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가 함께 살던 마지막 집에서의남은 일주일. 엄마의 죽음 후에 유품 정리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아빠나 남동생은 여자 물건이다 보니 남길 것 버릴 것 구분이 어렵다는 핑계로 엄마 유품 정리에서 손을 뗐다. 엄마 소지품뿐만 아니라 부엌살림 정리도 온통 내 차지가 되었다. 어차피 우리 집에서 주방일 볼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내가 해야 할 이유만 많긴 하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유품 정리를 나 힘들다고 아빠한테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막 버리자니 옷 하나 소품 하나 남은 추억들이 붙잡는다. 특히 엄마 옷을 정리하면서 자주 입던 옷들에서 엄마 냄새가 날 때.
누군가 유품을 정리하다가 엄마 옷을 버리지 못해 끌어안고 살다가 엄마가 정 그리우면 열어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나마도 냄새가 날아갈까 봐 꾹 참았다가 한 번씩 열어보곤 얼굴을 묻고 엉엉 운다는.
엄마가 죽은 지도 두 달 즈음 지나가니 나올 눈물은 다 쏟아내 말라버린 것 같다. 더 이상 유품 정리하며 울지 않는다. 엄마 옷을 정리하는데 큰 마대자루로 다섯 번 정도 가져다 버리고 나서 든 생각은 웃기게도 나는 언젠가 죽을걸 감안해 내 유품을 미리 정리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유품 정리하는 게 심적으로도 힘들지만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다. 정리하다 보니 하다못해 내가 대학 때 입던 카디건 마저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어놓았더랬다. 이렇게 살림 욕심이 많은 사람이 어쩐다고 다 팽개치고 이렇게 떠났대.
아빠는 엄마의 못 버리기 습관은 고질병이라고 했다. 먹고살기 어려운 집에 태어나 없으면 아쉬우니 언젠간 쓰겠지 하고 다 모아두기 바쁘다는 소리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유통기간의 상식이 부족했고 미니멀리스트에 가까운 아빠와는 버리는 문제로 무척이나 많이 싸웠다.
가방정리를 하다가는 피식 웃음이 났다. 대학교 3학년 때인가 모 신문사 주관 영어 말하기 경시대회에 나갔었다가 은상을 받았다. 그때 상금이 80만 원이었다. 당시 모 포럼 VIP연사 통역 자리가 들어왔다. 대학생 시절엔 고급 알바였다. 때문에 시상식은 엄마가 대신 참석했어야 했다. 엄마는 내 이름이 호명될 때 상장과 상금을 받아 들고 나 대신 기념촬영까지 했다고 했다.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신촌에서부터 일산까지 상장을 품에 꼭 안고 싱글벙글 웃으며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그때 그 상금으로 난생처음 엄마에게 가방을 선물했다. 최고 비싼 물건은 아닐지라도 최고 기쁜 마음으로 물건을 샀던 날이었다. 가방에서 나온 영수증을 보니 작년 9월께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 같았다. 내가 선물한 걸 아낀다는 명목으로 처박아놓기만 하진 않았구나 싶어서 고마웠다. 내게도 추억이 있는 가방이라 내 옷장으로 들일까 하다가 엄마가 평소 나눠주는 것을 좋아했고 며느리를 아꼈으니 올케에게 건네 주기로했다.
(엄말 대신 해 잘 사용해 주길 바라)
엄마 옷을 정리하다 보니 엄마의 마지막 외출은 3.19.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홈쇼핑을 보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카디건 니트를 하나 선물했었다. 그 옷이 다리미판 위에 걸쳐져 있길래 들춰보니 묵직했다. 주머니에서 엄마의 지갑과 차키, 내가 준 카드로 결제한 파리바게트 딸기 생크림 영수증 한 장이 나왔다. 갑자기 조현병이 악화되어 죽기 전 3주 동안 엄만 내게 거의 연락하지 않았는데 그날은 엄마가 전화를 했길래 무척이나 의아하게 느꼈던기억이 있다.
딸, 파리바게트 포인트 적립 어떻게 할까 해서~
엄만 그날 수영을 같이 다니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서 외출을 했었다고 한다. 그 주 주말 우리 부부가 친정에 방문했을 때 그 집에 가서 알이 꽉 찬 게장을 먹었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고 했다. 속이 안 받아주니 더부룩했어도 오래간만에 즐거웠다고. 주말부터 조금 상태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와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빠 말이 엄마가 좀 호전된 것 같다고 했던 게 월요일. 엄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은 게 화요일.
엄마의 옷방으로 쓰는 방에 주저앉아서 옷을 정리하다가 생각이 엄마의 죽음에 이르니 화가 치밀었다. 엄마 이게 무슨 짓이야 왜!
낸들 죽고 싶어 죽었겠니
엄마가 이렇게 답할 것만 같은데 말해 뭐하나 싶어 관두자 관둬하고 몇 번 씩이나 옷방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이사다. 내 친정은 엄마가 부재하다 해도 엄마의 사랑이 여전히 도처에 산재하다. 아빠와 우리 부부가 그 자리를 메워 남동생이 찾아올 친정을 가꿔나갈 것이다.
엄마의 흔적이 세월에 무뎌져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내가 강해져야 할 것 같다. 내 안에 힘은 엄마의 사랑, 사랑, 또 그 사랑 덕분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