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총회와 크림파스타
나도 이제 완장을 찼습니다.(?)
두 달여의 긴 겨울 방학을 끝내고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으로 가게 되었다. 야호.
하지만 우리 막내 별이는 여전히 내 꼬랑지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것마저도 사랑스러운 우리 막내.
우리 택이(첫째)는 올해 3학년이 되었다. 3월부터 학교 알림 메시지로 휴대폰은 열일을 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오는 학교 알림을 받아보니 총회 참석 여부를 묻는 알림이 눈에 띄었다.
총회? 1, 2학년 때에도 총회의 참석을 권고하는 알림장을 받기는 했었지만 웬일인지 참석하기가 꺼려졌다. 딱딱한 분위기의 발표와 회의 형식의 분위기가 싫기도 하였고 그곳에서 학부모회의 대표와 부대표를 뽑는다니 그 투표 과정에 참여하고 결과까지 기다릴 생각에 첨석 하기도 전에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택이의 친구 부모님들과 안면을 트고 지내거나 두루 다니며 친하게 지내는 엄마 그룹이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혼자서 총회에 참여하려니 여간 큰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웬일인지 총회에 참여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새로 부임하여서 정보가 전혀 없는 택이의 담임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호기심이 첫 째 이유였고, 아이를 학교에 맡기면서 너무나 학교의 일에 무관심한 나의 모습이 죄송스러웠다고 할까 , 조금은 학교의 일에 참여하여 그래도 아이를 맡긴 학교의 선생님들과 교직원 분들께 감사의 표현을 나름 하고 싶었다.
거기다가 남편의 말도 한몫하였다.
"사람들 많이 모이는 것 힘들어하는 것 알아.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봐."
이 말 한마디에 나는 '참석 가능' 란에 체크를 하게 되었다.
총회가 열리는 날, 두 해 전 남편의 대학원 졸업식에 입고 갈 요량으로 산 멋들어진 투피스 정장 한 벌을 꺼내 입어 보았다. 너무 꾸몄달까. 온 동네방네 ' 나 총회 가는 학부모입니다.' 팻말을 들고 걸아갈 것 같은 느낌에 고스란히 옷을 도로 집어넣고 깔끔한 검정 슬랙스에 흰 셔츠, 남색 코트를 입고 길을 나섰다.
물론 4살 셋째 별이의 유모차를 달달달 끌고서.
학교 강당에 도착해 보니 그리 많지 않은 학부모님들이 와 있었다. 다 합해봐야 고작 50여 명? 아니,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분명 내가 네이버 카페에 '초등학교 총회, 꼭 가야 할까요?'를 검색해 봤을 때는 대부분의 댓글들이 '저는 총회와 공개 수업은 꼭 가요.' '다른 행사면 몰라도 총회는 필참.'등의 글들이 많았는데 막상 총회에 도착해 보니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총회가 열린다고 해서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는 국회의원도 그의 명함을 돌리며 총선 유세를 하더니만 막상 와보니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었다.
일단 그래도 왔으니 가만히 앉아 교장 선생님들의 말씀, 교무 부장 선생님의 말씀, 일 년간의 학교 운영 계획 등등을 잘 들었다. 의외로 좋은 정보들을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물론 우리 별이를 조용히 시키며 가끔 간식을 입에 넣어주며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물티슈로 열심히 닦아대며.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드디어 대망의 담임 선생님과의 만남 시간. 사실 이 시간을 위해서 긴 시간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두들 각반의 교실로 돌아가고 나도 별이의 유모차를 달달 끌며 첫째의 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가 너무 싸했다. 아니, 이 정적은 뭐지? 설마 나 빼고 아무도 안 왔을까 싶었는데 슬쩍 들여다본 교실에는 정말 선생님 한 분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부터 심장이 요동을 쳤다.
아차.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반대표를 뽑는다고 했었는데....... 설마 나가 반대표가 되겠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야속했다. 지금 들어가면 빼도 박도 못하고 나는 한 해의 반대표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내빼자니 그것도 모양이 아니었다. 나는 급한 대로 계단으로 내려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급해. 심각한 일이 벌어졌어. 지금 총회에 참석했는데 교실에 와보니까 학부모가 나만 왔어. 이제 교실에 가면 내가 반대표가 될 것 같아. 어떡해?"
