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을 닮아가는 내 손
#42.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일하는 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손이 못생겼냐
누가 보면 집에서 물일하는 줄 알겠다
하루는 소파에 같이 앉아있던 엄마가 손을 내밀 어보라기에 손바닥을 쫙펴보여줬다. 손금이라도 봐주려나 했다. 손을 잡고 홱 뒤집더니 손등을 만지작거리며 까슬하다고 로션 좀 잘 바르고 다니라고 했다. 결혼 전의 일이다.
엄마는 가난한 죄로 어릴 때부터 밑으로 세명 있는 동생들 밥을 끓여먹이고 볶아 먹이고 했다고 한다. 재봉틀 만지다 바늘에 손을 찔렸는데 할머니가 된장 바르면 낳는다고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아 왼쪽 두 번째 손가락 손톱이 없다.
엄마는 유난히 수제비나 국수를 좋아했다. 뭐가 없으니까 있는 반찬 아무거나 쓸어다 넣고 국수랑 끓여먹으면 반찬 간이 배어서 그럭저럭 먹을만했다고 한다. 그때 먹던 입맛이 있어 나라면 물려서 못 먹을 것 같은데 엄만 그런 류의 음식들을 자주 찾곤 했다. 대신 공부할 나이에 맨날 밥상 차리고 치우고 얻어맞는 게 일이었다 보니 내게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키우겠다 결심을 한듯했다. 난 결혼 전까지 부끄럽지만 내 생리 묻은 팬티 한번 내손으로 빨아본 적이 없다. 조금 머리 크고 나서는 창피한 마음에 내 빨래는 내가 할라치면 엄만 내버려두어, 넌 가서 공부나 해, 하는 통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쁜 애가 된 거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
결혼하고 나서도 한 삼 년은 아무것도 안 했다. 요리를 배운 적도 없고 빨래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살림 행위 자체가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집에서 아버지가 살림 사는 모습을 보아왔던 남편이 조악하게 차린 밥상과 한 주 한두 번 돌리는 세탁에 의존해 삼 년 정도 그렇게 지냈다. 엄마는 반찬이며 쌀이며 몽땅 챙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과 소불고기 볶음, 잡채 같은 것들을 바로 해동해 볶기만 하면 되게 포장해 주말마다 친정을 찾는 내손에 들려 보냈다.
"엄마 안 줘도 된다니까. 집에 먹는 사람도 없고"
고마운데도 고맙다는 말 대신 이런 거 챙기지 말라고 밉게 말하는 딸에게 엄만 니 신랑이 무슨 죄냐며 굳이 바리바리 싸서 챙겨주는 것이었다.
왜 자꾸 주냐고? 내가 널 이런 걸 못 가르쳐서 퇴근하고 와서도 밥 못어먹는 니 신랑에 대한 미안함? 책임감?
엄만 그런 사람이었다.
(사실 나 편하라고 쥐여주던 거 다 알아 엄마)
내가 살림살이를 챙기기 시작한 지 이제 한 이 년쯤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엄마가 친정에 오면 체력에 부치는지 내게 설거지 좀 하라는 둥 살면서 한 번도 요구하지 않던 것을 부탁했다. 나는 하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핑계 대며 빠지기 바빴다. 설거지하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어린이가 그저 엄마 딸이 고만 싶은 심술에 그랬다.
엄마가 죽고 발인하는 날 엄마의 손가락을 만져봤다. 길고 얇은 손가락에 울퉁불퉁 뼈마디가 만져지는 마른 손가락. 나랑 꼭 닮은 손인데 세월이 묻은 그런 손.
나는 살림살이를 시작한 지 이제 만 3년 차 반은 주부가 되어있다. 지금은 휴직 중이라 가족의 위기 속에서 전업주부를 자처하고 있다. 아빠는 일주일 내내 새로운 메뉴로 입을 행복하게 해 준 엄마 밥상을 받다가 내가 차린 썰렁한 밥상에 불만이 많다. 어쩌겠어. 엄마 주부 짬이 얼만데 내가 댈게 아니지.
내 손이 쪼글쪼글해지는지 아빠가 엄마처럼 잡아보고 안쓰러워해주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남자들은 잘 모르니까. 아마도 죽는 날까지 아빠나 남편이 안타까운 건 내 손이 아니라 내가 차린 부실한 밥상일 것이다.
오직 엄마만이 딸의 거칠어진 피부가 안쓰러워 조용히 밑반찬 통을 쥐어줄 뿐. 그 반찬통 넣은 비닐봉지 속에 고무장갑도 서너 장씩 같이 챙겨주며 설거지할 때 쓰라고 귀띔하는 것도 엄마만 내게 해줄 수 있던 말.
딸은 살면서 엄마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