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어느 날 엄마와 아빠는 나와 남자 친구(현 남편)에게 청약통장을 들고 오라고 했다. 직장 생활한 지 몇 년이 되어 제법 년수가 찬 청약통장을 들고 우린 일산 대화역 인근 한 모델하우스 북새통 뙤약볕에 청약을 넣겠다고 줄을 섰다. 왜 오프라인으로 그 난리를 쳤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그랬다.
남편과 나는 엉겁결에 줄을 섰다 뿐이지 어디에 분양을 받는 건지 역이 생긴다는데 그게 어디까지 가는 노선인지 살펴보지도 않았을 만큼 무지했다.그러나 어른들 말은 잘 듣는 "애들"이라 줄 서라니 서고, 청약 지원하라니 지원하고 가이드라인 잘 따라 했다(당시 그 고생을 하고도 청약은 떨어졌지만 곧바로 프리미엄을 주고 엄마네와 한동 위 아랫집으로 신혼집을 마련했다)
당시 십 년간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주변에선 우리가 결혼하겠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때렸을 뿐 공식적인 인사(이를테면, 상견례 등등) 전이었다. 집을 일단 사야 하니 프리미엄과 계약금이 있어야 할 터 당장 가진돈이 얼마냐 묻는 엄마 앞에서 남편은 기가 죽어 우물쭈물했다. 그 돈 가지고 전셋집이라도 얻어야 하는데 아빠는 일단 질러놓고 결혼해서 월셋집을 살든 합가 해서 방한칸 더부살이를 하든 하라고 했다. 남편은 난생처음 집을 사는데 몇 동 몇 호를 사는지도 모르고 덜렁 계약금을 쳤다. 월세 살아야지 하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말이다. 당시 남편 나이 서른둘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남편은 십 년 내내 이름도 없이 "그 새끼"로 불뤼다가 처음 아빠를 만난 자리가 그 청약 사무소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재미난 에피소드다. 어, 어, 하다가 보니 어느새 부동산에 앉아서 정신없이 도장을 찍고 있었다. 엄마와 이 얘기를 할 때면 깔깔 자주 웃곤 했다.
우린 신혼집에 바로 입주하지 못했다. 잔금이니 치를 돈이 부족했기도 하지만 당장 결혼하고 살집이 필요해 회사 관사를 신청해 신혼집으로 꾸렸기 때문이다. 관사에 살면서 돈을 모아 빚을 좀 갚고 입주하자는 게 우리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마련한 내 집은 좋은 세입자를 만나 전세를 줬다. 엄마는 같이 위 아랫집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많이 아쉬워했다. 나도 아쉬웠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라기보단 당시에 요리를 전혀 못하다 보니 매일 끼니를 해결하기가 힘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닌 엄마의 맛있는 집밥을 먹고 싶었다. 엄마는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열심히 돈 모으고 전세 한 바퀴 돌리면 이 집으로 들어와 재미나게 살자고 했다. 우린 모범생들 답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 처음 집을 계약한 지 5년 만에 빚을 말끔하게 다 갚았다. 올해 4월 18일이 세입자전세기간 만료였고 4월 20일이 드디어 우리 집에 이사를 하기로 예정한 날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이사하기를 기다렸고 우리도 이사를 기다렸다. 이사만 오면 식사 다 챙겨주겠다. 집을 예쁘게 꾸며주겠다. 애 낳으면 애도 다 봐주겠다. 많은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죽었다. 3월 23일이었으니 우리 이사를 한 달 앞두고 말이다. 엄마의 약속들은 모두 공수표가 되었다.
우리는 엄마가 죽어버리자 우리 집에 새로운 세입자를 들였다. 위에 위에 층이었던 엄마의 집도 마찬가지로 세를 주고 살림을 합쳐 옆 동네의 큰 평수로 이사를 했다.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기 전 행복한 새 출발을 꿈꾸던 내 집에 집주인으로서 들어가 보았다. 엄마 집과 구조가 같아 모든 게 익숙한 집은 더 이상 내게 어떤 감흥도 주지 않았다. 외려 본능적으로 반드시 이 집을 탈출해야 할 것 같은 의지를 자아냈다. 내 집에 하루도 살아보지 못하고 세입자들의 공간으로 또다시 꾸며질 내 집이 싫었고 엄마가 떨어져 죽으며 거쳐갔을 거실 창문 밖 풍경들이 싫었다.
마천루로 가득한 동네를 떠나 조금은 푸근한 구축 아파트 밭으로 들어오니 살 것 같았다. 생활권에 그 동네를 거쳐가는 루트가 없어지니 숨이 쉬어졌다. 병원도 다니고 일상생활을 영위해 가다 보니 엄마의 흔적이 줄어들어 때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으로 하루를 살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동네에 갈 일이 생겼다. 주소지를 그쪽 집으로 해놓았다 보니 우편물이 잔뜩 쌓여있다는 세입자 연락을 받았다. 가지러 가는 데는 아빠를 대동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는 길목에 접어들자 아빠와 나는 말이 없었다. 분명 머릿속에 선명한 그날의 기억을 복기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영원히 나는 이 집에 이사오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면 설레고 행복했던 생애 첫 집은 완전히 망조가 들린 집으로 삽시간에 둔갑을 했다.
고맙게도 요즘의 부동산 기조에 발맞춰 내 집도 집값이 많이 올랐다. 급여로는 몇십 년 벌어모 아야 할 만큼의 불로소득을 한 번에 벌어다 준 집이다. 응당 고마워야 할 일이고 몇 년 전 아빠와 엄마의 권유에 모범생처럼 따랐던 우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반증하는 좋은 성과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우린 재테크를 참 잘 한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집과의 인연을 끊고 싶다. 엄마가 죽은 곳이라는 충격에서 헤어 나올 자신이 없다. 절대 그 집에 입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적당한 때 집을 정리하고 싶다. 어딘가 새로이 뿌리내릴 좋은 동네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