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니던 목욕탕 정기 이용권

#94. 엄마는 외로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by 풍선꽃언니

엄마는 목욕탕이나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자주 보이는 인사들과 안면을 트면 언니, 동생 하며 몇 시간씩 사우나에 죽치고 앉아있곤 했다. 그런 엄마가 답답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데 꼭 목욕탕을 가야 하냐며 몇 번을 화냈다.


"목욕 좋은 거 모르나, 집에서 욕조에 물 받고 지지면 그게 그거지. 제발 목욕탕 좀 가지 마"


엄마는 내 말 같은 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외려 이 시국에 정기권을 50장이나 끊어서 본격적으로 사우나를 다녔다. 한번 가면 몇 시간씩 도대체 목욕을 몇 시간이나 하는 건지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엄만
외로웠던 것 같아

오늘은 아침부터 몸이 찌뿌듯해서 앓았다. 팔다리가 저리고 결렸다. 아빠가 엄마의 목욕탕 정기권을 불쑥 내밀며 목욕이라도 다녀오라고 했다. 열몇 장인가 엄마 유품으로 남은 목욕탕 정기 이용권.


마스크와 수건을 받아 들고 안심콜을 했다. 체온도 재고 입장.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몸의 여인들이 사우나 안이고 탕이고 할 것 없이 미어터지게 앉아있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상할 것도 없는 풍경이었는데 괜스레 부담스러운 느낌에 마스크를 얼른 착용하고 나도 여인들의 무리에 합류하여 자리를 잡았다. 불가마에 들어가 앉으니 마스크 쓴 코와 입이 더 답답했다.


서로 언니, 동생 호칭하는 아줌마 무리가 잠깐 들어 왔다가 나가고, 또 새로운 사람이 와선 반갑게 인사하며 언니, 언니 하는 사람들. 연배로 보아 언니 동생 하기엔 나이가 많이 터울 져 보여 어색한데도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그 광경을 모래시계가 한 바퀴 돌 동안 지켜보며 불가마 안에 앉아 있었다. 엄마도 누군가의 '언니' 였을까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 서늘하게 그리움이 밀려왔다.


아마도 엄마는 외로웠던 것은 아닐까. 이곳에서 그저 어느 마트의 수박이 싼지, 애들 얘기 남편 얘기를 나누는 아줌마들 틈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꼈을 지도.


엄마의 수다스러움은 아줌마들의 그것과 같은 결이었다. 기가 세 보이는 '언니'들은 열두 시에 왔다는데 오후 세시가 된 때에도 하하호호 커피들을 나누어 마시며 이 사람 저 사람 알몸으로 부대끼며 어울렸고 그 모습이 엄마와 오버랩되며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날 약속도 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아줌마들 틈 바구니 속에서 혼자 어색하게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리게도 낯선 기분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집에 있다 보면 때 돼서 들고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꼈겠지. 아줌마들의 건전한 놀이터는 목욕탕 같은 곳이었을 것이고 엄마도 그 사람들 중 누군가의 '언니'가 되어 이런저런 얘기나 나누며 외로움을 달랬을까.


엄마의 행적을 더듬다 보니 몸의 찌뿌듯함은 좀 나아진 것 같은데 가슴의 찌뿌듯함을 새로 입고 목욕탕 문을 나섰다.


"나 목욕탕 앞이야. 우산 잘 챙겨서 나와"


남편이 밝게 웃으며 차를 대고 있다. 잠시나마 침몰했던 나의 기분을 남편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밝혀주었다. 낯선 세상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목욕탕, 아직 상처입은 내 가슴엔 좀 힘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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