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인하던 날

#11. 눈 감은채 내 영혼의 종말이 가야 할 곳

by 풍선꽃언니

엄마의 휴대폰을 뒤져보다가 카톡 계정에 남겨 놓은 시를 발견했다. 쓰긴 썼는데 보내기는 하지 않았고 작성 중으로 남아있던 시. 문학단체 시인 집단 이런 거 때문에 그렇게 억울해했으면서 시 짓기가 평생의 취미로 즐겁기는 했었는지 때려치웠다던 시를 한 번씩 썼던 모양이다.


내가 줬던 카드로 가끔 900원 1000원 하는 문학 행지 같은걸 결제하긴 하더라니, 엄만 정말 문학을 취미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조금만 덜 집착적이고 좀 더 오락스러웠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엄마의 사고를 겪으며 시나 예술 문예창작 이런 것들을 하는 이들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뭐, 사실 예술을 탓할게 아니라 엄마의 여린 마음과 나약함, 엄마의 거지 같은 유년시절을 탓하는 편이 더 옳기야 옳겠지만. 나는 그냥 이 사고에 대해 탓할 것을 찾고 신랄하게 비난하며 엄마의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살려고.

흙 / 초목

어둠은 깔려있고
어제 내린 눈 꽃송이는
콘크리트 바닥에 녹아 질척거리게
신발을 더럽히게 한다

찬 공기는 쌩
한편의 화단에 나무와 흙은
가쁜 숨을 쉬고 있다

발 밑에 깔린 화단의 흙은
의미 없는 존재인 것 같지만
내가 가야 할 길

눈 감은채 내 영혼의
종말이 누워 가야 할 곳
무. 의미 있는 공간일 텐데...

감사하고 고맙다
이제 가지런하게 신발을 벗어 놓는다

울 막내 간암 결과 보러 가기
하루 전에 씀
2021. 02. 21

지난 날씨를 검색해보니 일산서구 대화동에 눈은 2.20일이 아닌 2.17. 에 내렸다. 시를 며칠에 걸쳐서 완성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지 아님, 그냥 눈 오는 날을 상상하며 단숨에 써 내려간 건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시를 읽으며 눈감은 채 엄마 영혼의 종말이 누워 간 발 밑에 깔린 화단의 흙을 미리 알고 쓴 것처럼 그 내용이 섬뜩해서 시 같은 거, 왜 쓴 건지 죽음을 예견한 거야? 별 시답잖은 미신 같은 생각마저 하다가 아니겠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빠는 "시" 얘기만 나와도 재수 없다고 화를 낸다.


엄마를 화장하는 날, 정말인지 완연한 봄 날씨에 파란 하늘이 인상적인 좋은 날이었다. 남편의 회사에서 관 운구를 위해 리무진이 제공되었는데, 몇 년 전 엄마, 아빠와 파견 나가 있던 남편을 만날 겸 함께 다녀온 베트남 여행이 떠올랐다. 그 동네 최고급 호텔 펜트에 머물며 벤 비스므레한 리무진을 타고, 드물게 사치스러운 여행을 했었다. 내게도, 아마도 평생 아끼고 절약하던 내 엄마, 아빠한테도 그날은 인생에 손꼽을만한 호사였을 것이다.


그때 진짜 좋았었는데. 엄마는 죽으니 이런 고급 차도 타네. 호사는 호사인데 죽은 엄마는 신난다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고 웃지도 않았고 나도 영 기분이 나지 않았다. 죽으면 뭐해. 세상을 발 밑에 두고 살던 삼성 이건희 회장이나 어쩌다 리무진 한번 타보고 좋아하던 우리 엄마나 죽으면 한 줌 재 되는 게 똑같은데 세상사 참 허무하다.


그래도 산 자들의 위안이랄까, 비단 리무진뿐만이 아니라 빈소에서도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예우는 아쉬움 없이 다하고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차가 화장장 앞에 멈추고, 엄마의 관을 들었던 장정들은 어리고 철없던 시절, 각자의 사정으로 우리 집에 숙식을 부치다시피 했던 남동생 친구들이었다. 뺀질했던 그 불량소년들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잔소리를 들으며 거진 고등학교 시절 내내 우리와 같이 컸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애들이 휴가 내고 와서는, 엄마 관 운구를 했다. 전날 밤엔 나와 남편도 합석하여 새벽 네시 즈음까지 옛날 얘기를 하며 너도 나도 모두 취해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실없이 웃었다.


누나가 소리 지를까 봐 무서워서 새벽에 누나 방 앞에 지나갈 때 살금살금 다녔어요.


아침마다 어머니가 차려주던 밥 스케일이 너무 커서 그 어디서 밥을 얻어먹어도 시시하게 느껴졌어요,


엄마 아빠 재혼하면서 오갈 데 없어 부사관 지원했는데 휴가 때 나올 곳이 어머님 댁뿐이었어요. (그런 자길 붙잡고) 엄마가 너 한 몸 누일 곳은 있어야 하니 부사관 월급 야무지게 모아 탄현동 부영 3단지를 사라고 했었어요. 병신처럼 그 말 안 들어 이 꼴이네요, 흐흐


어머니는 엄마였죠. 그냥 어머니가 아니었죠


내가 모르던 그들과 엄마의 추억들을 듣고 있자니, 이렇게 엄만 사랑이 많았는데 정작 엄마는 왜 자신을 좀 더 사랑하지 못했을까 씁쓸했다. 별수 있나, 인명은 재천인걸. 엄마가 갈 때 돼서 간걸 어떻게 해.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이렇게 웃기라도 해야 슬픔을 삭힐 것 같아 밤 새도록 다 같이 소주를 붓고 또 부었다.


화장을 하고 나온 유골의 분쇄가 끝나고 엄마가 담긴 항아리는 무척이나 따뜻했다. 꼭 끌어안았다.

엄마, 잘 가요.


하물며 혈육이 아닌 이들도 엄마의 떠나는 길에 엄숙하게 예를 다해 정성껏 작별인사를 한다. 우리 시아버님 외진 화장장까지 버스 타고 오시기 쉽지 않은 길이지마는 엄마 가는 길 배웅해주신다고 오셔셔 묵묵히 계셔주시다 조용히 돌아가셨다. 감사했다.


허 참, 이런 순간에 망연자실한 나와 아빠 남편 앞에서 외삼촌이라는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 집(화장장) 식당 음식 맛없는데, 요 아래 가면 맛있는 데 있는데."


엄마가 화장되는 한 시간 가량의 텀에 가족들 간에 식사를 교대로 하기로 했는데, 그 와중에 맛있는 식사 타령을 하니 어찌나 한심스럽던지. 아무거나 처먹으면 어떠냐고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엄말 위해, 분노가 치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볼일 없다. 다시 볼일 없다. 되뇌이며.


그치만 외삼촌, 제가 드릴말씀이 있어요.

지금 죽은 사람은 당신 큰누나랍니다. 제발 그 입 좀 다무세요. 입을 다물고 계셔야 사람 취급받습니다.

사람됨을 배우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 한 것이 었네요.

당신의 무지함으로 당신 자식도 배움을 모르고 살겠지요. 당신처럼 아득바득 해야만 살아지는 인생을 살겠지요.

엄마한테 함부로 했던 당신이 받을 벌이라고 생각해요.

오래오래 사세요. 우리 엄마가 죽어서는 맘 좀 편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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