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아픔(엄마의 죽음)을 견디는 과정 <4개월 차>

#101. <언제쯤 괜찮아 지나요>에 대한 경솔한 중간점검 4

by 풍선꽃언니
엄마가 정말 죽은 게 맞는 걸까?
금방 다시 나타날 것 같아
잠깐 어디 외출한 것처럼

엄마가 죽은 지 사 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집은 <차가운 평온>으로 가득하지만 식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 나만해도 불안과 우울로 점철되던 일상이 이제 정신과에서 지어준 약을 한두 번 빼먹어도 괜찮다고 느낄 만큼 괜찮아졌다. 지난 한 달간 상담센터도 한 번 밖에 가지 않았다. 아빠도 술을 마실 때 엄마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가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기 보단 <부재함>으로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무게를 싣고 싶다. 처음에 엄마가 죽었을 때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한 두 달이 지나고 나서는 인정을 하고 지금은 인정하면 할수록 부재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괴롭다 보니 상실을 다시 부정하는 단계인 것 같다. 엄마가 있었을 때와 같은 일상과 습관들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달까.


아빠는 며칠 전에 나에게 화를 냈다. TV에 모 연예인이 나와 노래를 부르는 씬이 나오는데 채널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 연예인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가수인데 왜 틀어놓느냐며 불쾌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엄마는 죽고 없는데 아빠는 그간 살면서 그 연예인이 나올 때마다 채널을 바꾸던 엄마의 습관대로 내게 채널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빵을 사 올 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이마트에 가서 크림이 가득 들어있는 크루아 상을 샀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늘 엄마한테 얻어 오기만 해서 내손으로 그 빵을 사진 않았었는데 이상하게 내 장바구니엔 엄마가 사다 줬던 물건들이 담긴다. 먹던 맛이다 보니 그냥 그 빵이 먹고 싶어 집었다. 아빤 엄마가 제일 좋아하던 빵인데 설탕 덩어리 크림 꼭 먹겠다고 사 오더니 너도 똑같다며 신경질을 냈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습관과 규칙들은 우리 집에 여전히 유효하다. 이상하게 자꾸 엄마를 따라 하는 나와 엄마에게 하던 잔소리를 내게 하는 아빠. 식사를 준비한다던지 엄마가 하던 역할들을 내가 이어받아하면서 내가 엄마와 닮은 점이 많았음을 깨달을 때마다 엄마가 진짜 죽은 걸까 낯선 기분에 사로잡혀 혼란스럽다.


혼란스럽기는 아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딸이 만든 조악한 식단에 맞춰 밥을 먹고 생활을 같이 하면서 딸은 엄마처럼 자꾸만 글을 쓰고 엄마처럼 늘어져 홈쇼핑 티브이 채널을 돌린다. 아빠에게 양파니 감자니 하는 것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고 아빠는 분리수거를 하러 박스들을 들고나가면서 그간 딸과 아빠로 살던 어느 시절과도 다른 형태로 생활을 유지하다 보니 어색하기도 하고 뭔가 그런 것 같다.


다음 달이 되면 또 어떤 기분으로 엄마의 죽음 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다. 분명히 생활이 안정이 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이게 일반적인 사별 후 모습인지 모르겠다. 괜찮다고 느낄 땐 엄마한테 미안해지기도 하다. 슬플 땐 막상 <엄마, 나도 죽으면 엄마한테 가니까>하며 다시 만날 것을 마음속으로 기약한다. 그러다 보면 슬픔이 진정되어 다시 괜찮은 상태가 된다. 그렇게 괜찮아지면 또다시 미안함이 찾아오고 슬퍼지다가 또 만나,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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