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하게 울려댔던 진동 벨소리
#5. 엄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장례식장 도착 직후)
"아빠다. 너네 엄마 뛰어내린 것 같다. 끝났다"
"뭐? 아니 아빠 그게 무슨 소리야. 제대로 좀 말해봐"
"엄마 지금 병원 실려갔다고 지금 내가 가볼 테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라"
장난인 줄 알았다.
아니 평소 이런 장난칠 양반도 아닌데, 어안이 벙벙했다.
어이가 너무 없어서 듣고 있던 행정법 57번 강의 다음으로 오늘 꼭 다 듣기로 결심했었던 58번 강의를 클릭하려던 찰나,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하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 내 감각과 사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내가 방금 받은 아빠 전화는, "엄마가 27층 창밖을 뛰어내린 것 같고, 어느 병원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람이 실려갔으니 기다리라는 내용"으로 대충 인지하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응급실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개인 정보라서 자세히 알려줄 순 없다며 병원 직원들은 난색을 표하곤, 핑퐁을 쳤지만 지금 난 내 엄마가 죽었다는데 그들의 체계나 업무규정 따위 존중할 여력이 없었고, 있다 해도 그럴 맘도 없었다. 엄마가 죽었느냐, 아니냐, 이걸 확인해야만 했다.
일산백병원 ㅡ 의식불명으로 오신 분 일산병원 가셨어요
일산병원 ㅡ 네, 불상자 1명, 여자분 사망자 계세요
(두 병원 모두 환자정보 보호차 인적사항을 절대 확인해주지 않는다)
세상의 혼돈이 이런 것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감당할 것도 없이 같이 망할 것이니 누가 살고 죽고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싶었을 것 같아 감당이 될 것 같았다.
남편에게, 올케에게, 마지막으로 땅굴 깊숙이 훈련 중이던 남동생까지 연락이 닿아 일산으로 넘어가기까지 사십 분 즈음 걸리는 거리가 왜 이렇게 길던지 멀미에,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그나마 제정신던 남편이 운전을 하고 조수석에 앉아 그저 실려가던 중이었다. 엄마의 죽음을 마주할 각오를 해야 할 때, 설마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으며 그렇게 병원에 도착했다.
제 정식이 아닌 채로 병원에 도착하니 군복도 못 벗고 땅굴에서 뛰쳐나온 내 동생과 올케가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머리를 괴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엄마 죽은 게 맞는구나. 실감이 났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몸이 흐물거렸다. 가누기가 어려웠다. 한 동안 데면하던 남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나를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다 안다. 나도 누나랑 같은 마음이다. 말이 아닌 가슴이 그렇게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해 아빠?"
"영안실 아니.. 장례식장으로 와. 내가 확인했다. 엄마 아직 체온 남아있으니까 가서 한번 보려면 보고 와라"
"알았어" ㅡ 가슴이 내려앉았는 소리, 쿵쾅쿵쾅
올케는 "언니 안돼요, 안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하며 나를 안아 뒤로 물러 막아섰다. 남동생은 "누나....." 하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둘은 내가 정리안 된 엄마의 상태를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난 엄마의 상태를 보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그 모습을 보고 미쳐버릴 내가 두려워 병실 복도에 앉아 저린 가슴만 쥐어뜯으며 오열했다.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급한 대로 엄마의 원가족,
외갓집 식구들 번호를 찾아 나오는 대로 전화를 넣었다,
그들은 어찌 된 일인지 느릿느릿 되물었다.
질문의 속도에 비해 내 대답은 좀 빨랐던 것 같지만
그만한 호의면 나로선 엄말 위한 예는 갖췄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엄마가 가족끼리 밥 한번 먹고 싶다 땐 서로 껄끄러워 이 핑계 저 핑계 대던 것들이 엄마가 죽고 나서야 이러고 있네 씨발
엄마 아랫 동생 둘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달려와 알은체하며 동시에 어찌 된 노릇인지 나를 마구 다그쳐 묻기 시작했다.
"나도 지금 와서 잘 몰라. 엄마가 죽었다는데 내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거야? 조용히 좀 해. 나도 힘드니까" 몇 년 만에 처음 봐서 길에서 보면 알아보지도 못할 이모한테 나지막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얼굴 마주하면 못할 소리를 다 쏟아내 버릴 것 같았지만 엄마 장례식이었다. 엄말 위해, 그래도 끝까지 엄마가 돌봄의 책임을 떠 앉았던 오십 넘은 엄마 동생에게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막내 이모, 둘째 이모, 마지막엔 외삼촌 일가족이 차례로 도착했다.
잠깐, (없는 게 더 나은) 엄마의 가족을 소개하자면
십오 년쯤 전, 암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암투병 할아버지 두고 위장이혼 후 도망친 할머니
재수되게 없게 찢어지게 가난한 집 장녀, 우리 엄마
밑에 위아래 모르는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
엄마만 붙잡고 늘어지면 돈 나오는 줄 알던 영악한 막내.
(자기(만)이라도 어떻게든 생존하려는 형태로 온 가족을 양육한 그 중심에는 대단하신 노인네, 외할머님이 계신다)
이모 1.
