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36년 동안 쌓아둔 살림은 버리고 또 버려도 끝이 없다.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몇 번을 꽉꽉 채워 내다 버렸다. 엄마에겐 추억의 물건이었으니 보관하고있었겠으나 나는 버리고 또 버릴 뿐이다. 유품 정리라는 것이 날이면 날마다 작별 같은 거라지옥 속을 걷는 심정이다.
버릴 것을 구분하면 아빠는 그 물건들을 큰 캐리어에 실어 재활용 지정장소로 옮겼다. 반복. 그러다 툭, 한마디 내던졌다.
야. 창틀 이제 지우자. 엄마 이제 보내주자.
엄마가 죽은 날부터 오늘까지도 수십 번 그 흔적을 들여다보며 복받치는 슬픔을 견뎠다. 방충망을 열면서 손에 검댕이 묻은 채로 창틀을 붙잡고 내다봤겠지. 그러다 실족했을 거야.
엄마가 자살해 버린 건 아닐까 싶은 의심이 싹틀 때마다 그 흔적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그 흔적과 더불어 살고 싶은데 내일이면 우린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가고 세입자가 부른 입주청소 업체 사장님들이 창문에 얽힌 사연을 모른 채 검댕을 박박 지울 것이다. 그러느니 엄마의 흔적은 지워도 내가 정성껏 애도의 마음을 담아 지워야 할 것 같았다.
잠시 머뭇거리다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잘 참고 있었는데.심리상담 선생님이 아빠 앞에서 슬픔을 내색하지 말랬는데.잘 지워지지도 않는 검댕을 수세미로 박박 지우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너 또 왜 그래...
내 여린 마음에 상처가 된 줄 알면서 아빠는 짐짓 모른 체 한다. 안 슬픈 척하는 아빠를 보는 게 난 더 슬프다.
나는 아직 엄마가 추락해서 폴리스라인이 쳐 저 있었다는 그 2층 화단에 다녀온 적이 없다. 추락하는 엄마랑 부딪혀 나무가 많이 부러졌다고 들었다. 그러나 엄마 시신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찾아가 보기를 꺼렸다. 엄마가 발견된 장소에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으면서도 혼자서는 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술을 달싹이기까지 나는 내 상처만큼이나 아빠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 두려웠다.
아빠, 오늘이 마지막이라 이제 다시 안 올 건데 엄마 떨어진 거기 나랑 같이 한번 가주면 안 돼?
눈물을 온 얼굴에 뒤집어쓴 나는 고작 같이 가 달라는 말 한마디 꺼내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가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것 같아 꼭 오늘은 가자고, 용기 내어 말했다.
그래. 너 한 번도 안 가봤지 참. 가보자 그럼.
비가 많이 왔다. 내가 좋아하던 단지 내 2층 데크는 질척이는 화단과 어스름이깔린 비 내리는 밤이 어우러져 을씨년스럽기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장소가 되어있었다. 사람이 죽은 곳이잖아. 그것도 바로 엄마가.
나무가 좀 더 무성했다면 엄마를 쿠션처럼 받아줘 살 수 있었을까. 엄마가 있었다는 자리엔 소나무 잔가지가 흩어져있었는데 풀이 아직 자라지 않은 맨땅에 치여 으스러졌을 엄마를 상상하니 가슴에 깊은 진통이 밀려왔다. 아빠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우는 내 옆에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엄마. 우리 이사가.
죽은 엄만 우리가 이사 가는 줄 모르고 이 동네를 맴돌까 봐 엄마한테 어디로 이사 가는지 왜 가는지를 얘기를 했다. 말이라기보단 울먹임에 가까웠고 마스크 속 숨은 얼굴로는 빗물 섞인 눈물과 콧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엄마. 이거 한잔 받아.
엄마 있던 자리에 소주 한 병을 붓고 그래도 엄마 덜 아프도록 제 딴엔 최선을 다했을 소나무 밑에 쨍하게 노란 꽃 한 다발(비록 조화지만)을 심어 두고 집으로 올라왔다.
엄마 예쁘지? 엄마가 좋아할만한 걸로 샀어
정보공개 청구한 내용 나온 거야. 읽어봐.
하루라도 더 일찍 읽어봤다면 지난 두 달 나는 좀 덜 아팠을까. 뛰어내리지 않은 엄마가 추락하며 비명을 질러 옆 건물 사무실에서 누군가 신고하게 되었다는 경위를 확인한 게 약인지 독인지 모르겠다. 자살은 아니라는데 자살이 아니라고 해서 엄마가 죽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엄마가 죽은 날 아빠의 심문조서와 신고자 진술서, 엄마가 발견된 장소의 사진자료 첨부 등등 아빠는 내게 안보여주고 지워버리려 했다고 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그러나 나는 몰랐을 때 평생 안고 갈 엄마 죽음의 의문에 따른 고통과 엄마 죽음의 경위를 잘 알았을 때의 아픔은 분명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보긴 잘 봤는데 잔상이 남아 한동안 또 침울한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지금은 이사 중. 나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왔다. 엄마 살림 다 끌어안고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