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년된 추억의 커피잔

#40. 이제 너도 보내줘야 할 때

by 풍선꽃언니
웬만하면 다 버리라고
너네 엄마 생각이 나면 날수록
더 버려야 하는 거라고

엄마 유품 정리가 얼추 끝났다. 버릴 건 버렸고 남길건 남겼다. 주방 살림 일부가 남았는데 정체불명의 요리 재료가 참 많다. 몽땅 버렸다. 뭔지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었다.

엄마와의 추억이 많은 물건일수록 버리기가 괴롭다. 아빤 엄마가 생각나는 모든 것을 가차 없이 쓸어버렸다. 내가 가져간다고 남긴 옷들 중에서도 엄마가 자주 입어 아빠 기억에 있는 옷이면 몽땅 봉투에 처넣었다.


"나눠주는 거 좋아했던 사람이니 버리면 누가 주워가겠지"


그릇이 많은 집이었는데 이번에 정리하면서 그 많던 그릇이 다 어디 갔지, 하며 조금 놀랐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이제 물건 욕심 없다며 이것도 가져가라 저것도 가져가라 했다. 늙으면 사람도 변하는 건가? 왜 벌써 저런 소리를 하지. 속상한 마음에 가져가 봐야 코딱지만 한 내 집에 둘 데가 어딨냐고 빽빽거리고 휙 집으로 돌아왔다.


"계집애. 성질머리 하고는"


엄마는 내 친정에 꼭 있어야 하는 친정 물건을 자꾸만 내게 물려주려 했다. 그때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물건을 받아가는 것 까지는 좋다 이거야. 그런데 그렇게 하나둘씩 당연히 친정에 있어야 하는 물건이 내게로 넘어올 때마다 이러다 친정이 점점 작아지고 작아지다 없어질 것만 같아 불안한 내 마음은 왜 몰라주는 거야. 어떤 식으로든 상실을 걱정했다는 걸 엄마는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차라리 물건이 없어지는 게 낫지. 엄마가 없어져버릴 줄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건마는 지금도 이게 다 뭔지 어리둥절하다.


어쨌든 어제는 엄마 주방 살림을 쭉 정리하면서 엄마의 커피잔을 버렸다. 얼마나 살림을 깨끗하게 쓰는지 물건들이 A급 중고상품 수준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훗날 추억팔이 소품이나마 될까 싶어 가져 갈까 잠시나마 생각했는데.


엄마의 그릇엔 유독 장미 문양이 많다. 죄다 버리고 남은 커피잔 두 개. 아빠가 그마저 당장 가져다 버린다는 것을 몇 분이나마 오랜 추억과 함께 커피를 담아 마셨다. 거실 창가 볕이 잘 드는 소파 오른쪽 끝 엄마 자리에 앉아서, 엄마처럼.


이제 안녕. 엄마의 커피잔.

추억속으로 엄마도. 안녕

열다섯살 먹은 엄마의 커피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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