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끄물끄물하다.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쨍하니 해가 나오지도 않는 요즘 날씨.집에 혼자 있는 시간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잠시 생각해 보지만 아직 며칠 전의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는 밖에 나가기도 싫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슬픔에 매몰될 것 같아서 초조한심경이 된다.
브런치에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과 슬픔에 대해 적나라하게 쓰는 사람은 몇 없던 건지 종종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그나마 조금 일찍 겪었다고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수락하는 편이다. 대화하다 보면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를 얻기도 한다.
나는 엄마 딸로서 서른 다섯 해 동안 행복했다. 우리 가족이 이만큼 각별하게 똘똘 뭉쳐 현재를 이겨내는 힘을 얻었던 동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각자가 제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고 그 밑바탕엔 엄마의 든든한 내조와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는 약한 사람이라 조현병에 걸렸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반만 맞는 것 같다. 엄마가 운이 없어 만난 최악의 가정환경 속에서 엄마가 겪은 부당함과 억울함을 엄만 내게 하나도 물려주지 않았다. 외려, 내가 사회인으로서 또 가정 안에서 한 사람 몫의 멋진 인생을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엄마는 오히려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게 그렇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안다. 엄마가 이룬 이 가정 안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온 시간 속에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기억한다. 엄마의 죽음은 마음 아프지만 나는 엄마 인생을 갈아 넣어 내가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알기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내 삶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
어제저녁 연락이 닿은 그분은 내가 넉 달 전 숨도 못 쉬게 아파했던 상태에 계셨다. 나는 우리가 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내가 몇 달을 방황하며 내린 결론을 강력하게 설파하며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하자고 위로했다.그 말들은 그분께 드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엄마는 떠났지만, 우린 잘 살아야만 한다.
아빠는 엄마의 죽음 이후 더 많은 시간을 지인들과 함께 보내고 있다. 어제는 북한산 등산을 다녀왔고 오늘은 후배와 점심 약속이 있다고 나갔다. 남편은 계열사 전배 이후 평균 퇴근 시간이 밤 열시라 얼굴 보기 힘들다. 남동생도 내년 진급을 앞두고 주말출근을 불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 휴직을 한 나는 감정을 추스르는데 애쓸 여유가 있다. 복직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서른다섯 해 열심히 달리기만 했으니 지금은 나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할 자유를 좀 더 누려보고자 복직은 미뤄두었다.
오늘 저녁엔 순두부찌개를 끓여볼까 한다. 가정주부가 된 것 같다. 저녁엔 집에 있을 아빠와 퇴근 후 따뜻한 밥을 찾을 남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은 현재로서 이런 것들이니 나는 엄마를 대신해서 엄마가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던 우리 가족을 위해서 내 몫을 해야겠지.
기분이 꿀꿀해서 남동생에게 응석부려보았다
누구나 엄마의 죽음을 이런 식으로 맞이하게 되지는 않지만 선택된 몇몇에게 더 강해지라고 내린 전지적 어떤 존재의 뜻이라면 나는 좋든 싫든 그 뜻에 순응하는 대신 더 강해져 시련이라면 시련인 지금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