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순경 공채 실기반은 종강되었다. 와글와글 어린 친구들은 더 이상 체육관에 오지 않는다. 꽉 찬 것 같던 체육관은 코치와 나 두 사람만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린다. 여기가 이렇게 넓었었나. 여기가 이렇게 추웠었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며 개인수업(PT)을 받았다. 코치와 1:1로 수업을 한다는 것은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지켜보는 구경꾼들이 없으니 오로지 나의 기록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솔직히 회당 66,000원 하는 PT를 5월 말까지 계산하니 총 16회로 100만 원이 넘는 돈을 결제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어릴 때는 여행 간다 뭐한다 잘 쓰고 다녔던 돈이다. 그때는 내가 벌어서(중고생 과외를 했다) 쓰는 돈이라 나를 위해 이것저것 많이 투자했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빚 갚느라 고군분투했고 지금은 남편 혼자 벌어 생활비 타서 쓰는 마당에 이래도 되나 카드를 내미는 마음이 떨렸다. 괜스레 불안해져서 남편에게 미친 듯이 카톡을 보냈다.
"큰돈 결제하는데 마음이 좀 불편해."
"너 연봉 6천 버는 사람이야. 크게 봐. 지금 쓰는 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괜찮아."
그래, 내가 직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열심히 벌었는데 투자 한번 하는 거지. 남편이 복직하면 받게 될 내 연봉을 일깨워주자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승부욕이 확 되살아 났다. 그래, 나는 지금 옳은 일을 하는 거야. 쓰는 만큼 뽕뽑으면 되지 뭐.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업 있으시잖아요. 굳이 하신다니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근데 멋있네요. 보통 서른여섯 정도 되면 적당히 타협하고 살고 그러던데.
팔굽혀 펴기를 하겠다고 끙끙거리는 내 뒤통수에다 대고 나이 마흔이 넘은 코치는 자기 생각을 쏟아냈다. 숨쉬기도 힘든데 말을 거니 조용히 좀 하시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호흡이 딸려서 입을 다물었다. 스물넷. 스물다섯. 스물여섯. 일분을 재는 측정계가 울렸다. 삐-. 8년 전 얘기긴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걸 오십몇 개씩 했던 걸까. 욕심만큼 따라주지 않는 내 팔뚝이 원망스러웠다. 하긴, 그때는 지금보다 날씬했었긴 했다. 가벼우니까 더 잘했었겠지.
오늘 느낀 건데 필라테스를 일 년 넘게 해온 건 참 잘한 것 같다. 스트레칭을 유연하게 잘하니 과부하 된 근육을 쿨 다운할 때 시원하게 쭉쭉 잘 늘린다는 것이다. 코치도 유연성이 좋아서 운동시킬 때 도움이 된다며 칭찬했다.
윗몸 일으켜기도 종목이라 대차게 열심히 했다. 요령이 없어서 오롯이 내 복근(출렁이는 뱃살)으로 일어나려니 목 하고 허리가 아팠다. 투둑. 꾸물꾸물 서른세 개쯤 했을 땐가. 갑자기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나에게만 들리는 근육이 놀라는 소리. 안돼, 여기서 포기하면 절대 안 돼. 일분만 쉬자고 하고 잠깐 추스른 뒤 다시 싯업 보드에 누웠다. 머릿속에선 너 오늘 병원각이다.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난생처음 무게를 치는 웨이트를 했다. 중량이 올라가는데 그걸 해내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아마도 돈 내고 받는 수업 뽕뽑아야 한다는 나의 강한 의지가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다. 코치는 지난 2주 단체수업에서 빌빌거리기만 하던 내가 생각보다 운동신경이 괜찮다며 놀라워했다. 한 시간 반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머리는 산발을 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체육관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밖으로 나왔다. 쏟아지는 태양빛에 눈이 부셨다. 갑자기 허기가 졌다. 떡볶이가 무척 먹고 싶었다. 배고픈 건지 몸이 힘들어서 매운 게 당기는 건지.
"수요일에 뵐게요. 한 달 동안은 죽었다 생각하시고 하세요. 몸이 가벼워야 해요. 올림픽 보면 육상선수들 있죠? 몸을 그렇게 만들어야 해요. 가능성 있어요,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속으로는 생각했다. 죄송하지만 저 오늘 떡볶이 한 번만 먹을게요.
낮에 투숙 하던 내 근육의 소리는 수업이 끝나고 흐물 해진 내 몸에 드디어 존재감을 드러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걸을 때마다 발목부터 허리를 타고 목까지 쭉 타고 올라왔다. 당장 수요일에 수업 있는데 집에서 맨소래담 바르며 해결할 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집에 가려다 말고 곧장 정형외과로 차를 몰았다. 뼈에 문제없으면 된 거다, 확인하고 싶었다.
의사는 돌팔이 같았다. 뼈에는 문제가 없는데 어쩌고저쩌고 계속 사족을 붙이며 비싼 시술들을 강권했다. 저 오늘 돈 많이 써서 예민한데 왜 그러세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결론은 인대가 조금 늘어났다는 거죠? 뼈에 문제없으면 됐고요. 소염진통제 좀 처방해주시고 테이핑 좀 해주세요."
앞으로 6개월을 운동해야 하는데 아픈데 생겨서 속상해 죽겠구먼 의사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자꾸 설명하며 겁을 줬다. 경찰 생활하면서 밖에서 순찰 돌고 사건 처리하고 하다가 정형외과를 얼마나 많이 다녀봤는데 의사가 약 파는 것도 모를 리가 있나. 비즈니스 마인드로 가득한 이 병원은 다신 오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처방전을 들고 병원문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주방 물건들을 몽땅 식탁에 옮겨놨다. 싱크대가 너무 지저분해서 좀 치워야겠다고.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이미 벌려놔서 안 할 수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주방 청소를 시작했다. 남편 오기 전에 다 끝내야 국을 끓이든 고기를 굽든 할 텐데 아, 미치겠다. 산더미 같은 빨래도 해야 하고 몇 시간 솔로처럼 돈 쓰고 운동하고 병원 갔다가 집엘 돌아오니 현실이란. 수세미를 들고 있자니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해서 올해 꼭 뜻한 바 이루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애라도 있어봐. 어휴 내 꿈 이런 게 가당키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