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인천 집에 짐 정리를 하러 다녀왔다. 버릴 거 버리고 짐을 좀 추려놓은 다음엔 시부모님이 우리 대신 들어와서 지낼 예정이다. 오후에 오랜 친구와 약속도 있고 해서 정신없이 정리를 했다. 찬장에 있는 양주를 꺼낸다고 빼놓은 의자를 걷어차는 바람에 왼쪽 네 번째 발가락과 발등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도 멍이 가라앉지를 않아 엊그제 엄마 49재날 오전에 제사음식 오기 전까지 잠깐 짬에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아빠가 보호자로 대동했다. 이상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나이 서른다섯에 성인이 돼서도 나는 미용실이든 병원이든 엄마나 아빠가 대동하는 게 좋다. 부모님 슬하의 딸 역할에 과몰입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왠지 사랑받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결혼하고도 주말마다 친정집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 거렸다.
안타깝게도 내 네 번째 발가락은 골절 진단이 났다. 깁스는 안 하고 버틸요량으로 소염진통제를 일주일치 처방해 달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주 뒤에 경과를 보는 것으로 사후 예약을 잡아주었다.
약국에 들러서 처방약이 다되기를 기다리다 올해 구충제를 먹은 적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몇 통사 야하지? 마음속으로 우리 가족이 몇 명인지 일일이 셈해보고 다섯 통을 집었다.
"다섯 통 맞으세요? 오천 원에 약값까지 만 칠백 원입니다"
딴생각을 하던 아빠가 계산하는 소리를 듣고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살려면 다 같이 먹게 사람 수대로 사야지"
" 아빠 우리 다섯 명이야. 엄만 이제 구충제 안 먹어도 돼"
"아. 그렇지. 참"
씁쓸한 듯이 그렇지 참, 하고 뒷짐 지고 돌아서는 아빠를 보며 생각했다. 엄마랑 숱한 날들을 같이 장 보러 다니며 애들 거 산다고 매번 습관처럼 여섯 개씩 집었겠지. 우리. 딸. 아들. 사위. 며느리 이렇게 여섯 명분. 물건을 사도 그랬을 거고 먹을 것을 사도 그랬을 테니 아빠 머릿속에 우리 가족은 아직 세 집 여섯 명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49재가 지났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빈자리를 메꾸고 살아가야 한다. 산 사람은 또 계속되는 삶 따라 살아가야 하니까.
오늘도 내가 곁에 있는데 사는 게 더 이상 재미가 없다는 아빠 말에 나는 억장이 무너졌다. 우리 가족은 언제까지나 여섯 명일 것인데, 다만 한 사람은 일찍이 육신이 떠났을 뿐 그 영혼은 우리 곁에 살아있음을 믿고 우리 가족 얼른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