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고도 꿈인지 아닌지 몽롱한 상태를 헤매며 몇 시간을 더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슬픔에 매몰되기 전에 처방받은 신경안정제 한알과 비타민B 유도체를 복용했다.
엄마가 자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구체적인 얘기를 맨 정신에 하기엔 내 머릿속에 요동치는 슬픔의 늪이 너무나 깊다. 그 안에서 끝없이 허우적거리다, 잡아먹힐 것만 같다. 너도 네 엄마처럼 그러냐며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너마저 잃을 수는 없다며) 남편과 아빠는 날 데리고 정신병원을 순회하려 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한 얘기.
걱정하지 않도록 추스르는 모습만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자니 "2주 전에 엄마를 추락사로 갑자기 잃은 딸이 엄마를 그리느라 슬퍼하는 애도"가 왜 병이라는 건지, 숨겨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고, 외롭다.
엄마 얘기로, 돌아가자면,
결론은 "조현병으로 인한 심신상실, 신경쇠약 상태에서 카레를 만들려던 중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려다가 실족하여 사망하였음"
엄마는 올 3월 초순쯤 잠잠해졌던(나은듯했던) 피해망상의 증상을 다시금 보이기 시작했다.
온 집안의 와이파이 공유기, 후드 전원, 티브이 휴식모드 같은 볼펜만 한 구멍에서 비추는 파란 불빛 빨간불 빛을 몽땅 검은색 전선 테이프로 막아버렸다. 불도 못 켜게 했고, 창밖에 멀리 보이는 MBC 방송국과 송전탑의 전선, 불빛들이 엄말 감청, 도청하여 사생활을 캐내어 방송하고 가족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니 모르는 번호는 받지 말라는 둥, 인스타그램에 반려견 예쁜 사진 업로드라도 하면 그런 거 하지 말고 당장 지우라는 듯 흥분해서 악을 쓰곤 했다. 우린 아무 일도 생기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좋은 상황이라고 수도 없이 설명해주었지만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나는 직장을 잠시 쉬고 휴식을, 남편은 동 대기업 계열사 중 가장 핵심부서의 PM으로 발탁, 아빠는 꾸준한 노후대비의 결과로 내가 태어난 이래 가장 느리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을 때였다. 며느리는 국공립병원 간호팀장으로 승진, 남동생은 소령 진급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데 엄만 무슨 문제가 생길 것 같다며 쫓기듯이 가족들의 근황을 다그쳐 묻곤, 조금의 불협화음이라도 발생하면 다 당신 탓인 거 같다며 미안하다는 둥 사과하기 시작했다
죽은 날 아침엔 아빠에게 당장 당신 명의의 재산을 다 아빠에게 옮기지 않으면 그들이 엄말 고소하여 모두 빼앗아 갈 거라며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그들이 엄마가 사는 곳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 벗어날 수없고 당장이라도 이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둥 설득도 이해도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도 거부한 채 끝없이 무엇인가에 쫓기듯 분개하고 두려워했다.
그들이 누군데
그들이 엄말 뭘 가지고 고소하는데
그들이 무슨 근거로 통장의 돈을 인출해 가는데
우리의 모든 질문에 특히 "그들이 누구인지" 엄만 아무 설명을 하지 못했다. 분명히 고통받고 있고, 그렇다면 가족들은 엄마 편에 서서 엄말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데 모두가 그야말로 다 같이 미칠 노릇이었다.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 죽기 전 3주간 매일 아빠한테 엄마 상태를물었다. 주말이 되면 금요일 저녁부터 남편을 닦달해 인천에서 일산으로 넘어왔다. 평소 담대하고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아빠도 주말이 가까워오면 "너네 이번 주말에 오냐" "언제 오냐" 몇 번이고 물었는데 언어에 숨은 아빠의 진심은 "너네 엄마가 점점 이상해진다. 와서 나를 좀 도와다오" 였다는 것을 나만은 안다.
먹으면 토하고, 정신과 약을 제외한 신경안정제류만 입에 잔뜩 물고 이미 산 사람의 눈빛을 잃은 엄만 주말마다 남편과 내가 가도 잠만 자거나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안방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힐끗 쳐다보고 말았다. 작년에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병을 진단받기 전과 같이 활력 넘치는 목소리로 "왔니? 밥은?" 하고 생글생글 웃어주던 엄마는 더 이상 없었다.
