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를 내(Raise your voice)

#49. 나를 지켜보는 남편이 마음 아프지 않도록

by 풍선꽃언니

돼지고기 볶음을 하고 근대국을 끓였다. 남편을 기다렸다. 칼(to the)퇴 하신다기에 모처럼 아빠와 우리 부부 같이 저녁을 먹겠거니 했는데 남편이 오지 않는다. 전화를 걸었다. 뚝 끊긴다. 다시 걸었다 <회의 중이니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동응답 거절 메시지.


아빠랑 저녁식사를 끝마칠 때쯤 남편이 도착했다. 밥상 두 번 차리는 건 번거롭지 않은데 저녁 늦게 식사하는 남편이 걱정된다. 매일 저러니 위가 안 좋아지거나 비만할 것 같다.


여섯 시 반 즈음부터 집 앞 공원이라도 산책하려던 걸 남편이 칼퇴하면 같이 가야지 하고 기다렸다. 퇴근하고 오면 피곤할 텐데 같이 나가 주는 남편 참 착하다.


아빠와 같이 살면서 부쩍 부부만의 시간이 줄었는데 이렇게 바람 쐬러 나오니 여름이 온듯한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죽은 지 두 달밖에 안되었는데 삶을 예찬하는 나 스스로가 약간 불쾌하게 느껴졌다.

엄마 제사 설. 추석. 기일. 이렇게 챙기면 된대.
제사비용은 반반 이런 거 말고 우리가 하는 걸로 하자.

내 결정이었다. 우리는 엄마 49재를 지내면서 <남원목기>에서 좋은 제기도 구입했고 제사상은 <정성 다믄>이라는 업체를 통해 치렀다.


내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첫째로, 남동생 부부가 내 성에 찰만큼 엄마의 제사를 성의껏 챙길 거라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남편도 장남이기에 시부모님의 제사가 장남 물림을 할 때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제사 문제로 돈 주고받고 요리하며 번잡 떨고 의 상하며 엮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의사표시인 것이다. 양가 모두로부터 구애받지 않고 양가 부모님의 제사 문제에 관한 한 차남들의 개입 없이 앞으로도 내 독립적인 결정으로 하겠다는 의미.


아버님께 하루 세끼 네가 밥해드리는 건 어렵다고 말해. 너는 어머님이 아니잖아. 직장 생활하던 애가 밥이나 하고 그러면서 니 목소리도 못 내고 하면 내가 아버님한테 섭섭함이 쌓여

우리 집 남자들은 배려심이 깊은 편은 아니다. 성격도 급하다. 대신 주어진 눈앞의 일을 돌쇠처럼 하는 우직함을 가졌다. 엄마가 워낙 만점 가정주부였고 남자는 가정 부양에 집중하는 집안 환경으로 우리 집 남자들은 성역할에 있어서 가부장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남편의 환경은 다르다. 어머니가 주로 바깥일을 하시고 가정적인 아버지가 살림을 챙기셨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서 자연스럽게 나한테 엄마의 짐을 지우는 듯한 모양새가 보기 싫얺던 것이다. 나도 묘하게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던 찰나에 남편이 꼬집어 말하니 날 위해 하는 소리라 고마운 줄 알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다 참는 날 이해 못해주나 싶어 양가감정이 일어났다.

네가 올케랑 잘 맞지 않듯 나도 처남이랑 잘 맞지 않아 그러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별말 안 해. 근데 처남이 자기가 모시고 사는 것도 아니면서 누나한테 아버지한테 잘하라는 둥 하면 내가 화가 나겠지. 내 동생이면 나한테 많이 혼났을 거야

남동생은 군 장교로 복무한 지 십 년 차다. 제법 부하직원도 생겼고 사회생활에 제 몫을 하고 산다. 자랑스럽다. 그러나 문제는 이놈이 누나한테도 지 부하직원한테 대하듯 말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 때문에 올케랑도 결혼하고 일 년은 무척이나 싸웠다고 한다. 나는 내 동생과 부딪히기 싫어서 그냥 우야무야 넘어가는 바람에 바로잡을 타이밍을 놓쳤다. 그런데 이런 남동생의 태도가 남편의 심기를 자꾸 거스르는 것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남동생보다 본인이 한참 형인데 본인 아내이자 손위 누나인 내게 말버릇이 공손치 못한 것이 기분이 상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엄마의 죽음으로 유약해져 있을 때 바로잡으려고 나섰다가 의가 상할까 봐 내게 본인의 불쾌함을 귀띔해 준 것이다. 내 목소리를 내라고, 말 함부로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라고. 아빠가 할 말을 내가 전달하며 서로 반감 사지 말라고.

남들이 그래. 다 커서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것도 힘든데 장인어른이랑 같이 산다고 하면 큰 결심 했다고 한다고. 내가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너 때문이야. 네가 행복하길 바라니까. 그래야 내가 보람이 있지.

남편은 아빠와 꽤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빠는 남편을 신뢰하고 주변에 사위 자랑도 참 많이 한다. 그렇지만 남편 말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보통은 나이 먹고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장인어른과 같이 살면 장인어른의 딸인 나와 자기 아내인 나의 역할분담에 맞는 예의와 처신이 필요한 것이다. 당장 둘만의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고 부부간의 은밀함은 더욱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때문에 신혼부부에게 합가란 여러모로 조심할게 많다. 남편으로서는 이 격동적인 시기를 나의 행복을 위해 감수하고 있는 셈인데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선택에 불만족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나의 목소리를 높이라고. 내가 일하는 여자로서 사회 안에서의 역할을 찾고 프리랜서 가정주부의 삶은 잠깐 엄마 체험판 정도에서 그치라고.

나는 온전히 네 편이야. 아버님은 너와 동생 둘에게 사랑을 나눠주셔. 나는 너만 보고 네 곁에 있어.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널 보는 내가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할 말은 꼭 해. 넌 그래도 돼.

남편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말에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지금은 모두가 변화에 적응하는 중이다. 각자의 스트레스와 싸우다 안정기가 찾아올 즈음 우린 모두 영혼만 함께하는 엄마를 끌어안고 행복해져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단점도 장점도 예쁘게만 바라볼 여유를 찾을 테니.


남편, 내 목소리 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을게.

나를 지켜보는 네가 불행하지 않도록.

내게 너의 목소리를 내줘서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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