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엄마의 생일

#107. 추억 속에만 남을 엄마가 태어난 날

by 풍선꽃언니

시어머니가 일러 주시기를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신 해 생일은 마지막으로 챙기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교본에 이렇다 명시되어 내가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 불심이 가득한 어머님이 일러 주신 것이니 집에서 엄마의 마지막 생일을 제사로 챙기기로 했다.


아침부터 부산했다. 제사음식을 알뜰상으로 주문하고 보니 우리가 주문한 내역은 배송이 되지 않아 직접 수령하러 파주 교하까지 다녀와야 했다. 아빠가 아침부터 운전해서 음식을 받아왔다. 푸짐한 한 상이 배송되어 왔다. 마음 한편으로는 엄마 제사음식 하나 못 만드는 게 내 게으름 때문인 것만 같아서 속상하면서도 세상이 좋아져 클릭 한 번이면 제대로 된 제사음식을 배송받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내 죄책감은 남동생의 한 마디를 핑계 삼아 가라앉히고 포장을 뜯으니 아이스 팩으로 정성껏 포장된 업체 음식이 나왔다.


아, 남동생의 한마디는..

누나가 음식을 한다고? 됐어, 엄마가 실망할 거야.

아빠가 음식을 받으러 간 사이 남편과 나는 제기를 제기함에서 꺼내고 물수건으로 한번 깨끗하게 닦았다. 앞으로 계속 제사를 지낼 거라 좋은 제기를 준비했는데 꺼낼 때마다 한번 사면 평생 쓸 물건이라면 이 정도 투자하는 게 맞지, 하면서 흡족했다. 엄마가 먹을 밥상에 차릴 그릇인데 그릇 좋아하던 엄마가 싸고 모난 그릇은 알아보지 않을까 눈치를 살살 보며 구입한 제기와 제기함.


남동생 부부가 도착해 제사를 지냈다. 원래는 엄마가 있는 경모공원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아빠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꾸 생각하면 기분이 우울해 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난 제사도 안 지냈으면 좋겠어.
나 버리고 간 사람 뭐가 좋다고..

엄마에게 아빠는 여자이고 반려자였기 때문에 우리에겐 부모 중 한 명의 이별일지 몰라도 아빠는 실연의 상처와도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아빠는 살면서 한 명의 배우자를 두었기 때문에 단지 가족이 죽었다거나 하는 감정과는 다르고 아픔의 방향이나 깊이도 다를 것 같다. 다만 내가 짐작하는 것은 아빠는 의도적으로 엄마 죽음과 맞닥뜨리기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를 덩그러니 집에 두고 우리만 엄마에게 간다고 가기도 뭣해서 내일 나와 남편만 따로 다녀오기로 하고 오늘은 가족끼리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빠와 남편은 영화를 보고 남동생 부부와 나는 각각 방과 소파에서 낮잠을 잤다. 작년 엄마 생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고 가족끼리 모여 생일 축하한다고 자신의 생일상을 자신이 잔뜩 음식으로 채워 우릴 초대했었다.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엄마는 엄마의 원가족들과도 함께 생일 축하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는데 내가 연락했을 때 모두가 이 핑계저 핑계 대며 회피해 자리가 무산되었다. 씁쓸해하는 엄마 표정이 가슴이 아팠지만 나 또한 그들과의 자리가 달갑지 않았기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케이크가 없는 엄마의 생일은 낯설다. 케이크 대신 향과, 각종 나물들로 꽉 채워진 제사상이 놓여있는 엄마의 마지막 생일이었다. 살면서 십여 년간 엄마 생일을 지나친 적이 없었고 케이크는 꼭 내가 준비했었는데 이제 초를 불던 엄마 생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는 늘 불가리 로즈향 향수를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내 화장대에 엄마가 쓰다 남은 그 향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왠지 사용하면 엄마가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아서 쓰지 않고 전시만 해놓는 그 향수를 오늘은 쳐다보기 싫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꺾인 60대 노익장의 구직활동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