뭔가에 취한 듯 몽환적인 표정으로 바짝 마른 엄마는 그 와중에도 몸무게 잴 정신은 한 번씩 든 건지 52킬로쯤 나간다고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뭐가 자랑이라고, 58~9kg 에서 51~2kg으로, 키 166cm 엄마는 누가 봐도 피골이 상접하여 걸음걸이를 뗄 때마다 휘청 휘청거렸다. 병이 갑자기 확, 악화된 지 단 3주 만의 일이었다.
무언가를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끝없이 누군지 모를 그들에게 쫓기고 협박당하고 억울해하던 엄마지만 간혹 먹을게 당기면 말을 하곤 했는데 그게 너무 고마울 지경이었다. 한주는 피자가 먹고 싶댔는데 평소 좋아하던 크라운 새우가 들어있는 피자가 아니라며 불평했지만 한 조각 정도 먹었다. 그다음 주는 너희 먹을 때 옆에서 쟁반 짜장면 조금 들겠다고 하여 그걸 시켜먹었다. 그날 저녁엔 딸기가 올려진 생크림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집 밖엘 나섰으나 이미 밤 열 시가 다된 시간인지라 베이커리는 문을 다 닫았고 어쩔 수없이 급한 대로 투썸과 스타벅스 등을 뒤져 케이크를 샀다.
"엄마, 생크림은 없고 초코 시트에 체리 있고 위에 생크림 있고 이게 최선인 거 같아. 이거라도 사갈까? 사진 보냈어 한번 봐 봐"
"응, 고마워. 괜찮네. 없으면 그냥 그거 사와"
밤늦게 사온 케이크, 억지로 한두 점 먹으면서도 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먹어주니 얼마나 고맙던지.
병원에 가느니 죽어버리겠다는 말에, 강제 입원 당시 엄마를 겪었던 우린 또다시 강제입원을 시킬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저 나아지기만을 바라며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달래기도 하고, 정신 차리라고 화도 내며,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3월 첫 주쯤 엄마는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엄마는 고민이 있어" 하며 피해망상으로 진단되던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주로 도청이니 감청이니, MBC에 내 정보를 팔아넘긴 문학예술인이 있다는 둥, 자신의 일상이 TV나 라디오 소재로 활용되고 있고, 이러한 상황이 본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평범한 가정주부인 자신을 왜 이렇게 까지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두서없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너무 답답하고 속상했던 나는 "엄마 그럴 일 없고, 피해 보면 내가 가서 직접 대응해. 제발 걱정 좀 그만해. 엄마 평범한 가정주부라서 일상 특별할 것도 없고 그 사람들도 엄마한테 관심 없어. 설령 그렇다 치자. 그래도 엄마 삶이 소재가 좋으니까 재능 기부했다고 생각하라고. TV 한번 나오고 싶어서 안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제발 병원을 가" 엄마를 윽박질렀다.
차라리 벽이랑 말을 하지.
엄마를 감시하는데 드론까지 동원되고 있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나 싶어 인내심의 한계가 올 지경이었다.
"네가 날 알아? 빌어먹을 년 개 같은 년. 어느 병원을 갈까? 어느 병원을 가?"
비틀비틀 안방으로 걸어가 이불을 걷으며 나에게 읊조리듯 말하곤 다시 침대 누워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우며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엄만 그리 말했고,
난, "내가 의사가 아니라서 엄마 어디로 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제발 어디라도 병원을 가. 나한테 욕하지 말고"
(이상하게 엄만 가족 누구에게도 거친 욕을 하지 않았지만 나에겐 종종 상식 이하의 폭언을 퍼붓곤 했다)
그러다 저녁 즈음 커피 한잔 타 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거실 식탁, 냉장고 앞에 서서 나에게 흘리듯 말을 했다.
"엄마 죽으면 아빠 잘 모셔라"
아, 지긋지긋해.누가 죽는다 그래.
노인네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은 그냥 하는 소리라고 흘려들으면 된댔는데 엄마의 말은 삶의 의지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진심인 듯 내게 내리 꽂혀 속 시끄럽게 했다.
지난주에도 했던 똑같은 말. 나를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엄마의 마른 목소리와, 퀭하니 깊고 초점 없는 눈과 거무죽죽해진 얼굴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