 하며 호들갑을 떠는 식이었다. 나는 엄마의 과장됨이 싫었다. 가족들의 관심을 바라기에 자신의 몸이 아프다는 것을 화제 삼아 내세우는 엄마의 태도는 언젠가의 내 외할머니와 무척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첨언하자면, 외할머니는 멀쩡히 걷다가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면 손 지팡이를 쥐고 연민을 사는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엄마의 과장됨에 놀라는 건 늘 나뿐이었다. 아빠는 엄마가 눈앞에서 갑자기 쓰러져도 안아 일으켜는게 전부였고 그렇게 하면 엄만 정말 좀 전에 쓰러진 사람이 맞는지 멀쩡해졌다.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도 그때그때 엄마의 (이를테면) 쇼 같은 각종 '앓이'는 나를 심난하게 했다. 감정선이 복잡한 엄마를 대하며 나는 점점 말이 많아졌다. 하지 말라, 그러면 안 좋다 하는 내 잔소리 따위는 듣지 않는 엄말 짊어지고 산다는 건 일생의 내가 누리는 모든 행복에 죄책감으로 따라붙었다. 이를테면 여행을 가서 남편과 웃고 있는 순간에도 곳곳의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전송해주고 여긴 어딘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엄마와 이곳에 못 와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엄마는 죽겠다는 소리가 입에 붙은 사람이었다. 뭐만 하면 미워 죽겠고 슬퍼 죽겠고, 아파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가령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어떤 화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조차 엄마는 자신만의 감정의 극단에 빠져 자신의 세계에 공감을 못하는 가족들을 원망했다. 우리 모두는 남편의 회사생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 혼자 남편에게 오늘 수영장에서 있었던 어떤 미친 사람 얘길 한다던지 화제와 어긋난 이야기들을 쏟아 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와의 대화가 쉽지 않다고 느꼈고 이따금씩 엄마가 끄집어내는 화젯거리를 들어도 못 들은 체, 무시하며 한 식탁에 난잡하게 펼쳐지는 대화를 해나갔다. 그런 엄마의 (죽겠다는) 말들을 듣는 인내심을 가진 것은 가족 중 남편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엄마의 시선은 남편을 향해 있었다. 남편은 아빠와 나를 포함한 한 그룹의 대화와 엄마와 본인으로 구성된 또 다른 그룹의 대화를 동시에 해나가는 애매한 입장에 놓이곤 했다.


엄마는 올 2월 초 갑자기 식탁에 앉아있다가 고민이 있노라,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문인협회의 김○○을 다시 고소하고 싶다,
그 사람이 엄마의 글들을 MBC에 팔아넘겼다.
사생활이 감시당하고 있다. 죽고 싶다.

나는 엄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심정이 었다. 지난 반년 이상 잠잠하던 엄마의 피해망상이 다시 재발한 것이다. 나는 마구 화를 냈다. 제발 정신 차리라고 내가 엄마 때문에 미치겠다고. 다들 힘들어하는 게 보이지 않냐고. 엄마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고 그다음 주부턴 나의 방문을 격하게 거부했다. 걱정되어 매주 찾아가면 퀭한 눈으로 신경안정제의 몽롱함에 취해 송장 치르러 왔냐는 둥 실망스러운 소리만 늘어놨다. 나는 아빠에게 엄마 다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엄마가 차라리 확 미쳤다면 병원에 입원시키는 게 좀 편했을 텐데 엄마는 멀쩡한 의식으로 유독 사생활의 관여에 대해서만 민감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맨 정신이라고 강력히 우기는 엄마를 병원에 입원시키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고 엄마는 비쩍 말라갔다.


엄마의 푸념은 병세가 악화될수록 더욱 극악무도 해졌다. 첨단 드론과 마이크로 칩까지 등장하는 엄마의 망상 속에서 가족들은 끝없이 그런 일은 없다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싸우기를 반복했다. 망상에 첨단과학을 접목시키려면 어떤 학습이 있어야 할 텐데 어디서 도대체 저런 정보들을 얻는 것일까. 엄마의 푸념의 끝이 '죽겠다'에서 '죽고 싶다'로 변하는 동안 가족들은 상식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 엄마를 어떻게 안정시켜야 할지 답을 찾아 헤매었다. 죽고 싶다던 엄마가 죽었을 때는 엄마가 자살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정황적 근거가 있었기에 엄마 자살의 증거를 찾아 헤매었다. 결과적으로 실족사로 결정이 난 지금도 나는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면 어떤 납득할만한 설명이 충분히 되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만약 내가 그때 엄마와 대화를 더 많이 했다면..."

"만약 내가 엄마가 죽고 싶단 때 병원에 데리고 갔다면..."


늘 엄마의 죽겠다는 말에 속기만 했는데 정말 엄마가 죽었을 때는 속수무책이었던 내가 한심했다. 죽겠다 죽겠다 하던 엄마와 배고파 죽겠네 힘들어 죽겠네 아파 죽겠네 온갖 죽겠다는 한탄 속에 파묻힌 내가 오버랩되었다. 나도 죽는 타령 하다가 언젠가 말이 씨가 돼서 진짜 죽겠을 때 아무도 없이 혼자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엄마처럼.


"죽겠다"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말이다. 아마도 횡단보도 앞에 앉아 두 시간 정도 서있으면 전화기에다 대고 죽겠다는 말을 쏟아내며 걸어가는 수도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게는 정말 죽을 지경으로 괴로워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엔 진짜 내일 죽어버릴 사람도 숨어있을 수 있다. 엄마처럼.


나는 내입이 무서워졌다. 나는 불완전한 평온이나마 따뜻한 가정 안에 다방면으로 지지받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엄마와 딸은 많이 닮는다는데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죽겠다는 말이 씨가 되어 내게도 어떤 사고가 벌어지는 불행이 닥치지는 않을까. 혹시 내 방정맞은 입으로 인해 가족의 심연이 다치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나는 앞으로 죽겠다, 라는 말에 좀 더 조심스러워질 것 같다. 내입에서의 그 말도. 타인의 입에서의 그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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