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4)

#10. 엄마의 장례식과 아빠, 그리고 나.

by 풍선꽃언니

빈소를 차린 첫날부터 우리 모두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정말 길고도 긴 하루였다. 몸도 힘들었지만 그보다도 마음이 너무 힘들다 보니 못할 짓도 이런 못할 짓이 없다 싶었다.


조문객을 맞이하는 일은, (특히나 요즘과 같은 전염병 창궐 시기에) 일단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 당연한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가 없지만, 우리 가족의 경우 사망 사인을 터놓고 얘기할 형편이 아니었기에 심장마비같이 흔하지만 치명적인 아무 사인을 갖다 붙여 설명해야 했고 거기에 따른 위로를 받으며 남일인 듯 내일인 듯 온통 혼란 속에 계속 계속 상처를 받았다.


손님맞이로 몸이 바쁘니까 엄마의 죽음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속으로 해대며 미궁에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생각을 잠시 미뤄두었을 뿐이라서 좀 생각할만하면 또 한 사람, 곧바로 또 한 사람 숨 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이런데, 저 멀리 이모들과 사촌동생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웃고 떠들고 하는 꼴을 보니 그래, 엄마가 그렇게 온정을 베풀었는데 결국 이 꼴 보자고 그랬어? 내가 진작 때려치우랬잖아, 죽은 엄마에게 화가 났다.


어, 그러더니 화기애애하던 분위기 국면이 바뀌어 뭔가 또 서로 기분이 상했는지 도끼눈을 뜨고 서로 나지막한 목소리로 실랑이를 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안 궁금하고, 아, 평생 저러고 엄말 볶아댔나. 또 제잘난 얘기만 하고 있겠지. 진짜 무식하기 짝이 없네. 그 꼴이 아주 웃기고 유치해 보였다.


첫날은 저녁 열 시 조금 넘어 빈소 내를 정리하고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갔다. 가족 중에서도 나와 남편, 아빠만 남기고 남동생과 올케는 내일 오기로 했다.


아빠와 남편이 우리가 빈소에서 쓸 이불가지를 가지러 갈 겸, 무슨 일인지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집에서 혼자 두려워하고 있을 반려견도 안심시킬 겸 먼저 나갔다. 남동생과 올케도 같은 입장이라 아빠와 남편이 돌아올 즈음 자리를 떴다. 그 사이에 엄마와 나 둘만 남았다.


여기 어딘가에서 듣고 있다면 내가 원망 많이 한다고,

진실이 뭔지 궁금하다고. 난 경찰이 하는 판단, 식구들 짐작 이런 거 말고 엄마 얘기가 듣고 싶다고. 마구 울부짖고 소리 지르며 엎드려 누워 악을 쓰다가 이내 마음 고쳐먹고 화로에 향이 꺼지지 않도록 불을 다시 붙였다.


만일 이 안 어딘가에 엄마가 있다면, 절망적이고 슬픈 표정으로 "내가 그러려던 게 아닌데.. 딸 이제 우리 어떻게 하니" 하며 어쩌지도 못하고 울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좌절하고 괴로워할수록 엄마가 혼자 더 무섭고 외롭지는 않을까. 내가 마구마구 화내고 그러면 엄마 가슴이 미어져 이제 가야 할 길이 있는데 내가 눈에 밟혀 가지도 못하고 가슴을 쥐어뜯을 것 같았다.


"엄마 미안해. 내가 화냈다고 엄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오해하지 마 " 얼른 사과하고 아빠랑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얼굴을 두드리며 눈물을 말렸다.


엄마가 죽기 이틀 전 주말에도 나는 엄마를 보러 친정엘 갔다. 엄마가 심각해지고 지난 3주간은 매주, 그전엔 격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갔다. 아빠가 퇴직하고 두 분이 적적할까 봐 꼬물꼬물 한 아가라도 하나 있음 돌보는 맛에 즐거울 것 같아서 굳이 우리 맞벌이라 얘 외로워서 안돼, 쪼끄만에 집에 혼자 있을 걸 생각하면 안쓰럽지도 않아? 하고 맡겨둔 강아지가 있어 보러간다는 핑계였다.


