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와 나의 거리

여전히 소비자일 때 행복한 나

by HYoung

하루를 마치고 모니터 앞에 앉는 순간만큼은,

나는 아무 역할도 맡지 않는다.



일하는 동안에도

나는 수없이 많은 화면을 마주한다.


검토하고 만들어야 하는 수많은 기획안과

확인하고, 판단하고, 정리해야 하는 수십 가지 일들.


밀려오는 화면들 속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한다.



그런 하루가 끝나고,

다시 혼자 모니터 앞에 앉으면

그 모든 역할이 잠시 사라진다.


그 화면 앞에서는

될지 안 될지를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소비자로 화면을 마주 보는 시간.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나는 가장 편안하다.



콘서트장에서 관객석에 앉아 있을 때도 비슷하다.


무대 위를 올려다보며,

나는 여전히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 된다.


평가보다 박수가 먼저 나오고,

판단보다 설렘이 앞선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던 세계의 근처에서 일하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아직 객석에 머문다.



내가 처음 이 세계를 만났던 그 자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