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유치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대화지만 불과 몇 년 전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둘이 옷장 앞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정리하면서 나누던 얘기가 지금 내 현실이다.
지랄 같아도 이렇게 지랄 같을 수 있는지 무대 피날레 장식하듯 죽음 한번 거창하게 끝난 엄마.
엄마는 그때도 오래 살고 싶지 않다, 민폐 안 끼치고 예쁠 때 죽고 싶다. 웃으며 별일 아닌 듯, 던지듯 말을 했다. 으레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지나가는 말로 몇 번인가 그렇게 말하던 엄마한테 발끈하여 소리는 질렀어도엄마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당시엔 엄마 없는 세상의 나만 걱정하느라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내가 스물한 살 때부터 십 년간 만났던 남자 친구와 결혼할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엄마는(아빠도) 당장 집은 월세를 살든 전세를 살든 해도 미래엔 희망이 있어야 한다며 단 돈 6천 얼마뿐이던 우리 둘 전 재산에 삼천만 원 보태 계약금이니 중도금이니 급한 불 끌 수 있게 계산을 맞춰보곤, 피를 주고 조정지역 요즘 유명한 GTX권역 내 몇억짜리 집을 계약했다.
같은 동 같은 라인 27층에 부모님 집, 24층에 우리 부부의 집. 같이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남편은 나 이제 데릴사위 되는 거냐고 반은 장난, 반은 볼멘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뭘 몰라도 너무 몰라서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우리 돈 없는데) 혼란스러워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안 하면 안 되냐고, 그러면 나는 다른 대책은 뭐가 있냐고, 맞서며 실랑이를 벌였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멋지게 완성된 주상복합 마천루를 바라보며 친정집에 올 때마다 전세 한 바퀴 돌린 우리 집, 드디어 입주다. 엄마, 아빠의 강력한 지지로 계약한 그 집을, 우리 부부 역시 알뜰살뜰 아끼고 절약해서 결혼한 지 5년 만에 빚을 갚아냈고, 내 집 마련의 기쁨과 뿌듯함, 행복을 자축하고, 만끽했다.
나로서는 내 집과 동시에 친정과 꼭 붙어 아직 아기처럼 살고 싶은 내 안의 어린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이사, 그렇게 마련한 우리의 신혼집 입주를 3주 앞두고 같이 재미나게 살자던 엄마가 우리 집 위에 위에 위에 층 거실 창문에서 추락해 죽었다.
엄마는 서른다섯 먹은 나에게 항상 너 직장생활 계속하고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라며 아기 낳으면 봐준다, 공부한다면 밥 해먹이며 뒷바라지해준다, 했다.
그러면서 꼭
"너는 나 같은 엄마 있어서 좋겠다. 난 그런 엄마 없었는데"
"딸, 너는 엄마 같이 살지마"듣기 싫은 소리를 늘어놨다.
난 듣지도 않았지만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엄마 인생이 뭐 어떻다고, 복에 겨운 아줌마야
우리가 얼마나 엄마 웃을 일을 많이 만들어줬는데!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은데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 곁에 있던 내 엄마는 나름 공부 열심히 하는 딸과, 건강한(.. 공부는 못했지만, 대인관계 좋은) 아들이 있었고, 큰 사고 안치며 장성한 자식들은 둘 다 요즘 같은 시대에 큰돈 못 벌어도 제 앞가림은 하는 공무원이 되어있어 부모로서는 적잖이 주변의 부러움을 받는 아줌마로 살고 있었다. 성실한 남편은 65세가 되는 해까지 큰 기업체의 인품 있고 덕 있는 노익장으로 신뢰받는 사회인이었다. 물론 나와 내 동생 모두 내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과 호기심, 사랑이 가득했고 정서적으로 긴밀했다.
(엄마의 든든한 내조에 걸맞은 기쁨을 안겨주고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음을 자부한다)
경제적으로도 큰 무리가 없었다(아빠는 네 엄마가 알뜰해서, 엄마는 네 아빠가 평생 일만 해서 라고 했다. 나는 둘 다라고 생각하지만 얼마나 눈물겨운 삶의 결과였는지는 모르고 다만, 나의 유년기가 꽤 안정적이었던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왜 엄마, 도대체!
도대체 아무리 외치고 해답을 갈구해도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아, 화가 치민다.
우리 가족은 엄마가 죽은 그날이 후 모두가 각자의 물음표를 가슴에 묻고 있다. 나는 상담센터와 그곳에서 추천해준 정신과 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슬픔도 병이 되는 세상에서 나는 남은 가족 들을 불안하게 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되고 있는 나는 애써 마구 다그쳐 추스르려고 해도 슬픔이 멈춰지지가 않아 가슴이 탄다.
엄마가 죽었는데도 앞에 놓인 블루베리 요구르트가 맛있다니, 아마 생전 엄마가 나에게 미쳤느니, 제정신이 아니니 했던 말이 아마 사실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