작년 초 십오 년 간 키우던 가족 같은 강아지가 노령으로 죽고, 엄마랑 아빤 강아지 죽는 거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다신 안 키우겠다고 했었는데, 막상 아가를 데려다 놓으니 무척이나 예뻐했다. 아빠랑 막 싸우다가도 강아지가 엄마 무릎 위에 기대 누우면 꼭 끌어안으며 생글생글 웃는다고 한다. "우리 까르 왔어? 졸려서 엄마한테 왔어?"


주말마다 엄마랑 아빠한텐 괜히 쑥스러워 강아지 보고 싶어 간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나 실상 집에서는 남편한테 "넌 네가 먹고 싶다는 거 내가 만들어주지만 난 내가 먹고 싶은 거 만들어주는 사람 우리 엄마 밖엔 없단 말이야" 하며, 둘이서 시간 좀 보내자고 하는 남편을 이끌고 매주 오던 친정이었다.


그 주 주말도 엄만 퀭한 눈으로 신경안정제인지 정신과 약인지에 취해 잠만 계속 잤고 속이 안 좋다며 거의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아빠는 하루 종일 엄마가 여기저기 아프다고 한다며, 어디 마사지 좀 받으러 가자, 정신과가 싫으면 내과라도 가서 수액이라도 한 대 맞고 오자, 뭐 먹고 싶은 건 없냐 사다 주겠다. 엄마 옆에 붙어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가 지쳐서는 "그래, 죽으려면 너 알아서 해라" 하고 성질을 내고 티브이를 틀었다. 나와 남편도 옆에서 엄마 정신 좀 차려, 아빠 말 듣고 내과라도 가. 안 그러면 엄마 또 강제로 정신과 가야 해 하며 권유도 하고 협박도 하고 화도 내고 난리를 쳤다.


결국 엄만 "내가 정 힘들면 가자고 할게" 했고, 우린 엄마 상태는 엄마가 제일 잘 알 테니 이겨내겠지. 믿었다.


"나 다음 주부터 성경 필사할 거야, 다 잊고 다시 시작할 거야" 피해망상 속의 공격 분자와 공격 내용을 기록해둔 노트를 그 주 토요일 저녁 갑자기 집어던지며 약간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던 엄마를 보며 조금 안도했다. 병과 싸워 이기려는 의지를 보이는 엄마가 이제 좋아지려나 보다 싶어 기뻤다.


최근 본 내 토익시험 점수가 몇 점인지 묻기도 했다. 만점을 받던 애가 그거 받아서 되겠냐고 핀잔도 줬다. 뭔가 이런 질문과 대답, 정말 오랜만인 거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섣부른 판단에 불과했지만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라는 기대를 하며 조금 들떴다.


일요일 오후엔 엄마가 힘들어서 요리를 못하니 중국집에 음식 배달을 시키 자고 했다. 당신은 "울면"을 먹겠다며 메뉴를 골랐고 다른 가족은 쟁반짜장을 시켰다. 사실 엄마가 이러기 시작한 최근 삼주 내내 집에 먹을 게 없으니 계속 짜장면을 시켜 먹어서 짜장면에 짜 자만 들어도 물리는 기분이었지만 엄마가 뭔가 뭐라도 먹겠다잖아. 그 집 짜장이 맛이 있든 몇 주 먹어 물리든 그런 게 대수가 아니었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배달이 오지 않았다. 평소 같음 젊잖게 음식이 오지 않았네요, 확인 좀 해주세요 했을 텐데 진상을 부렸다. 화가 났다. 우리 엄마가 뭔가 드디어 먹고 싶다는데 시킨 배달음식이 오지도 않고 사장님은 귀찮다는 말투로 다시 보내겠다, 너네가 주소를 잘못 불렀다며 음식이 되돌아와서 짜증이 난다는 투로 응대했다. 확인해보니 주소는 맞게 불렀는데 배달하시는 분이 배달 실수를 하셨다. 뭐 사람이니 그럴 수 있는 일인데 나도 힘들어서 그랬는지 내대신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해주는 남편한테도 화가 나고 무례한 중국집 사장님한테도 화가 났다. 우리 엄마가 먹고 싶다잖아. 고작 먹고 싶다는 게 중국집 배달음식이라는데 그거나마 빨리 먹게 해주고 싶었단 말이야.


