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이 뭐길래(2)

#33. 딸, 너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마

by 풍선꽃언니
딸,
넌 손에 물한방울 묻히지마
손에 물 한번 묻히면
죽을 때까지 그런 팔자로 사는거야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할 때 몇번인가 얘기를 했었다.

"우리집은 친척이 별로 없어. 명절때 그냥 여행가"


사실 <친척이 없다는 것>은 실제로 친척이 없다는 의미라기 보단 양가 어느쪽에서도 혈육의 정을 느낄만한 인물과 터놓고 지내본적이 없다는 의미로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대강 우리 집 친족관계에 대해서 알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내게 들었음에도 결혼식 당일 가족사진 찍을 때 우리 쪽에 사진 찍을 사람이 직계외 두어명에 불과해 휑한 횡열을 보고 나서야 사태에 대한 실감을 했던것 같다. 남편 측 식구들이 신부측으로 옮겨와 사진을 찍었고 하객들 사이에서 가족사진으로 말이 나올 때 수치심에 화끈거렸다.


엄마의 엄마와 형제자매는 내 결혼식 날을 기억이나 했었을까.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엄말 뭘로보면 큰언니 집안 개혼에 개미새끼 한마리 안보일수있느냐고. 내 결혼식에 안왔다고 유치하게 삐져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내 엄마를 무시하는 그 태도에 정말 화가 치밀었다.


"안오면 말지~ 냅둬~"


엄마는 대수롭지않은듯 화제를 돌렸다. 씁쓸함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으로 애써 괜찮은척 하는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엄마가 더 속 상할까봐 따따부따 남은 말은 꿀꺽 삼켰다.


장녀의 딸 결혼식인데 그까이것. 취급하며 받아먹을거 다 받아먹고도 기억도 못하는 집구석에서 설이나 추석이 별거겠는가. 그저 돈이나 주면 좋아하고 돈봉투 들고 만나야 만나지는 사이에. 남보다도 못한 가족도 혈육이라고 그들 중 가장 착한사람이었던 엄마가 총대메고 잘 해보자 외치면 <잘난 언니가 알아서 좀 하지>하는게 그 집안의 룰이라면 룰이었다. 그런 집구석의 장녀였던 엄마는 엄마의 부모가 부모이기를 내뺀 그 자리를 메워본다고 아둥바둥 뺑이 치다 죽었다.


"니네 엄마가 예민해서 그래."

장례식장에서 이모는 엄마가 예민해 죽었다고했다. 닥쳐.

<이제 이모가 잘난 장녀가되었으니 어디한번 잘해보지> 하고 면전에 대고 쏘아붙일까 하다가 바짝 약올라 흥분해 날뛸 것을 생각하니 심장이 벌렁거리는 통에 그만 뒀다.


엄마는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언제 부턴가 서초동 큰집에는 아빠와 우리 남매만 오갔다.


제사준비한다고 전날 잔뜩 장을 보고 새벽부터 우릴 깨워 서초동에 갔다가 친척들이 모두 돌아간 밤 늦은 시간이 되서야 행주를 놓던 엄마. 큰 엄마는 늘 손님처럼 다녀갔고 고모는 친척들이 모인 김에 고스톱이나 쳤던 때에도 엄마는 소처럼 차리고 치우고 하던 사람이었다. 시집에 발길을 뚝 끊은 것은 눈높이가 싱크대 상판에 겨우 닿을만한 키가 되었을때 무슨 이유에선지 그날따라 할머니가 나에게 설겆이를 시켰기 때문이었다. 머리 위로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을 올려다보며 서러움을 느낀 나는 부엌 문지방에 서서 한참을 울어제꼈고 어른들은 끌끌 혀를찼다. 나는 집에 돌아와 목이메여 숨도 못쉬고 서러움에 복받쳐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일러바쳤다.그날 밤 엄만 아빠랑 쌍소리를 하며 대판 싸웠다. 그리고 엄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장장 십년을 서초동 가는길에 동행하지 않았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설마하니 할머니가 싱크대에 손도 못담그게 작은 아이한테 진심으로 가사일을 시키려던 의도 였을까 싶다. 설령 시켜서 할 수 있는 나이 일 때라도 별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하면되는 것이였으나 당시 나의 서러움의 중심엔 엄마가 있었다. 서초동에 다녀오면 아픈 엄마. 친정 부모가 배운게 없고, 가진게 없어 살며 무시당할 일이 많았던 엄마는 당시 분위기에는 어느집에서나 그럴 법한 시집살이조차도 아주 치욕적인 수모로 느꼈고 늘상 내게는 <손에 물한방울 묻히지마, 손에 물 한번 묻히면 죽을 때까지 그런 팔자로 사는거야> 하며 실제로도 결혼하기전까지 내가 먹은 밥그릇 국그릇 한번 씼게 하지 않고 키웠다.


내가 할머니의 설거지 하라는 말에 서러움이 폭발했던건 그런 것이었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

나는 그날 설거지하는게 싫어서 운게 아니야
내가 서초동가서 설거지나 하고왔다고 하면 엄마는 내가 학대를 받았다고 느낄만큼 모욕감을 느낄 것이고 엄마가 정말정말 슬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날의 사건으로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 설거지 한번 하랬더니 그거 하기 싫다고 앵앵 울어버린 이상한 아이가 되어버렸지만 내가 그날 그랬기 때문에 엄마는 슬퍼하는 대신 아빠에게 화를 냈고 서러워하는 대신 시어머니와 맞장 뜰 용기를 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날 부로 며느리 파업을 했다. 다시는 본인 스스로 식모살이라 느꼈던 시집살이에 응하지 않았다.

엄마는 못 배운 부모 밑에서 뻑하면 두들겨맞기나 하고 컸어. 너무 없이 살다보니 억울한 일도 많고 차별받을 일도 많더라. 니네 클때 돈 한참들어갈때 엄마 진짜 생리대 살돈 없을 때도 니네는 그런거(가난) 모르게 최선을 다해서 키웠어. 너 그런거 아니.

너무 자주 들어서 지겹던 엄마의 레퍼토리. 너무 부담스러워서 피하기 바빴는데 항상 엄마가 그런말을 할때마다 부채의식이 쌓여서 괴로웠으니까. 엄마한테 갚을 빚이 많다보니 내가 괜히 태어나서 감히 나만 맛있는걸 먹을 수도, 좋은 데 가서 즐겁기도 늘 미안해 온전히 행복을 누리고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엄마는 물질적이든 정서적이든 부모로 부터 받을 그 어떤 사랑과 배려도 누려보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일군 가정 속에서 경제적 안정을 찾고 사랑하는 우릴 얻었지만 엄마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엄마 마음의 가난은 내게 대물림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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