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망보험금이 지급되었습니다
#35. 엄마가 자살할 리가 없지
엄마 사망보험금 나온단다
실족사로 결정이 났단다
음식 하다 말고 자살하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냐
날씨가 참 좋다. 아파트 숲 사이로 멀리 보이는 북한산 백운대며 호수공원이 생명의 탄생을 말하듯 초록으로 싱싱하게 물이 든 요즘이다. 완연한 봄이 왔다.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 사고 이후로 휴대폰이 울리면 또 무슨 일이길래 하는 생각부터 들어 불안감이 엄습한다. 멍하지만 또 온유한 날씨와 일상에 취해 그런 일이 일어났었던가 망각하기도 하며 살던 중에도 휴대폰만 울리면 나는 엄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던 구월동 집 거실에 또다시 서 있다.
집에 언제 들어오냐는 아빠의 전화. 가족 중 누구도 엄마가 죽은 집에 혼자 있고 싶어 하지 않아서 아빠는 내가 어딜 가든 태워다 주고 태우러 오며 일상에 바쁨을 끼워 넣고 있다. 나 또한 아빠가 어딜 나가면 일상을 찾는 모습이 기쁘면서도 어디에 있고 언제 오는지 위치추적 어플까지 깔아놓고 종일 따라다니고 있다. 비틀거리는 우리가 추스르기도 전에 또다시 누군가를 잃으면 위태로워질 암묵적 불안이 서로를 지배하는 일상.
웃음을 잃어버린 요즘 우리 집 최고 효녀는 우리 막내 <까르>인 것 같다. 리클라이너 소파에 누워있으면 꼭 가족들 무릎 위에 몸을 쭉 붙이고 누워 순수한 눈망울로 두리번거리는 우리 집 강아지 까르. 아빠는 오후 네시면 까르를 데리고 호수공원 산책을 나서는데 칠십 대를 바라보는 아빠와 까르가 밖에 나가 두 시간 즘 걸으며 햇볕을 쬐고 오는 하루의 일과는 삭막한 요즘 내 마음 상태에도 작게나마 한 조각 행복이 되는 것 같다
오후 네시 다된 시각에 아빠가 산책 채비를 하는 중에 걸려온 불청객 같은 전화가 반가울 리 없는 나는 모르는 척 주방에서 서성이며 아빠의 통화 내용을 가만히 듣기 시작했다.
(아빤 내가 본인을 갑갑하게 한다며 집안에서 조차 아빠 주위를 맴도는 것을 몹시 불편하게 생각한다)
사망보험금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엄마의 사망보험금. 가족이 죽을 거라 생각한 적 없으니 큰돈을 담보로 넣어두진 않았고 보험 담당자는 재해로 인정될 경우 그동안 냈던 보험금 총액에 재해사망에 따른 보험금 일부가 지급될 것이라며 조사를 나왔었다.
경찰 조사 결과가 종결지어진 후 관련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내용과 자체 보험 사고조사 담당자의 조사 결과를 종합하여 지급 여부가 결정된다고 했었다.
지난주 금요일 엄마 49재를 삼일 앞두고 보험 보상담당자는 엄마의 사망 경위가 자살이 아니라 결정지었다는 통보를 해온 것이다.
기뻤다.
비탄에 젖어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이지만 보험담당자의 말이 기뻤다. 돈은, 얼마 되는 큰돈이 아니라 엄마 장례비용 즈음에 불과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가족들을 괴롭히던 의문의 답을 처음으로 누군가 처음으로 해준 것이었다.
엄마가 조현병을 앓고 있었으니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은 아닐까?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 의문을 안고 실족사의 가능성에 기대어 정신 승리하던 우리들 가슴속에 엄마의 사망 경위는 재해며,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되었다는 보상담당자의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바로 다음 순간 죽음을 원치 않았는데 착하고 겁 많은 엄마가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생각을 뱉지는 않았다.
시신의 손 모양이 쭉 펴져있는 것으로 보아 살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즉사). 죽는 중에는 가족 걱정 내려놓고 자신의 삶과 죽음에만 대해서만 집중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지막까지 미련 부리지 않아 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가슴 깊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서늘해지며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아빠, 까르 산책 잘 다녀와"
한결 홀가분해 보이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평소보다 밝게 인사하고 뒤돌아서서 가슴에 불을 담고 다짐했다.
엄마, 아빠는 내가 잘 모실게.
엄마 짧은 인생까지 아빠 다 보태주라.
엄만 거기서 우리 가족 어떻게 사는지 잘 지켜봐.
내가 진짜 멋있게 일어서는 모습 보여줄게.
엄마가 우리 가족 위해서 살다 간 인생
후회 없게 진짜 멋지게 살아낼게
흐뭇하게 보상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