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장기동. 처음 와보는 동네. 친구 A의 집과 우리 집 딱 중간 장소라 우연히 선택된 장소. 맛집 골목 어딘가의 만두전골집에서 만났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점심 약속이다. 만둣국을 한 그릇씩 하고 근처의 어느 카페에 도착. 나이가 좀 있는 아주머니 한분이 하시는 곳 같았다. 외진 곳에 위치한 것에 비해 손님이 많아 커피맛이 좋을 것을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우느라고커피를 물처럼 들어부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남편이 장례식장 도착하자마자 훌쩍거리기 시작하는 거야 빈소 확인하려고 전광판 보니까 너희 어머니가 제일 젊으셔서.
친구 A가 입을 열었다. 남편과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남편이 울먹이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 이유를.
전광판 앞에 서서 나도 많이 울었는데. 그날 전광판에 망자는 다섯 분 정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죽은 건 하늘의 섭리라고 스스로를 아무리 설득해봐도 영정사진 속의 엄마는 엄마의부모님 뻘 되는 장례 동기들 사이에서 꽃같이 고와 서러웠다. 봉숭아 꽃처럼 환한 엄마의 미소. 내 결혼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 몰랐지만 내 자식들은 할머니의 얼굴을 이 얼굴로 기억하겠지.친구 A 남편이 잠시나마 나와 같은 공감대 속에서 슬픔을 나누었구나. 그 얘기를 듣는 중에 신경안정제로 텐션 다운되어 감정이 둔감해진 내 눈물샘도 놀랐는지 주르륵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아빠도 사업이 어려울 때 갑자기 우울증 같은 게 왔었어 그때 온 가족이 힘들었지
A는 엄마의 사인을 모른다. 대외적인 죽음의 원인은 <심장마비>로 온 식구가 통일했다. 지인들에겐 그에 걸맞은 위로를 받고 있다. A가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꺼낸 것은 엄마의 사인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음을 말했을 때였다. 나를 위로하고 싶었던 A의 마음이 동했는지 한때 자신의 집에 있었던 우환을끄집어냈다.
"내가 영국에 가있을 때 아빠 사업이 많이 힘들었나 봐. 나한텐 내색을 안 해서 몰랐지. 엄마가 나서서 사업을 살리려고 애쓰는데 아빠는 우울증이 생겨서 약 먹고 집에만 있는 거야. 그때 엄마가 저렇게 고생인데 아빠는 왜 저러고만 있지. 화가 많이 났었어. 딸들은 엄마 편 많이 들잖아. 그때는 그랬어. 근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아빠 아플 때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
하마터면 엄마 얘기를 꺼낼뻔했지만 엄마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너무 극적인 엄마 죽음의 전개가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탓에 금기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정신병에 추락사라. 뉴스에서 들었어도 신기할 일이 우리 집에 일어났구나. 애꿎은 커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A는 <슬픔과 조우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함께 말했다.
"슬플 때 마음껏 그 슬픔과 만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 아빠만 해도 자기 회사인데도 힘들어도 참다가 우울증이 왔잖아. 너도 그냥 울고 싶을 때 울어. 난 네가 지금 회사 쉬는 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네가 지금 바쁘게 살면 슬픔을 안고 있다가 확 한 번에 터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공감.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감정을 숨기는데 익숙하여 슬프다고 발악하는 내가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막상 친구 앞에서나 돼야 울 수 있는 내가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슬픔에 공감할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죽음의 사인 하나 말 못 하는 나지만 적어도 나는 엄마의 보호 아래 마음껏 친구를 사귀고 시간을 보낼 여유와 시간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생계와 생존이 전부였던 엄마의 젊은 시절은 나 같지 못했다.
엄마의 엄마로서의 일생은 근사했다. 적어도 아빠나 나, 남동생이 각각 제 몫을 했고 엄말 많이 사랑했다. 그러나 엄마가 아니라 한 가정의 자식으로서, 또 타이틀 다 빼고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 일생은 측은했다. 좋은 부모를 만났다면 또 가슴 터놓을 친구 하나만 있었더라도 엄마는 내 곁에 좀 더 있어줬을까.아니, 사실 그런 게 없다면 내가 좀 더 살갑게 엄마 곁에 머물러 친구가 되어줬다면 엄마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