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3)
#9. 엄마의 장례식과 남편
경찰 조사를 마치고 빈소를 차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빠가 평소와는 달리 횡설수설하고, 민첩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평소 당신이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인데 자꾸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되려 나와 남편, 남동생에게 묻는다. 어지간해서는 흔들림 없는 아빠가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은 살면서 처음 보았다.
나는 불안했다. 서른다섯 먹은 딸은 아직 아빠가 이래라저래라 삶의 지혜를 빌려줘야 하는 덜 자란 어른. 그래서 미안하지만 아빠가 제발 이 순간들에 초연해 주기를, 부끄럽지만 아빠 딸은 지금 너무 무서우니 여느 때처럼 아빠 옷자락 뒤에 숨어 비를 피하라고 해 주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괜찮으라는 딸의 기대는 아빠가 짊어지기엔 너무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나도 덜 자라든 못 자라든 어른이니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바로 어제까지 한 이불을 덮고 손을 꼭 잡고 잠을 자던 아내가 오늘 아침에 카레를 해준다고 했다. 방에서 잠깐 음악 틀고 증시 확인하는 사이 우리 집 거실 창문에서 아내가 추락해 죽어버렸다. 그 망할 놈의 카레를 한다고 한참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 달라기에 조금 이따가 맛있는 카레나 마주 앉아 먹고 있을 줄 알았다.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던 거 같은데 떨어져 죽었고 본인은 그 사실을 한 시간 뒤에나 알게 되었다. 이 얘길 경찰에서 몇 시간이나 반복했을 아빠였다. 누구에게라도 황당하고 충격적인 일에 아빠도 사람인지라 막상 괜찮지가 않은 것이었다. 당연했다.
일단 당장 아빠의 경찰 조사 결과 목격자도 있고 타살 혐의점이 없어 검경 장례 허가가 더 지체되지는 않아 불행 중 다행이었다. 뭔가 이상하니 부검하자고 달려들지 않아서 그런 것조차 고마웠다. 이제부턴 우리 중 누구라도 나서서 빨리 빈소를 준비하고 상황을 진전시켜야 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 기가 빨려 허기가 진 나를 남편은 편의점에 데려갔다. 초콜릿이니 우유니 당 되는걸 대충 챙겨 먹였다. 두통이 심해 타이레놀도 좀 사달라고 해서 몇 알을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남편은 "내가 해야 해. 어머님 잘 보내드려야 해. 이건 내 몫이야. 내가 정신 차리고 잘할게" 신호등 앞에서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손 잡는다고 엄마가 죽었다는 아픔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세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낀 순간들 보다도 이번에는 뭔가 더 이전보다 더 깊은 뭉클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말로 설명하기엔 나의 어휘가 부족한 것 같다.
남편아, 너 구나. 내 가족.
빈소에서 엄마의 형제자매며 사촌동생이며 잔뜩 와서 각자 무언가 자신의 몫이 될 법한 것을 하며 바빴다. 미안한 얘기지만 하나도 고맙다거나 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엄말 언니 대접, 누나 대접 똑바로 해준 적 있었어? 엄마가 그렇게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 한번 기분 좋게 하고 싶다는데 죽어야 모이는구나. 한심스러워 꼴 보기도 싫은 그들을 퀭한 눈으로 좇았다.
정작 슬픔에 지쳐 쓰러져있는 나, 자신을 다스리느라 숨만 쉬고 있는 남동생, 그런 동생을 추스러주느라 동동 거리는 올케, 집안의 어른으로서 덤덤한 척하는 모습조차 힘겨워 보이는 아빠. 폭풍의 눈 안에 있는 듯 우리 모두가 혼돈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홀로 눈빛이 살아 빈소를 이끌어주는 남편이 있어 다행이었다. 고마웠다.
아들보다 예쁜 사위,
엄마는 내게도 시어머니와의 통화에서도 종종 그리 말하곤 했는데, 그래. 엄마 내가 괜찮은 놈을 식구로 데려왔어. 든든하지. 손 많이 가는 엄마 딸은 자기 앞가림 하난 참 기특하게 잘했어. 엄마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머무는 이 공간에서 엄마 사위의 모습을 봐. 아들보다 예쁜 사위 맞다.
(오해할까 봐 첨언하자면, 엄마는 엄마 배 아파 낳은 자식인 나와 내 동생을 당신 자신보다 더 사랑했다. 그건 나와 남동생 모두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사위는 이를테면 양아들 마냥 집안의 식구로 깊이 정 붙인 타인이었다)
고마워. 남편. 내 엄마 가는 길을 잘 챙겨주어서.
엄마도 고마워. 내 남편을 많이 사랑해줬어서.
엄마 사위도 엄말 많이 사랑한대.
엄마는 자기한테도 엄마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