"도망쳐."
남편의 단답이 들려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도망쳐. 들어가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들어가서 못한다고 할까? 어떡해 으앙."
알아서 하라는 남편의 두 번째 단답을 뒤로하고 나는 교실로 향했다.
선생님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첫째 엄마입니다만...?"
"어머니 어서 오세요. 안 그래도 아무도 안 오시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어요. 이리 오셔서 첫째 책상도 보시고 사물함도 보시고 교실도 한 번 둘러보세요."
생각보다 더 상냥하시고 편안하게 대해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살짝 놓으며 교실을 훑어보았다. 깔끔하고 깨끗했다. 그리고 우리 첫째의 사물함과 책상을 보자니 스스로 잘 정돈해 놓은 물건들이 놓여있어 보기가 좋고 안심이 되었다. '짜식, 집에서도 그렇게 정리를 좋아하더니 학교에서도 잘하고 있군.'
교실을 다 보고 나서 선생님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첫째가 굉장히 착해요. 말도 잘 듣고, 수업에도 집중하고요." 괜히 해주시는 칭찬이래도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수업을 방해하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어머니,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도 아시죠? 반대표 뽑는 게 일이랍니다. 좀 부탁드려요. 그리고, 하시는 김에 학년 대표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시는 일은 전혀 없어요. 그저 이름만 살짝 올리는 것이니 큰 부담은 가지지 마세요. 제가 3학년 주임이라서 학년 대표도 뽑아야 하거든요."
으앗,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피할 수 없는 그것이 왔구나.
"선생님, 저는 아기도 있고 (갑자기 내 마음에서 4살 막내는 이제는 어엿한 형아에서 아기로 변신했다.), 에 또, 이런 대표 같은 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또 그만한 그릇이 안 되는데요... 하하"
"괜찮아요, 어머니. 저도 어제 제 아이들 학교에 갔다가 반대표와 학년 대표를 맡고 왔어요. 정말 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어머니가 맡아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아니, 이 바쁘신 선생님도 학부모로서 반대표를 맡고 오셨다니. 그렇다면 나도 해야지라는 생각이 냉큼 났다. 보아하니 선생님께서 부담을 주실일을 전혀 맡기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선택할 수 있었다.
" 네, 선생님. 선생님도 하셨다니 저도 할게요. 대신 저 이름만 살짝 올려놓는 날라리 반대표 할게요. 하하하."
"감사해요. 어머니!!"
선생님은 정말 얼굴이 한결 편해지신 것 같았다. 학기 초라 꾸려야 할 서류들도 많으실 테고 새로 부임한 곳이라서 적응하기도 바쁘실 테니 반대표에 학년대표 뽑는 과제 하나 다한 기분이시겠지? 선생님이 편해 보이시니 내 마음도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왠지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한 번도 반장이나 부반장이 되어본 적이 없다. 그런 것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조용하고 숫기 없는 아이였으니. 그런데 마흔에 내가 우리 택이 덕에 학부모 반대표와 학년 대표가 되었다. 아무 하는 일이 없다손 치더라도 이 감투가 마치 내게는 하나의 작은 전환점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대표라 할지라도 주위의 우리
초등학생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세심하게 바라봐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다 자식 같은 아이들인지라 늘 눈에 들어오기는 한다.
이제껏 뒤로 빼기만 하고 슬금슬금 피하기만 하며 하지 않았던, 그러나 언젠가는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일들을 한번 해 보는 것.
그게 오늘 내가 내디딘 작은 한 걸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 하루는 참 길었다. 이렇게 힘이 없는 날에는 간단한 저녁이 최고!
버섯, 햄, 마늘을 총총 썰어 넣어 올리브유에 볶다가 우유, 치즈를 넣고 살살 저어주고 그 사이 7-8분 끓인 물에 삶았던 면을 넣어 휙휙 저어주면 크림파스타 완성! 여기에 기호에 따라 소금을 한두 꼬집 더한다. 간단하고 참 고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