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Conspiracy theory)

#6. 범인은 너네 아빠, 의혹의 눈초리

by 풍선꽃언니
<어른의 사전적 정의>
1.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엄마와 아빠 둘만 있던 집에서 엄마가 창문을 넘어 추락했고 바로 옆 건물 사무실 직원이 처음엔 새가 날아가는 줄 알았다가 어어 하고 놀라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 새가 사람인 줄 알고 나서는 얼마나 놀랐을까.


사고 당일 아빠는 65세 이상 코로나 백신을 대비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예약해둔 상태였다고 한다. 요즘 하도 백신 맞고 말이 많으니 몸 상태가 최상일 때 맞아야 한다고 매일 아침에 한 시간씩 운동하고, 혈압조절에 도움되는 처방약, 비타민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식단 관리를 한지는 좀 되었다.


올 3월 들어서 (다 나은 줄 알았던) 엄마의 조현병 증세가 한순간에 악화되며 엄마는 거의 물, 엷은 커피만 먹고 있는 상황에서 아빠가 구슬리고 구슬리면 간신히 진라면 컵라면 작은 것에 물을 몇 번씩 부어 짠맛만 살짝 나는 라면수프 국물 같은 것을 먹었다. 그러곤, 한 줌의 신경안정제와 가끔씩 술,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던힐 6mg를 가끔 한 개비 피우고 대부분의 시각은 누워있거나, 자거나. 누워서 헛소리를 하거나 했다.


아빠는 전일부터 건강검진을 위해 금식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엄마한테 최근 3주 으레 그랬듯, "(당신 힘드니까) 끝나면 대충 사 먹고 올게." 했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검진 끝나면 바로 오라며, 식사 준비를 하겠다고 하곤 몸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게 웬일인지, 아빠는 이 사람이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나 싶어 잠시 기분이 나아졌던 것 같고 건강검진 전까지 잠시 방에 들어가 음악을 들으며 주식시장 동향이나 잠시 살펴보았다고 했다. 아침 여덟 시 반이었다.


아빠가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방에서 문 닫고 음악을 듣거나 하게 된 건,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작년 11월 아빠가 완전히 은퇴하면서부터 다른 자리가 있어 나간다고 하니 "평생 일만 했으니 일하지 말라 난 당신한테 이제 돈 벌어오라고 안 한다. 이제 쉬어도 된다" 하면서도 나만 보면 "너네 아빠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답답하다,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하며 푸념했다. 그래서 아빠는 방 한편을 아지트 삼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엄마 눈에 안 띄도록 방으로 피해있곤 한 것이다.


엄마에게 뭔가 먹여야겠는데 본인이 완강히 거부를 하니 인천에서 사는 딸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다만, 기분이 좀 내키고 속이 좀 받아주면 먹으라고 인스턴트 죽을 사서 보내고, 소화가 안된다니 사이다보다 낫겠다 싶어 탄산수나마 한 박스씩 사서 보내는 것. 매일 같이 아빠한테 엄마가 어떤지 묻는 것. 주말이 되면 짐 싸들고 오지 말라든 오라든 그저 일단 찾아가고 보는 것이었다. 간혹 뭔가 먹고 싶다고 하면, 제일 크고 맛있고 비싼 것으로만 주문해서 대령했다. 케이크, 피자, 짜장면, 울면, 이런 것들이었는데 먹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 나는 엄마한테 너무 고마웠다.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엄마는 우리 부부가 찾아오면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빨리오라고 몇 번이나 문자를 넣곤 했었다, 그러나 아프고 나선 우리 부부 보는 것도 귀찮은지 와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남 보듯 잠시 응시하다 잠들어 버리기도 했다)


가족들은 다시 병원 입원을 권했다. 나아지지 않으면 강제로 입원시킬 수밖에 없다고 협박도 했다. 정신 차리라고 윽박도 지르고 구슬려도 봤다. 정신과가 싫으면 내과라도 가자, 어디가 아픈지 아무 의사한테 물어보고 가라는 대로 가보자,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병원을 가자고 하면 욕을 하며 거부하고, 짜증을 내며 네가 뭘 아냐는 둥 감당이 안 되는 말들을 해대며 고집을 부렸다. 이것도 저것도 다 싫다. 귀찮다. 귀찮다. 귀찮다.라고 하니 모두가 지쳐갔다.


죽기 전주 주말 내가 "엄마 나 갈게. 다음 주에 또 만나" 할 때는 나를 불러 우리 집 반려견을 눕혀놓고 갈비뼈 사이를 검지로 매만지며 여기에 뭔가 무슨 칩같은 것이 있는 거 같다며, 엑스레이 찍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뭔가 이번엔 확증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담은 눈으로 나에게 읊조리듯 말했다. "누가 얘한테 무슨 칩을 심냐고! 얘는 누가 허튼짓하면 벌써 도망가도 벌써 도망가고 없다고"

(우리 집 강아지는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이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늘 잘 도착했냐고 몇 번이고 답할 때까지 묻던 엄마. 가끔 귀찮아서 까먹고 늦게 연락하기도 했는데, 몇 주 내 엄마는 내 안부를 묻지 않았다. 엄마 자신도 피붙이인 나도 몽땅 놓아버렸다는 게 실감이 났다. 심란했다.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좋아지겠지, 지난번에도 좋아졌으니 이번에도 좋아질 거야 믿는 수밖에.