<부제: 물주 큰언니가 죽었으니 가장 생계 곤란할 사람>
나이 오십이 넘도록, 제 앞가림이 안되고 정체불명의 남자와 법적 결혼과 이혼, 후일 이놈 저놈(신원불명의 전과자)과 동거. 장애인 형제를 공갈협박, 하여 현금 갈취 죄목으로 대전형무소 옥살이 중 엄마(큰언니)한테 편지 쓰고 매달려 매달 아빠가 보내준 영치금 20만 원으로 생활하면서도 민폐인 줄 모르고. 병 보석으로 나와서도 병원비 없다고, 생활비 없다고 엄마한테 (선) 전화하고 (후) 계좌번호 부르던 여자.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달려와선 자기한테 제일 늦게 연락한 거냐고 바락바락 하는데 정말 웃기는 사람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에서야 빨리 알든 늦게 알든 왔으면 된 거고, 나하고 애틋하게 왕래하던 사이가 아니잖아. 서로 어디서 알아는 보겠냐고.
(아빠는 내가 놀랄까 봐 끝까지 숨기다, 이모가 병보석으로 나왔을 즈음 넌지시 알려주었다. 이런 일도 있었노라고. 엄만 당신한텐 그런 애라도 걔 내 동생이야 욕하지 마, 하며 이모를 감싸고 들었다. 핏줄이 무섭긴 무섭네. 미련한 엄마)
이모 2.
<부제: 형부 퇴직금을 탐내던 여자>
본인 남편과는 불분명한 이유로 위장이혼 상태에서, 본인이 프랜차이즈 떡집을 내고자 하는데 돈이 없다며 목돈 얘기를 꺼냈다(내가 옆에 있어 들었다). 그러다 슬그머니 아빠 퇴직금을 좀 보태달라고 하였는데, 엄마가 우리 가족생활을 이유로 거절하자 갑자기 짐승처럼 달려들어 엄마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바닥에 굴렀다. 그러고 나서는 엄마가 챙겨준 반찬을 온 집에 집에 던지고 뛰쳐나가 왕래를 끊은 여자. 이후 나와는 만난 적이 없다.
(사근사근 얘기하다가 수틀리면 짐승처럼 괴성을 지르며 엄마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어린 내 앞에서 조차 여과 없이 수 차례 보여주었던 이중인격자)
삼촌 1.
<부제: 외할아버지 장례식 때도 구석서 잠만 자던 패륜아>
IMF 이전에 운영하던 사업이 잘되어 서울과 일산 등지에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빈털터리가 되어 원효로에 거취를 틀고 사장일 때의 허세를 버리지 못하고 살다가 "엄마가 너는 망했어도 니 새끼들은 이렇게 키울 거냐" 끝없이 닦달하여 정신 차림. "돈 줄 거 아니면 참견 말라" 자꾸 본인 아픈데 건드리는 엄마와는 자존심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음. 후일 신용회복 수순을 거쳐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나 15년 전쯤 외할아버지 돌아가실 때 돈 안 도와준다는 이유로 유족 휴게실에서 잠만 자는 통에 아빠가 상주 역할을 도맡아 한 뒤 연을 끊음.
(정작 장남이라고 온 식구 재산에 대한 지원과 혜택을 다 받아왔으나 사업이 잘 안되고 패배의식에 젖어 몇십 년을 탕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족 대소사 때마다 어떻게 되겠지 시전 하며 발 빼던 양반, 그 뒤엔 외숙모가 있다 ㅡ 이해는 한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 집안에 시집온 죄로 볼꼴 못볼꼴 다 봤으니 살려면 별수 있나)
누가 알까 봐 무섭고 창피할 지경이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이제 끝이난 인연에 대해 기억이 퇴색하기 전에 아직은 생생한 기억을 남겨두고, 익숙해지며, 소화하고, 언젠간 다 속으로 삭혀낼 수 있게 되어 다 잊고 남은 인생은 내가 더욱 건강히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엄마는 아빠와 나, 내 남편과 며느리로 엄마가 구성한 우리 가족이 얼마나 서로 많이 웃었고, 행복하게 해 주려 애쓰고 사랑했건, 소용없었던 것 같아 씁쓸하고 고통스럽다. 내 사진첩 속 엄마는 늘 활짝 웃고 있는데,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에선 내게 참 많은 위로가 되는데, 정작 엄마는 그 순간들 마저도 마음이 너무나 가난해서, 아무리 행복을 퍼담아도 반만 행복했겠구나 싶어 가슴이 아리다.
무책임한 부모 밑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난 엄마를 내조부모는 생면부지 부산의 한 미역공장에 버렸고 사과하지 않았다. 내 엄마는 차비를 어찌어찌 빌려 서울로 다시 올라왔어도 환영받지 못했다. 부모가 나 몰라라 하는 동생들 추스른다고 아등바등했지만, 정작 그 동생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이었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부모도, 언니 누나 대접하는 인격이 성숙한 동생도 없던 엄마는 누구에게도 안식을 찾지 못했다.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기만 하다가 병에 걸려 죽었다.
<엄마의 간접 사인>
조현병, 피해망상, 조울, 경계성 인격장애
<엄마의 직접사인>
카레를 만들던 중 집 외부에 위치한 위해 요소(본인 감시 물체 유무) 확인 차 안전범위를 벗어난 외부 베란다 난간 상반신 돌출에 따른 실족사(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