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인 60대 노익장의 구직활동

#95. 아빠의 도전

by 풍선꽃언니

1955년생. 아빠는 올해 67세다. 만으로 65세. 작년 11월 31일 은퇴했다. 은퇴하기 전까지 항공정비사로서 일평생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사에 재직했다. 기술직이니까 가능한 것이겠지만 기술직 중에서도 아빠만큼 사회생활의 생명력이 긴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른 다섯 해 내가 겪은 아빠는 언제나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었다.


작년 은퇴할 무렵 퇴직 전 아빠는 계속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 했고 자리를 마련한 뒤 나왔다. 가족들이 반대했다. 항공정비사 업무 특성상 야근이 많은데 평생 일만 하다 죽을 거냐며 특히 엄마가 강력히 반대했다. 이후 아빠는 38년간 해오던 사회생활을 접고 완전히 집에 들어앉았다. 코로나가 좀 진정되면 엄마랑 좋은 곳에 다니며 포도주도 한 병씩 마시고 그렇게 살자 하곤.


2021년 3월. 엄마가 죽었다. 자식들이 분가하고 둘만 살던 집에 아빠만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아빠가 걱정돼서 합가를 말했다. 합가는 한 달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출근하는 남편과 휴직자인 나 퇴직자인 아빠 이렇게 세 식구.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지만 그런대로 천천히 공존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아빠는 집에 있기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늘 그랬듯 새벽 다섯 시 반에 깨어나 운동을 다녀오고 까르 산책을 시킨다. 커피 한잔 마실 즈음 내가 일어나면 몇 시에 깨건 게으르다는 잔소리. 그 잔소리.


유월 초 아빠는 모 저가항공사에서 채용에 지원해주십사 하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는 감격스러워했다. 이 나이가 되었는데도 찾아주는 곳이 있다니. 그러나 엄마가 죽고 나니 삶이 허무해진 아빠는 더 이상 사회생활에 미련이 없었다. 당장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특별히 아빠가 일을 해야 하는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적당히 고사하고 일주일에 두어 번 친구들과 모임을 갖는 것으로 사별의 아픔을 극복하는데 힘쓰고 있던 중이었다.


문제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아빠는, 술로 잠시나마 마비된 슬픔이 해제되 다음날이면 두배로 우울감을 느끼고 온갖 짜증을 낸다는 데에 있었다. 우리 부부와 남동생은 아빠에게 직장을 다니는 것이 어떨지 조심스럽게 권유하기 시작했다.

아빠, 이제부터 일하는 건 돈 때문이 아니야. 그냥 아빠 다니다 힘들면 한 달 만에 그만둬도 누가 뭐랄 사람 없어. 아빠가 무료해하니까 일상을 직장으로 채우라는 얘기야. 안 그러면 아빠가 갑자기 폭삭 늙을 것 같아서

이미 '갈 수 있던 자리'는 물 건너갔고 아빠에게 남은 건 이력서를 통한 정식 지원이었다. 작은 방에서 혼자 뭘 뚱땅거리고 있길래 보니 입사지원서를 인터넷 창에 띄워놓은 아빠. 자격증 번호를 두툼한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입력하고 있길래 사진부터 인적사항을 싹 내가 깔끔하게 정리해 넣어주고 아빠를 응원한다 말했다.


아빠는 떨어지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는지 연신

"에이, 자식들이 난리 치는데 별수 있나" 하며, 지원서 앞의 자신이 낯설어 구시렁구시렁했다.


노익장. 한 두해 뒤면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모 항공사에 재취업을 하겠다며 38년 만에 처음 이력서를 작성해보는 경험이 아빠로선 생소했을 테지만 나는 그런 아빠를 보며 존경심을 느꼈다.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 같이 큰일을 겪었는데 아직도 도전할 의지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아빠, 잘 안돼도 돼요.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라면 비참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아빠가 사회생활을 하며 생활에 틀을 잡는 것을 보고 싶어. 그러니 아빠가 힘을 내서 본 보기가 되어줘요.

이력서 깔끔하게 잘 제출했고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일흔을 바라보는 아빠도 아빠의 자리에서 파이팅하는데 딸인 나는 더 파이팅해야겠지.


얼마 전부터 진급 공부를 시작했다.

멋지게 합격하는 모습 보여줄게. 아빠 방긋 웃게.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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