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이 뭐길래(1)
#32. 얼어죽은 개똥이와 죽은 엄마
개똥이는 얼어죽었는데
비쩍 꼻아 먹을 것도 없어서
내다버렸다
나와 남동생은 연고가 전혀없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빠는 대한항공 항공정비사였다. 엄마와 결혼 전부터 김해공항에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었고 엄마는 럭키금성 영업관리자로 치약 같은 생필품을 슈퍼 등에 공급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서울에 살던 엄마와 김해에 살던 아빠는 엄마와 친분이 있던 고모가 다리를 놓아 만났다.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중간지점인 대전에서 만나 일년 연애 끝에 결혼 했다고 한다. 엄마는 당시 스물 넷밖에 안되었을 때였는데 아빠와는 여덟살 터울로 나이 차이가 많이 졌다.
엄마가 엄마친구 남편들은 한창일 때 아빠는 퇴직을 앞두고 있다고 투덜거리기에 그럼 또래 만나지 왜 나이많은 남자랑 결혼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또래 친구들은 같이 밥먹으러 가면 뭐먹을래 어디갈까 일일히 묻고 내 비위 맞춘다고 바빴는데 니네 아빠는 만나면 미친놈처럼 아무데나 지가 좋다는데 들어가서 국수 한그릇 시켜주고 먹어 그러더라. 그땐 이상하게 그게 좋았어.
그게 결혼을 할 만큼 사람이 좋을 이유인가?..모르겠다..
김해에 살던 동안 나야 어렸으니 동네에 또래 친구들이 있어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뛰어 놀아도 그 시절이 좋았지 회상하겠지만 엄마에게 연고없는 시골에서 말단직원 아내로서 사택에서의 삶은 가히 최악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어린나이에 서울서 지방으로 시집온 것도 놀라서 펄쩍 뛸 일인데 애둘딸린 아줌마가 되어서는 아빠보다 고참 아저씨 와이프들이랑 이집저집 품앗이 하는 생활이라는게. 그래서 인지 엄마는 어렸을 적 내 기억에 자주 아팠다.
설이나 추석 때처럼 명절이나 길게 낀 공휴일이 있을 때 우리가족은 당일치기로라도 서울에 꼬박꼬박 올라갔다. 잠실의 아빠집과 용산 원효로의 엄마집.
엄마는 아빠집에 가면 화장실도 제대로 못갔다. 아무래도 시집이니까 편하기야 하겠느냐마는. 그렇다고 친정집에 간다고 마음편히 누워 쉬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집을 가도 엄마는 예민했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엔 아빠랑 싸웠다. 맏이다 보니 눈치가 빤해 엄마의 기분 주파수에 따라 내 기분도 널뛰기를 했다. 서울에 가는게 싫었다. 잠실에 가면 엄마 시어머니가 불편해서 싫었고 원효로에가면 푸세식 화장실에 다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 지붕 밑 차가운 방바닥이 싫었다.
엄마의 시집에도 친정에도 키우던 강아지가 한마리 있었다.
잠실에 살던 강아지는 대게 향긋한 냄새가 났고 반짝거리는 털에 까만 코를 가지고 있었다. 나를 보면 반갑다고 달려들었다. 식구들은 강아지를 아기처럼 어르고 달래며 사랑했다. 아빠 무릎 위에 앉아있는 그 작은 동물을 만지면 물릴까봐 무서웠지만서도 부드럽고 따뜻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원효로에 살던 강아지의 이름은 개똥이었다. 집밖의 차가운 시멘트 마당에서 먹고 자며 하수구에서 들락날락하는 쥐를 쫒았다. 찌그러진 놋그릇에 우리가 먹다남은 밥을 먹었다. 아주 새까맣고 순한 강아지였는데 나를 보며 반갑다고 얇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줬다. 나는 목줄에 묶여있는 강아지를 쪼그려 앉아 빤히 쳐다보며 관찰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강아지가 없어졌다. 얼어 죽었다는데 비쩍 꼻아 먹을래도 먹을 게 없어 그냥 내다 버렸다고 했다. 지금도 할머니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그 말투와 눈빛을 소름끼치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