남편과 내가 투닥거리며 싸우니까 엄마는 모기만큼 작은 목소리로 "나는 너네 그냥 저녁 먹여보 내고 싶었을 뿐인데 너네가 싸우면 어떻게 해..."


엄마와의 마지막 식사가 그랬다.

그리고 엄마가 이틀 뒤 죽었다.


빈소에서의 밤,

아빠는 빈소에 간이침대를 깔고, 나와 남편은 유족 휴게실에서 요를 깔고 잠을 청했다. 먼저 경험한 친구며 지인들이며 잘 수 있을 때 자 둬야 한다고 조언해 준 말을 떠올리며 어떻게 해서든 자보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더 정신이 선명해졌다. 여기는 지금 장례식장이고, 이 장례식은 우리 엄마의 장례식이고, 나는 오늘 아침에 엄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고... 그리고...


엄마의 휴대폰을 열었다. 피해망상 증상이 생긴 이후로 도청 감청을 의심하면서부터 엄마는 휴대폰 카카오톡 메시지나 문자 같은 것을 불안해했다. 휴대폰은 깨끗했다. 하다못해 최근 본 웹페이지, 검색기록도 깨끗하게 삭제되어있었다. 직계가족과 친구들 몇 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지만, 그 밖에 번호는 종이에 손으로 일일이 써서 휴대폰 케이스 카드꽂이에 끼워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본 것 같았다. 유일하게 남은 검색 기록은 유튜브에서 발견했다.

"2021년 토끼띠 운세" 아마도 올해 내가 시험을 본다니까 걱정되는 마음에 한 번 찾아봤었나 보다. 눈물이 흘렀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뭔가 자살이라면 메모라도 있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에 납득이 될만한 거라면 뭐라도 찾아내려고 저장된 사진, 메모, 각종 어플 하나하나를 일일이 눌러봤다. 이미 본 걸 보고 또 보고 놓친게 있는지 또 보고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단서가 될만한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막내 이모가 엄마한테 돈 좀 보내달라며 통장에 계좌번호를 사진 찍어 보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미친년, 니 앞가림은 제발 네가 하란 말이야"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엄마한테 돈 맡겨놨니

결혼해서 시집가 가정 꾸리고 사는 언니한테 나이 오십넘어서도 때 되면 오십만 원, 백만 원 손 벌리는 당신이 내 이모라니, 우리 제발 얼굴 보고 살지 맙시다. 곱씹으며 정신이 더 또렸해졌다.


조용히 눈을 감고 화를 삭이고 있는데 아빠의 큰 들숨과 내쉬는 한숨이 들려왔다. 한 번, 또 한 번, 밤새도록 아빠의 한숨은 이어졌고 나는 향초에 불을 붙이러 나올 때마다 자는 척하는 아빠를 애써 못 본 척하며 빈소와 유족 휴게실을 들락날락 했다.


새벽 무렵, 이제 곧 일어나 다시 빈소를 지켜야 하는데 아빠도 나도 뜬 눈으로 지새운 채로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다. 정신은 더 또렸해지는데 몸은 축 가라앉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아빠에게 다가가 꼭 안았다. 아빠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아빠.. 왜 밤새 잠 한숨도 못 자고 그래.."

"내가 뭘 그렇게 잘 못했나 생각해봤다. 내가 왜 느이 엄마를 강제 입원시킬 용기를 못 냈는지 후회가 돼서.. 참..

"아빠, 강제입원은 아빠 혼자 시킬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엄마가 입원시키면 죽겠다고 해서 나도 못했어"

"씨발, 그냥 나랑 살기 싫었나 보지. 됐다."


아빠와 나의 밤은, 그렇게 하얗게 샜다.

"아빠 이제 나랑 사위랑, 아빠랑 세식구 같이 잘 살자."

아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깊은 밤,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