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고 난 뒤 유품 정리를 하다가 엄마 지갑 속에서 외할아버지 납골당 관리비 납부 흔적을 발견했다. 이번에 돈 내고 나면 또 언제까지 관리되는지 적혀있는 납골당 명함. 나는 납골당 명함을 보며 실소가 나옴과 동시에 굉장히 씁쓸했다.
잠시 생각했다. 이모나 삼촌에게 이걸 알려줘야 할까. 그동안은 엄마가 관리해 왔지만 이제 엄마가 죽고 없으니 누군가 책임지고 챙기라고. 배려심 같은 마음이었다. 할아버지가 어느 날 납골당에서 쫓겨나시면 안 되니까.
아빠와 상의했다. 아빠는 그런 거 신경 쓸 거 없고 명함도 버리라고 했다. 하긴 외할아버지가 쫓겨나시든가 말든가 그 자식들도 신경 안 쓰는 걸 왜 내가 엄마 유품 정리하다 말고 걱정하는가 정신이 번떡 들어 그 명함을 버렸다.
씁쓸함을 넘어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외할머니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엄마한테 그렇게까지 모질었는지 모르겠다. 티브이에 나오는 부모 자식관계나 브런치 글 속에 나오는 가족들을 보면 할머니의 따뜻함 같은 주제가 많이 등장하는데 나는 사는 내내 혐오스럽고 징그럽기만 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대학을 갔을 때부터 엄마한테 그렇게 함부로 대한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엄마 고등학교 때 돈 벌어오라고 지방의 미역공장 같은 곳에 내동댕이 친 걸로 엄마는 죽기 며칠 전에도 경기를 일으키며 울었다.
"옛날 일은 다 잊어라"
그 입을 봉해버리고 싶다. 그녀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인품 때문에 엄마는 사십 년을 그 아픔을 안고 살아왔는데 차라리 한 번쯤은 미안하다, 나도 그때 어려운 시기에 자식은 줄 줄이고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 그랬다. 한마디만 했어도 엄마 가슴에 멍은 조금 풀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엄마도 엄마라고 내 엄마는 열심히도 돈 갖다 바쳐, 음식 해다 바쳐, 여기저기 아프다 그러면 병 수발들어할 도리를 참 열심히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엄마가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 엄마를 버린 사람인데 뭐가 그렇게 고마워서 엄마 대접을 극진히 했을까. 나는 엄마가 상처 받아 너네 할머니가 얼마나 웃긴 사람인지 아니, 할 때마다 제발 그 집을 끊어야 엄마가 산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었는데 엄마는 엄마 고집에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도 납골당 관리비 챙기는 것도 엄마뿐이니 이 집구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충분히 설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아버지임에도 다 어떻게 되겠지, 누가 하겠지, 하고 나자빠져있으면 늘 뒷수습을 하는 것은 엄마였다. 온 식구가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큰 이모만 해도 남편과 이혼을 하고 자기 떡집 운영할 건데 아빠 퇴직금을 장사 밑천으로 대 달라며 사정사정하는 것을 엄마가 거절하자 내 눈앞에서 엄마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라 알 거 아는 나이였다. 엄마와 이모를 뜯어말리고 이모를 내쫓았다. 우리 집 현관문이 부서져라 쾅 닫고 으악 하고 비명을 내지르고 나갔다. 이십층인 우리 집에서 일층까지 아마 그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엄마가 이모 가게에 가면 떨이 제품 처분을 위해 물건을 (주는 것도 아니고) 사가라고 하는 둥 해서 나는 엄마에게 이모도 끊으라고 했다.
"그래. 피붙이끼리 장사하는 집에서 밥 좀 먹는데 그걸 엄마한테 돈을 받아? 엄마는 밥 한번 못 얻어먹고 오냐" 하며 화를 냈다.
엄마는 "걔도 힘드니까.." 하며 얼버무렸다.
나는 이대목에서도 엄마가 정말이지 한심하다.
외삼촌도 사람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집안에 유일한 남자고 장손이면 해야 할 몫이 있을 진대 집안 행사나 일들은 몽땅 나 몰라라 해서 엄마가 다 챙기게 만들고 본인은 낚시 동호회에 심취해서 낚시나 하러 다녔다. 외삼촌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엄마를 공격하고 나선 것은 없다. 문제는 본인의 장손이라는 입장에 철저히 방관자의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나 몰라라 하고도 외할머니는 아들이라고 싸고돌아 집에서 받아 아들한테 보냈다.
할아버지 장례식 때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외삼촌이 사업을 망하고 방황하던 시절이었는데 외할아버지한테 돈을 좀 해달라고 했다가 얘기가 잘 안되었다는 이유로 상주가 장례식장에 취해서 나타나서는 잠만 잤다. 때문에 아빠가 엄마를 위해 상주 노릇을 하고 손님을 받고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뒤 아빠는 다시는 그 집 식구들을 보지 않았다.
하긴, 상주 역할을 아빠였던 게 더 걸맞은 것일 수도 있다. 집구석에 번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없다 보니 외할아버지 장례식이라고 해봤자 올 손님도 없었고 그나마 아빠 손님들 덕에 장례식 구색은 맞췄으니 말이다.
정말 웃긴 것은,
그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막내 이모는 간경화로 아파 돈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외할머니는 이모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큰 이모는 돈 달라는 외할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외삼촌은 여전히 방관자다.
정상이 아닌 집에서 자란 엄마가 나를 정상적인 가정에서 키워준 것은 내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큰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외로움을 내가 좀 더 따뜻하게 품었다면 엄마가 안 죽었을 수도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터지고 타들어가는 것 같은데, 원흉인 저들은 죄책감 없이 하루하루 밥 잘 먹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분하다. 분해서 미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