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위하는 것이 아닌 아빠를 위한 것

#55. 심리상담센터 선생님의 조언 2

by 풍선꽃언니
아빠의 하루 일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아빠를 보호하기 위해서요

비말 차단용 유리판을 사이에 두고 선생님과 나는 마주 앉았다. 이번으로 여섯 번째 만남.


"아빠가 요즘 들어 짜증을 많이 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빠 인기척이 없으면 불안해요. 바로 전화를 걸죠. 항상 없으면 운동하러 간 거예요. 그래도 확실히 해야 안심이 되죠. 낮에도 누굴 만나는지 어디 가서 몇 시에 들어올 건지 물어봐요. 그런데 아빠는 제가 묻는 게 싫은 것 같아요. 며칠 전엔 "아씨, 어떻게든 되겠지. 쯧" 하길래 무슨 일이냐고 말 한마디 붙였다가 니 서방한테 하듯이 나한테 물어보지 말라는 둥 짜증 나게 왜 그러냐는 둥 난리를 치셨어요. 괜찮냐고 묻는 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들으시면서 항상 메모를 하신다. 메모 내용이 내 눈에도 두서 있게 정리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한참 정리하시다가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이 허를 지른다.

아버님은 Y 씨(나)의 행동에서 불안감을 느껴요. 자꾸 어머님의 사고를 잊으려고 하는데 Y 씨의 질문 속에서 자꾸 어머님이 보이는 거예요. "쟤가 저러는 게 다 지 엄마가 죽어서다" 생각하니 자꾸만 어머님 돌아가신 게 떠올라서 화가 나시는 거예요.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없으니 내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 아빠를 챙기고 있는데 아빠는 되려 내 행동 때문에 구속과 속박을 느낀다고 하니 말이다. 아빠의 기분을 맞추기 어려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어느 날은 기분이 좋다가 어느 날은 아침부터 짜증이 나있다. 초조하다 보니 뭔가 안 좋은 게 더 있을까 싶어 또 물어보고 물어보면 화내고 아빠와 나는 같이 살면서 이렇게 어려웠을 때가 없다.

제가 일반적인 애도 상황에 비정상적으로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나요?

선생님은 "솔직히 말한다면.."으로 운을 뗐다.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Y 씨(나)의 애도는 당연해요.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를 잃으셨는데 슬프지 않을 수 없죠. 갑자기 사고가 났으니 세상이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해해요. 그런데 문제는 Y 씨의 아버님에 대한 집착에 있어요. 아버님은 스스로를 Y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돌보고 계세요. 그런데 불안해하는 딸이 옆에서 계속 질문을 하는 거예요. 평범하지 않죠. Y 씨가 불안하다는 걸 아버님은 알고 계세요. Y 씨는 Y 씨가 힘들 때 어머님한테 털어놓을 수 있었나요? 아마 아닐게요. 왜일까요? 맞아요. 어머님이 불안해 보이니까요. Y 씨가 자아를 찾고 안정감을 되찾아야 원하는 대로 아버님을 보호할 수 있어요. 지금 Y 씨는 아버님을 보호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아버님을 힘들게 하고 있는 거죠.

선생님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 일리가 있는데 동시에 상처가 되기도 했다. 내가 아빠를 위해 하는 일들이 아빠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과 나의 증상들이 편집증에 가까운 행동이라는 진단이 나를 서글프게 했다. 편집증이라면 엄마가 가지고 있던 병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데 아빠를 지키려는 내 행동이 아빠에겐 엄마의 속편이 되어 고통을 주고 있다는 점이 나를 괴롭게 했다. 동시에 아빠와의 정서적 독립을 위한 내 노력이 부족하고 또 필요하다는 지적이기도 해서 아직 거기까지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물가에 헤엄치는 법을 모른 채 아빠 손을 놓아보라는 말로 들려 버거웠다.


분명한 것은 내가 심리치료를 받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함이고 앞으로의 삶이 행복하기 위함이니 전문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다다음주 월요일에 상담이 예약되어있다. 아빠의 상담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상담 가능 횟수는 남아있는데 내가 사정사정해서 다섯 번만 가달라 부탁해서 가던 상담이고 오늘이 다섯 번째였다. 반갑게도 선생님 말씀이 아빠가 3주 뒤 상담을 한번 더 예약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고, 아빠에게서 좀 더 지켜봐야 할 심리적 어려움이 보이면 상담을 더 진행하도록 적극 권유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아빠와 합가해 살고 있다. 미혼일 때 엄마와 함께 살던 시절과는 다르지만 나는 아빠의 남은 여생 끝에는 <고마운 우리 딸><사랑하는 우리 딸>로 남고 싶다. 내 여생 끝에 아빠가 같은 의미 이듯.


아, 방금 선생님께서 보내온 반가운 소식!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마워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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