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이라는 이름의 원수

#104. 나는 친척이 없다

by 풍선꽃언니

아빠와 막걸리 한잔 걸쳤겠다 요즘 뜸한 Y 씨 집안의 형제자매 관계에 대해 물었다. 아빠와 이런 대화를 할 땐 일단 한잔 들어가야 한다. 평소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말을 꺼내기만 해도 신경질을 내니까.


엄마의 형제자매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브런치에 풀어쓴 만큼 썼다. 얼마나 막장스러운 집안이며 엄마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딸인 나는 그들에 대해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


이번엔 아빠 쪽 이야기다.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은 큰 아빠

나는 큰아빠를 근 십 년 정도 본 적이 없다. 아주 크게 사업을 했었지만 사기를 당해 망했다. 당시 아빠나 고모 명의로 사업체의 일부를 돌려놓기만 했더라도 일부 재산을 건질 수 있었을 텐데 남을 가족보다 더 믿었다. 사촌들 사이에서는 사업이 망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갔다는 둥 말이 많을 만큼 치밀하게 두문 분출했다. 엄마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엄마를 하대하던 고모

죽은 엄마에 대해서 <원래 그러지 않았느냐>며 아빠를 위로한답시고 말했지만 그게 아빠의 비위를 더 건드렸다. 엄마가 설령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들 오빠의 배우자였는데. 엄마 돈을 빌려가고 엄마가 달라고 할 땐 엄마에게 전화기 너머로 쌍년이라고 소리쳤다. 내가 들었다.


착한 우리 아빠는 차남임에도 장남의 몫까지 다하며 살았다. 부모로부터 받은 혜택은 제일 적었어도 지금도 일산 모처에 할머니를 모시고 파주에 모신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한다. 아빠의 다른 형제자매는 아빠의 그런 노고 덕에 각각 자신의 삶을 꾸리고 부모 봉양으로부터 자유롭다.


가족들은 아쉬울 때는 항상 아빠를 찾으면서 막상 아빠가, 우리 가족이 엄마의 상을 당했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각자의 변명이 있었지만 그게 아빠나 내게 와닿는 일들은 아니었고 외려 가족 간의 무정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계기가 되었다.


실망스럽게도 내겐 본받을 만한 친척이 없다. 외갓집과 친갓집의 차이라면 친갓집의 어른들은 적어도 어른으로서의 모습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외갓집은 사람이기 조차도 포기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양가 모두 엄마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 우리 가족은 완전히 질렸고 한배에서 나온 친족 간이지만 단호하게 단절을 외칠 만큼 그들은 모두 비호감이다.


어린 시절 나는 교과서적인 친척 관계를 배웠다. 서로 돕고 사랑하는 관계. 그런데 현실에서 내가 보고 배운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교과서는 그저 교과서에 불과한 것이 었을까.


분명한 사실은 우리 가족의 기준이 틀리진 않았다는 것이다. 외갓집은 우리 가족의 반듯함에 늘 기가 죽어 있고 친갓집 식구들은 우리 만큼 잘된 이가 없다. 아쉬울 땐 양가 모두 우리 집 손을 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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