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잔인하다

#98. 늦은 밤, 괜찮지 않은 나를 발견할 때

by 풍선꽃언니

어젯밤엔 펑펑 울었다. 창밖에는 장맛비가 쏟아졌고 내 눈에선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는 잠든 시간이었고 남편은 나를 끌어안고 내가 있잖아, 하며 우는 나를 달랬다.


<차가운 평온>이 감도는 우리 집 일상 속에서 엄만 잠깐 외출한 듯 평범한 하루가 흘러간다. 그럴 때 나는 내가 괜찮은 것 같다. 슬프지 않고 해야 할 일들도 잘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정말 죽었다니, 떠오르면 믿기지가 않는다. 어젯밤 같은 때 엄마가 이제 안 돌아오는구나 체감하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나를 부르던 엄마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얘, 하고 부르던 엄마 억양이 들리는 것 같다. 그리움이 깊어진다. 그럴 때 나는 작년 엄마 생일에 찍어둔 동영상을 본다.

동영상 속 엄마는 웃고 있다. 가족들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엄마는 고맙습니다, 하면서 촛불을 후-분다. 늙어서 한 번에 다 못 끄는구먼, 아빠가 장난스럽게 핀잔을 준다. 엄마는 멋쩍은 듯 웃으며 다시 한번 후- 촛불을 분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엄마의 생일. 동영상은 짧다. 몇 번 반복해서 보다가 영상을 끈다. 못 들어 본 지 삼 개월이 지난 엄마의 목소리. 고맙습니다, 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나도 어머님이 그리워.
넌 오죽이나 어머님이 그립겠니
우리 이겨내자

남편은 어제 같은 팀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수원 아주대 병원까지 운전을 네 시간 동안 했다. 조부모상이라고 한다. 남편은 우는 나를 달래며 죽음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며 엄마 생각에 괴로웠다며.


남편의 슬픔이 진짜라는 것을 안다. 남편은 용산에 살고 있는 팀장님을 모셔다 드리고 귀가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남편은 인천에서 용산으로 출퇴근을 했었다. 우린 인천에 살고 있었고 남편은 계열사 전배 전이 었다.


남편이 용산으로 출퇴근하던 몇 달 전 엄마는 살아있었다. 우리는 주말마다 일산에 왔었고 엄마가 차려주는 맛있는 밥상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남편은 팀장님을 용산에 내려주며 용산으로 출근하던 시절을 떠올리다 엄마가 그때는 살아있었는데 지금은 죽었네, 에 머물러 울적해졌다고 한다.


남편이 집에 와서 씻고 잠을 자려는데 우는 나를 보곤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본인도 힘들다고, 공감의 목소리를 내곤 이겨내자며 나를 다독였다. 그러나 내 눈물은 쉬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엄마를 떠올릴 만한 어떤 이벤트도 없었는데 갑자기 터진 내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싶지 않다. 그냥 힘들지 않은 줄 알다가 내 가슴속 연약하게 숨어있던 슬픔이 한 번씩 밀려 나올 때 그저 울어버리는 것이 좋다는 것만 분명하다.


아직 시간이 덜 흘러서 그렇다고 믿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 않는 고통은 없다고, 누구나 하는 이별을 나는 조금 일찍 겪은 편이라고 자꾸만 생각하면서 이겨내는 수밖에.


괜찮은 듯 살다가도 그리움에 사무치는 날들이 오면 이렇게 나는 여전히 선명한 엄마 모습과 낯선 오늘의 현실 사이의 혼란을 꾸역꾸역 소화해야 한다.


죽음은 잔인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꺾인 60대 노익장의 구직활동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