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도둑이 산다
#44. 나를 귀여운 도둑년이라 불렀던 엄마
이사한 집에서의 아침은 생경하다. 어제 두 집이 한집으로 합쳐지는 대규모 이사를 감행하였다. 아빠와 우리 부부 까맣게 불태운 과격한 하루를 보냈다. 집에 물건들이 자리 잡으려면 한 달은 정리만 해야 할 것 같다. 냉장고 두대에 김치냉장고 한대를 채운 온갖 종류의 양념이며 장아찌며 먹어서 없애든 썩어서 없애든 시간 싸움이 될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랜만에 정말 푹 잠든 기분이 들었다. 전날 먹은 소주 한잔 때문인지 잠자는 환경이 바뀌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새집엔 엄마의 흔적이 덜해 숨쉬기는 좀 낫다는 것과 몸 쓰는 일을 하니 상념에 사로잡히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안방 화장실에 세 개나 놓여있는 화장실용 슬리퍼를 보다가 문득 몇 년 전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이제 갓 임용된 경찰공무원이었고 남편은 대기업군이긴 하나 국내에서 월급 짜기로 유명한 회사에 다니고 있어 우리 둘 재정상태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킨텍스에 집은 분양받는다고 일은 벌여놨지 돈은 없지 월세방에 나앉아야 할 형편이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혼인신고를 해야 관사 배정이 된다는 말에 결혼식은 시월인데 오월부터 혼인신고를 하고 그 집에 들어갔다. 인천 학익동의 30년 된 나 홀로 아파트였지만 어찌나 고맙던지. 혼수는 몽땅 카드 할부로 했고 친구들이 많이 내준 축의금으로 몇 달치씩 갚아나가며 생활에 기틀을 잡아가고 있을 때였다.
킨텍스에 해 놓은 집은 입주 전에는 무이자 조건의 대출이 가능했지만 입주 후 주담대 돌릴 때부터 유이자 조건이었다. 우린 적금 대신 선납을 택해 돈 만원이 생기면 돈 만원을 선납하는 식으로 한마디로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신혼 시절을 보냈다.
사실 그 당시 그런 우리의 생활은 <사서 고생>이기도 했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도 되었고 1 주택 보유(예정) 자에 불과했으니 완공되면 들어가 살아도 되잖아. 그런데 내 욕심에 좀 부모님한테 보여주고 싶은 그런 게 있었다. 부모님이 자수성가를 했으니 나도 내 남편하고 잘 해낼 수 있어! 일평생 엄마랑 아빠가 일군 재산은 노년에 하고 싶은 거 하는데 다 쓰세요! 이런 거,
호기롭게 굴긴 했지만 매달 집에서 생활비 타다 쓰듯 오만가지 식자재를 공수해왔는데도 막상 빚을 갚고 나면 돈이 늘 부족했다.
친정집은 항상 물건이 많았다. 엄마가 잘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결혼과 동시에 킨텍스로 같이 나올 계획으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두 분이 지낼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림을 줄여나가던 때였다
엄마랑 아빤 이제 큰집 필요 없어. 너네 시집 장가가서 나가니 큰집이 왜 필요하겠니. 청소하기만 힘들지
엄마는 우리가 자라온 방 네 개짜리 집을 팔고 킨텍스에 이사 가기 전까지 열 평 넘게 작은 집에 전세를 살았다. 그 기간 동안 집에 그 많던 물건은 베란다와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바로 내 보물창고였다.
신혼집엔 전자제품은 새것으로 마련했고 가구들은 결혼 전에 살던 물건들을 죄 들고 갔다. 그런데도 사소하게 살게 많았다. 가령 선풍기라든가 밀대 걸레라든가 하는 생활집기들. 내 돈 주고 사본적도 없지만 왠지 사기가 아깝기도 한 물건들. 그때마다 엄마의 관심밖에 있어 보이는 우리 집 보물창고를 헤쳐 필요한 물건을 큰 종이가방에 넣어 실어 날랐다. 엄마는 뭘 챙겨가든 제 물건 남은 거 챙겨가겠거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집이 좀 정리가 되고 엄마와 아빠를 신혼집에 초대했다. 나름대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 집기가 갖춰져 제법 사람 사는 집 같은 구색이 갖춰졌을 때였다. 엄마는 신혼 전에 우리 집에 와보고 둘이 신혼인데 부모가 자꾸 가는 게 실례라며 한사코 우리 집에 오길 거부했다. 인천에서 일산까지 주말마다 달리는 것은 우리 몫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우리 집에 왔다.
여기 도둑년이 하나 있네. 말 만한 여자 도둑년
나는 대번에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 줄 알았다. 화장실을 들어가며 엄마가 신은 바로 그 욕실화. 예쁘지는 않은데 잘 안 미끄러지고 좋아 보여 옛날 집이었던 우리 집 미끌거리는 타일 위를 걷기에 딱이다 싶어 내가 집어온 슬리퍼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어디 어디? 어디 도둑년이 있어?"
나는 시선을 회피하며 모른 체 했다.
(엄마랑 눈 마주치면 빵 터져 웃을 것 같아서)
엄마가 대답했다.
"우리 집 욕실화가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와 있네, 누구긴 누구야 너지, 이 귀여운 도둑년"
나를 바라보며 정말 귀엽다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는 것이다. 소녀 같은 우리 엄마.
이번에 이사하면서 우리 집에서 쓸 욕실화를 새로 샀다. 시집 것 까지 총 네 개를 샀다. 이제 엄마의 보물창고가 없으니 내 욕실화는 내가 사야 한다. 슬리퍼 한 개 사는 게 아까워 친정 집에서 <훔쳐> 오다가 엄마가 죽고 나서는 시집 것까지 네 개씩 슬리퍼를 사는 내가 낯설다. 아마 내가 친정에 슬리퍼 지나가다 샀다고 말하며 툭 가져다 놓으면 엄만 깔깔 웃을 것 같다
어유. 우리 귀여운 도둑년.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 쓰라고 화장실 슬리퍼도 사 오고 그런데.
나이 먹으면, 화장실 같은 데서 잘 넘어지고 그런데. 엄마 뼈 부러지면 잘 붙지도 않을 텐데 싶어서 사 왔지
솔직하게 말하면 될걸,
나는 또 삐뚤게 받아치겠지.
"엄마, 생각해서 사 와도 뭐라그래"
엄마. 난 엄마가 많이 그립네.
거긴 어때? 여기처럼 봄이 왔어?
나 이제 눈으로 안 울고 가슴으로 운다. 나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