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58세에 죽었다. 발인하던 날 엄마의 차가운 두 뺨에 마지막으로 손을 대어봤을 때도 피부에 주름 하나 없이 뽀얘서 난 더 슬펐다.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서 누워있는 것도 상상하기 힘든 마당에 우리 엄만 너무 젊고 예뻤으니까.
엄마는 피부에 난 기미 주근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비타민 관리니 토닝이니 하며 현대의학의 힘을 빌린 후천적 노력으로 뽀얀 피부를 가졌고 선천적으로는 서양인 같이 움푹 들어간 눈두덩에 진한 쌍꺼풀, 약간 각진 턱까지 더해 엄마는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젊은 시절 노총각이던 아빠는 여덟 살이나 어린데 예쁘고 키도 컸던 엄마와 함께 걸어 다니면 괜히 우쭐해 지곤 했다고 한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서도 밝은 갈색 염색을 주기적으로 했다. 엄마 나이 때 아줌마 답지 않은 세팅 파마를 했고 드라이까지 싹 하고 외출하면 엄마 나이에 서른다섯 먹은 시집간 딸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며 내게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부동산에 집을 보러 갔을 때도 사장님이 엄마랑 언니 같네, 하시기에 엄마는 우쭐해하고 나는 우울해 있으니 아빠는 엄말 보며 주책이라면서도 <어이구, 우리 소녀>하며 허허 웃곤 했다.
엄마가 죽기 전날까지도 레몬수로 직접 만든 스킨로션을 발랐고 필링 시트를 이용해 피부를 깨끗이 닦아냈다는 것은 쓰레기통을 비우다 알았다. 습관이 무서운 건지 외모에 대해선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지론 때문인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서른다섯 먹고도 쓱쓱 아무 크림이나 바르고 여드름도 손으로 쥐어짜는 날 엄마는 한심스럽게 생각했다. 나만 보면 주름 생기니 보톡스라도 맞으라며 안 간다는 날 잡아끌고 다니던 에스테틱이 있었다.
오늘 엄마가 죽고 근 두 달 다되어 미루고 미루던 에스테틱 회원권 정리를 하러 왔다. 마지막 같이 왔을 때가 작년 가을이었는데 나에게 살쪄서 턱이 두 개니 보톡스를 맞으라길래 나란히 누워 시술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참 오랜만인 듯 익숙한 에스테틱. 도착하자마자 프런트 앞 커피머신에서 원두를 내리고 문 앞에 제일 넓은 의자에 앉아 하지도 않을 시술 프로그램 카탈로그를 넘기며 너 이것 좀 봐라, 할 것 같은 엄마. 그 자리엔 엄마 연배의 아주머니 두 분이 나란히 붙어 앉아있었는데 말라붙은 줄 알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마스크 속에 숨은 내 얼굴을 쓸어 흐르고 또 흘렀다.
아빠, 나 그냥 안 다닐래. 환불 안 해준다고 해도 돈 날리고 말지 뭐.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어.
회원권은 한 사십만 원 돈 남았는데 현실주의자인 아빠는 안 받으면 아깝다고 기어이 나를 태워 이곳에 데리고 왔다. 그러다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내 옆에서 한숨만 푹푹 쉬다가 그럼 내가 양도하거나 신랑한테 넘겨라, 하곤 나를 남겨두고 자리를 피했다. 우는 내 모습이 아빠에게도 엄마의 부재를 상기시켜 괴로워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사연을 알고 있는 상담 선생님은 두 눈덩이가 뻘겋게 부어오른 내 얼굴을 보시곤 티슈 한 장을 건네주었다. 한 손으로는 내손을 쓰다듬으며 다른 한 손은 모니터를 내쪽으로 돌려 보여주면서 손해 보지 않도록 정리했노라, 하며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한참을 얘기를 들었는데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상담 선생님 손이 죽은 엄마의 얼굴만큼이나 차갑다는 생각만 들어 나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하고 겨우 숨을 골라 말을 했다.
남편의 피부관리. 최근 새로운 계열사로 전배 하여 업무 적응하랴 셀러던트하랴 와이프 심성 케어까지 바쁜 남편이 얼마나 자주 짬을 내어 이곳에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엄마와 피부관리를 받고 1층으로 내려와 함께 웃으며 나누어 먹던 떡볶이가 이곳에서의 마지막 기억이고 싶다.
왜 우리 엄만 예뻤을까. 엄만 딸이 예쁘게 좀 하고 다니면 좋겠다고 지나가다 옷이며 화장품이며 늘 사다 주던 사람이었다. 오늘 본 내 몰골은 딱하디 딱한데 죽은 엄마는 다시는 내게 잔소리하지 않는다. 그게 사무친다
얘. 난 오늘 널 데리고 피부과에 꼭 갈 거야. 니 신랑이나 너 기분 좋으라고 예쁘다 하는 거지 너 진짜 못생겼어 엄마가 저번에 준 크림 바르니? 다 썼으면 한통줄까? 엄마가 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