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아빠와의 전쟁

#93. (합가 일기) 생활습관을 맞춰가는 과정

by 풍선꽃언니
내가 니 하인도 아니고
종일 강아지 돌보고 청소나 하면서
남은 인생 살아야 되겠냐
(너는 잠만 자고)

합가 후의 생활은 일면에선 상처로부터 빠른 회복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론 전쟁과도 같다. 미혼 때 엄마나 하던 잔소리를 아빠가 쫒았다니며 하는 데엔 배겨낼 장사가 없다. "아빠도 그러면서.." 하고 씩씩거리며 덤비기 시작하면 됐다, 하고 끝나버리는 싸움이지만 매일 불협화음과 화음 사이에 끼어 아슬아슬 줄타기 중.


아빠는 습관적으로 에너제틱하다. 집에 있는 동안에도 가전집기의 매뉴얼을 읽고 작동시켜본다거나 건조대 위 빨래 건조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거나 한다. 각종 쓰레기는 생기기가 무섭게 내다 버린다. 결혼하기 전엔 아빤 내게 잔소리 한 번을 하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엄마의 역할로 분리된 몫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스물두어 살 무렵 남편과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당시 강남역 근처에 스무디 킹이 있었는데 그 앞 즈음을 걷던 중 잔뜩 흥분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남편을 바꾸라더니 "얘가 얼마나 웃긴 앤 줄 아니" 시작.

아니 글쎄, 걔 방에 쓰레기통이 있어. 좀 커.
걔가 워낙 지저분해야지. 쓰레기도 쌓아두고 살아서
내가 가방에 쓰레기통을 큰 걸 넣어줬단 말이야.
오늘 내가 비워주다 보니 거기서 구더기가 나왔어
너 구더기 뭔 줄 아니? 하얀 벌레 그거.
걔가 빵 먹던걸 쓰레기통에 버렸나 봐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거기서 벌레가 나오지 뭐니.

남편은 허허실실 웃어버렸지만 엄만 너무 화가 나서 남편한테 그 얘길 하면 내가 좀 고쳐질 줄 알고 대뜸 전화 바꾸라고 야단법석이었던 것 같다. 내 방에 있던 그 쓰레기통이 워낙 커서 거기다가 잘 버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억울했다. 늘 비우는 건 엄마 몫이었으니.

(지금은 내가 얼마나 철딱서니 없었는 줄 안다)


결혼을 하고 나도 내 살림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고충을 이해하는 폭이 커졌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참 많이 했다. 치약은 제발 끝에서부터 돌돌 말아서 쓰라는 둥, 수건을 하루에 몇 장을 쓰냐는 둥 하고 말이다. 살림이 할게 많다는 것을 결혼하고 겨우 알았다. 다행히 남편은 가사분담에 열린 사람이었다. 널려있는 속옷을 필요할 때 걷어입거나 설거지는 몰아서 하는 습관이 어느 정도 맞춰져 우린 적당히 구질구질한 생활에 익숙해졌다.


엄마의 살림을 끌어안은 난 처음에 뭐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필요한 것을 살 때 많이 사서 남동생과 내가 필요할 때 나눠주는 것을 기쁨으로 알던 사람이니 말이다. 락스만 해도 8통이 지금 내 방 화장실 수납장에 가지런히 들어있다. 살림 초보인 나는 엄마와의 오랜 결혼 생활로 구석구석 치우고 정리하는데 달인이 되어있는 아빠를 도저히 배겨 낼 수가 없다. 그런 아빠와 합가해 산다는 것은 구질한 우리 살림을 하나하나 정리해 제 위치를 찾는 것부터가 시작인 줄 미처 몰랐다. 남편은 지난주 일요일 세 시간 동안 아빠의 감독하에 옷 정리를 했다.


두 번째로는 식사문제다. 엄마는 일단 손이 커서 뭘 만들어도 잔뜩 만들어뒀다. 아빠는 늘 <먹어치우는>것이 일이었다. 반면 나는 엄마가 해동시켜 먹으라고 주던 엄마표 밀 키트(meal kit)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니 방금 만든 신선한 고기구이나 생선조림 같은 게 애초부터 될 리가 없었다. 늘 내가 만든 건 다 맛있다고 해주던 남편과 살다 보니 나름 요리에 자신감이 붙었었는데 지금은 뭘 만들어도 맛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니, 맛보다도 양이 적어서 장난치냐는 소리가 반이다. 아빠 배고플 시간을 엄마처럼 턱턱 잘 맞추는 것도 아니라서 과자 봉지를 끌어안은 아빠한테 너랑은 못살겠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 먹고 싶은 시간대를 분명히 말하라며 소리 몇 번 지른 턱에 잠정적으로는 해결이 된 거 같은데 며칠이나 이 평화가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끼니때마다 먹은 것 같지 않다고 하니 매번 고기를 사다가 굽거나 찌기도 지친다. 소든 닭이든 돼지든 고기가 없으면 안 된다는데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그것들이 제때 제양만큼 없을까 봐 불안한 내 심정을 아빠는 알까?


적응은 누구에게나 힘이 든다. 다만 난 결혼 전에 같이 살던 아빠와 결혼 후 '은퇴한' 아빠와 같이 사는 삶이 같을 거라 생각했다.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음을 진작 알았다면 합가를 단 며칠이라도 고민해 봤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가 집에 있다는 것에 적잖은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적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아빠와 합가 하기로 했다고 했을 때 지인들이 놀라워했던 것을 기억한다. 석 달 전의 나는 "그게 뭐가? 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반응들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래도 난 다시 시간을 돌렸을 때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시간은 하릴없이 흐를 것이고, 언젠가 아빠와 나도 원치 않은 순간에 작별을 하게 될 테니 열과 성을 다해 아빠를 보살펴 주고 싶다.


아빠도 나도 지금은 좀 답답하지만 한 두해 지나다 보면 서로에게 중화되어 조금은 더 편해져있지 않을까?


오늘은 아빠와 서로 죽겠다는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나쵸에 막걸리를 함께 나눠마셨다. 다시 잘해보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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