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에서 엄마와 마시는 커피 한잔

#31. 어머니, 날씨가 좋네요. 커피 한잔 드세요.

by 풍선꽃언니

남편이 도련님 독립 준비에 한창이라 송파에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아빠와 나는 집에서 엄마의 유품을 조금씩 정리했다. 유품 정리는 맨날 하긴 하는데 표시가 안 난다. 물건들을 매만지다 보면 거기에 얽힌 수없이 많은 추억들이 난립하여 참 난감하다. 못할 짓도 이런 못할 짓이 없다.

엄마가 만든 담금주를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뒤통수에 꽂히는 아빠의 잔소리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다 버려버려. 최대한 다 버려야 버린 만큼 정리도 되는 거야

센 척은 혼자 다하지만 정작 상담센터 가서는 아내가 사는 동안 참 따뜻하게 잘해줬노라고, 많이 그립다 했단다.


엄마가 떨어져 죽은 집에 계속 살 자신이 없어 아빠와 우리 부부는 합가 결정을 하고 아빠 집과 우리 집 두 채다 전월세로 한 달 만에 뺐다. 같은 날 두 집 살림 합쳐 넣을 수 있을만한 큰 집을 전세로 계약했다.


종일 유품을 정리하다가 오후 두 시 즈음되니 너무 피곤했다. 아빠는 한 시간만 자겠다며 방에 들어가 누웠다. 나도 그제 코로나 백신을 맞은 여파로 왼쪽 팔이 뻐근하고 어지럽기도 해서 곧장 따라 들어가 아빠 옆에 나란히 누웠다. 늘 엄마 자리였던 이 자리도 이사와 동시에 새 침대가 오면 영원히 사라져 버리겠지. 슬픈 감정에 사로잡혀 훌쩍이는 것을 아빠가 들을 새라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려다 덮었다.


아빠 우리 좀 이따가 엄마한테 다녀올까?
저번에 꾸밈 꽃 달아놓은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지난번에 남동생의 <납골당 꾸미기용> 화병에는 요즘 트렌드에 맞는 파스텔톤 꽃이 달려있었다. 예뻤다. 다만 엄마 취향은 아니었다. 엄만 쨍한 색감을 좋아하곤 했다. 가령 아주 샛노랗고 새빨갛고 이런 색깔들. 아빠가 꽃 색이 바랜 것처럼 왜 이러냐고 아쉬워했다. 속이 상해 몇 번을 얘기를 하길래 꽃을 좀 바꿔야 아빠 마음이 편하겠다 싶어 다음에 올 때 바꿔주면 돼 하고 돌아왔다.


하루 종일 집에서 유품 정리하다가 누워있기. 때 되면 끼니를 때우고 넷플릭스<삼국지>만 계속 보는 생활. 집 밖에 바람도 쐴 겸해서 나갔다 오면 아빠나 나나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아 남편이 돌아오면 엄마한테 다녀오자고 했다.


아빠는 도대체 몇 번을 말하냐. 자주 납골당에 가고 싶지 않다. 가면 자꾸 생각이 나는데 가서 좋을게 뭐가 있느냐. 꽃을 바꾸고 싶으면 49제 내일 모래인데 그때 가면 되지. 가고 싶으면 너 나가라는 둥 오만 짜증을 다 내더니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고 등을 돌려 누웠다.


"아버님, 저 왔어요." 남편의 목소리. 오후 세시 반.


잔뜩 다운된 우리 집에 남편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아빠가 남편에게 고생했다며 잘 다녀왔냐고 묻는 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나도 퍼뜩일어나 알은 체 했다.


"다녀왔어? 집은 잘 구했어?"


"응. 걔(도련님) 독립한다고 좋아하더라. 처음 혼자 살아보는 거니까 좋겠지. 나이가 서른다섯인데"


남편이 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며 대답했다.


"어디 나갈까?" 남편이 물었다.

(날씨도 좋고, 어린이 날인데 우리 까르 어린이(강아지) 바람도 쏘일 겸)


아빠와 집 밖에 같이 나가고 싶은 마음에 어디라도 갈까 하는 찰나였다.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쇼핑센터 타령을 했다.


"아빠, ○○(남편) 중고 골프채나 한번 보게 스타필드라도 다녀올까? 간 김에 ○○(동생)도 보고. 걔 오늘부터 휴 가래"

아까보다 더 시큰둥한 목소리


"너네끼리 다녀와. 오래간만에 오붓하게 둘이서"


아빠는 내가 시무룩해서 다시 안방 침대로 기어들어가는 꼴은 또 보기가 그랬는지 갑자기 방으로 따라 들어와 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그럼, 엄마 꽃이나 좀 바꿔주러 갈까? 간 김에 거기서 짬뽕이나 한 그릇 저녁으로 먹고 때우지 뭐"


파주에 가는 길은 평소보다 조금 밀렸다. 하긴 경모공원이 헤이리 바로 건너편이니 공휴일 나들이 나온 인파가 적지 않을 것이다. 파주에도 가나안 덕이 있는 줄 몰랐는데 도로를 타고 대기줄이 끝도 없이 서 있는 것을 보니 빨간 날 느낌이 났다.


매번 느끼지만 경모공원은 포근하게 햇살이 안아 주어 상실의 아픔에 치유를 주는 것 같다. 주차하고 꽃을 들고 올라갔다. 꽃은 엄마가 우리 집 거실에 조화로 꽃꽂이 해놓은 다발에서 꽃송이가 예쁜 것으로만 골라 뺀지로 자르고 전선 테이프로 묶어 부토니아처럼 만들어 준비했다.

우리 집 거실의 노란장미 다발(엄마의 작품)

꽃을 바꾸니 엄마 얼굴이 더 환하게 살았다. 엄마 얼굴은 햇빛에 비춰 반짝이는데 내 눈엔 눈물이 차올라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가족들은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내다보다 그랬냐" ㅡ 아빠

"엄마 나왔어. 미워 죽겠어(엄마 집 문을 때렸다)" ㅡ나


그런데 갑자기 남편의 한마디.

원망이나 슬픔을 한 방울도 섞지 않은 남편의 목소리.

"어머니, 저 왔어요. 날씨 좋네요. 커피 한잔 하세요"


날씨가 좋다며 엄마에게 편의점 커피를 권하는 남편의 모습이 묘한 편안함을 주었달까. 평소처럼 엄마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얘!"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것만 같아 눈물이 스르륵 거두어지는 것이었다.


엄마는 살아있다. 세상의 경계가 다른 그 어느 곳에서. 다만 내쪽에선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 없다. 그러나 엄마 쪽에선 그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난 조금 더 엄마 보기에 멋있게 살아야겠지. 엄마에게 날씨가 좋은 봄날엔 냉커피를 건네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별 일 아닌 양 남편이 그랬던 것 처럼 초연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면 엄만 더 행복할까?

엄마, 난 엄마를 너무 사랑했나봐.
사랑했다는 말로는 충분히 표현이 안되는 만큼.
나는 엄말 내 삶에 상실이 아닌 부활로 기억하고
육신이 아닌 영혼과 더불어 살아가 보고자 해
오늘의 결심이 무색하게 내일은 또 슬픔으로 무너지더라도 일어서려고 부단히 애써볼게.
엄마 사위의 커피한잔을 시작으로 다음번엔 내가
엄마와 어떻게 한번 또 같이 웃어볼까를 고민해 볼게
사랑하고 엄마. 49제 때 만나.




매거진의 이전글불입건 결정 통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