변사자 확인서
오전 3월 23일 오전 09:13분 추락사로 사망
두개골 파손, 안구 등 훼손, 골절 등등
(시신 발견 당시 상태에 대한 구체적 묘사)
신고자 : 옆 건물 사무실 9층 근무자 누구누구

아빠가 방에 들어간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엄마는 창문을 넘어 사라졌고, 아빠는 몰랐다. 열 시쯤 방에서 나왔을 때 부엌 창문과 거실 창문이 몽땅 열려있어 너무 추워 얼른 닫고 강아지를 안고 안방 침대 이불속에 몸을 뉘었다고 한다.

(카레를 끓이면 냄새 때문에 맞통풍 시킨다고 창문을 연다)


엄마가 보이지 않았지만 부엌을 흘끗 보니 여느 때 요리하던 풍경과 같이 카레 한다고 한솥 가득 재료를 해두고 불 올리기 직전의 주방 모양새. 재료가 뭐 필요해서 잠깐 사러 갔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병원 가기 전까지 잠시 눈을 붙였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사람이 돌아오질 않네. 어딜 간 거지. 다시 보니 신발장에 신발도 그대로 있고, 지갑도 휴대폰도 그대로 있네. 그제야 아빤 1층으로 내려가 경비에게 물었다. 와이프가 나간 지 좀 된 거 같은데 안 들어온다, 밖으로 나간 게 맞는 건지 확인 좀 하게 CCTV 좀 보여주시오.


경비직원이 말했다. 좀 전에 사람 하나 위에서 떨어져서 2층 화단에 있던걸 119에서 싣고 갔다고. 정신이 나간 아빠는 횡설수설한 채로 나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죽은 것 같다고

(죽었다, 도 아니고 죽은 것 같다고).

이때가 아침 열한 시쯤.


"? 이틀 전에 보고 온 엄마가 죽었다고?"


아빠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과수대를 포함 예닐곱 명의 경찰관이 집에 들이닥쳐 집안의 지문을 뜨고 엄마 약봉지 진단서 노트 등을 확인하고 유서 등을 찾았다(없었다).


영안실에 방치된 엄마의 시신은 식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남동생 부부와 함께 아빠가 경찰서에서 돌아오길 기다렸다.

(조사가 끝나야 시신을 만지든 할 수 있다고 한다)


카레 만들어 준다던 평생 반려자가 갑자기 죽었고, 병원에선 처참한 시신 위 흰 천을 들추어 와이프가 맞는지 확인을 하라고 하고, 삽시간에 피의자인지 참고인지 뭔지 모를 신분의 경찰 취조 대상자가 되어있었던 아빠는 처음 나에게 전화한 지 일고여덟 시간 만에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상심과 지친 기색이 역력하여 슬프다고 안겨 울기도 미안한 아빠의 얼굴에 가슴이 저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빠는 무혐의, 사인이 자살인지 사고인지 밝히는 조사가 진행 중이던 시점 검찰에서 장례를 진행해도 좋다는 허가가 났다)


그런데,

이모는 울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네가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렇다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나도 의심스러워서 하는 소린데), 아빠가 엄마 그랬다는 가족들 하는 얘기도 있고 그래. 일각에 그런 의심도 있고.. 경찰 조사 진행 중이라며.."


"경찰 조사 결과 나왔어. 가서 똑바로 확인해 봐. 지금 엄마 죽은 게 아빠가 그랬다고 나한테 말하는 중인 거야?"


"아니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지금 그 말이 그 말이잖아. 가족 누구. 여기 장례식장에 가족? 외갓집 식구말고 더 있어? 아빠한테 직접 가서 물어보지 그래? 내가 가서 무슨 근거로 그러나 직접 물어볼까?"


일평생 바른 소리 하는 아빠한텐 악다구니 쓰고 드러눕고 집어던지면 되던 자기네 방식이 안 통하는 줄은 알아서 아빠가 같이 있을 땐 아빠 옆의 엄마한테 말 걸기도 불편해하던 당신들. 누가 누굴 죽였다는 거야, 엄마가 죽은 이유를 따지고 들자면 위아래 모르는 당신들과 자식은 자식대로 싸질러놓고 자기 살자고 인륜이고 뭐고 안하무인격이었던 내 엄마의 엄마, 당신들의 엄마, 그리고 위아래 모르고 모른 척과 회피로 자기 살기 바빴던 당신들의 인생을 한번 돌아보길 바라요.


서두에 밝혔듯,

어른이라 함은 첫 번째 정의가 "다 자라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서른 다섯 내 짧은 생애에 단 하루도 어른답지 못했던 당신들, 그 가벼운 입과 고집이 서른다섯 해 나랑 살던 우리 엄마를 이렇게 잃고도 반성 없이 내게 떠들고 있는 참이었다. 엄말 괴롭히던 입, 가슴과 상식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내뱉는(아니면 말지 뭐, 하는) 경박한 그 입, 어떤 식으로 공존해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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