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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할아버지와 백년 집

한번 더 해피엔딩

by 신호영

사람은 평생 무엇을 남기는가.

누군가는 돈을 남기고

누군가는 빚을 남기고

누군가는 이름을 남기고

다른 누군가는 무명으로 사라진다.

빈 손으로 와서 제 집 울타리 하나도 갖기 힘든 시절.

여기 제 손으로 지은 집과 평생을 함께 한,

집과 함께 자기 인생의 끝을 생각하는 한 남자가 있다.


전기도 물도 없고, 길과 함께 인적마저 끊긴 삼척시 신기면 사무곡에는 정상흥 할아버지(85)가 산다. 한 때는 10여 가구, 30여 명이 집집마다 소를 키웠고 농사로 소출도 많이 올리던 터였지만, 70년 대 정부의 이주정책으로 한 집, 두 집 떠나가 결국 남은 집은 정 할아버지의 굴피집 한 채. 가족들마저 자녀 교육 문제로 시내로 떠나가 버린 게 1985년. 지난 30년간 사무곡을 지켜온 건 정씨 할아버지와 그의 오랜 친구 굴피집이다

(△ 삼척시 신기면 대평리 사무곡(士武谷)에 위치한 정씨 할아버지의 집. 오지 중의 오지)


정씨 할아버지와 굴피집이 있는 곳은 멀기도 멀다.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걸어서 2시간 거리. 계곡을 세 번 건너고, 경사 40도에 이르는 깔딱고개를 몇 번이나 지나야 닿을 수 있는 집.

길이나 넓은가 하면 그 또한 아니다. 5척 단신의 정씨 할아버지 홀로 수십 년을 디뎌 만든 길은 오지 전문 PD들에게도 좁고 힘든 길, 좌측으로 낭떠러지를 끼고 다니려면 배낭 하나조차 버겁기만 하다. 이 깊은 산중에 사람들이 찾을 리가 만무. 산새들과 다람쥐, 멧돼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첩첩산중을 그와 그 집만이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


이 깊은 골에서 살아가는 것은 생활 그 자체가 노동.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물과 전기다. 이십 분 거리에 유일하게 할아버지가 기댈 수 있는 샘이 있지만 가파른 경사 탓에 물 한 짐 지고 오는 것도 수월찮다.

자연스레 두 번 씻을 거 한 번 씻고, 두 모금 마실 것 안 마시며 살아왔다. 그래도 물은 아껴 마시고, 빗물 받아 빨래하고 설거지하면 된대도 전기는 아낄 수 없는 불편함이다. 전기가 없는 탓에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건 밥 하기. 그야말로 먹고 살려 노동한다.


장작 넣고 불 때어 그 숯으로 화로에 밥을 안친다. 오래된 냄비 속 밥이 골고루 잘 익게 하기 위해선 30분이 넘게 사방 돌아가며 부채질을 해줘야한다. 이렇게 밥 한 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총 2시간, 이런 불편함을 정씨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30년 동안 해오고 있다. 해 지면 달랑 호롱불 하나 켜고 두메산골을 지킨지도 그만큼의 세월.

허나 사실, 할아버지는 불편함을 모른다.

(△ 백 년 전부터 쓰던 화로로 밥을 하고 있는 정씨 할아버지. 이렇게 밥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두 시간)


1931년 태어나, 네 살 때 사무곡에에 들어왔다. 스물 여섯, 군에 입대할 때까진 읍내에 나가본 적도 없었다. 차남으로 위로 큰 형님, 아래로 여동생들과 막내 남동생을 뒀던 터라 집안 일은 그의 독차지였다. 다섯 살 무렵 시작한 지게질에 열 살 즈음부터 허리는 꼬부라졌다. 형님과 막내동생이 글을 배울 때도 그는 계속 나무를 지고 농사를 지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그가 글을 배운 건 군에서였다. 아비 혼자서 지기엔 너무 무거웠을까, 삼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엉망이었다. 삼천 평 땅에 황기를 심었고 세 해가 지나 황기를 캐고 나서 지금의 땅에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산은 높았고 굴피는 귀했다. 굴참나무를 찾아 십리 길을 다녔다. 굴피로 지붕을 모두 얹는데 삼 년. 기둥을 하는 소나무를 건넛 산에서 지고 온 것도, 수백 그루 굴참나무를 벗겨 지붕을 이은 것도 모두 정 할아버지였다. 이렇게 지은 집은 사무곡에서 규모가 가장 컸고, 실제로도 큰 집으로 매김했다. 힘겨운 농사를 끝내면 사무곡 사람들은 어김없이 굴피지붕 아래 모였고 마을의 대소사도 굴피지붕 아래 논의됐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매 오 년마다 굴피 지붕을 새로 가는 사이 정씨 할아버지의 두 아들과 두 딸이 태어났고,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마을 사람들은 편리함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려갔고, 할아버지의 아내와 자식들도 읍내로 떠나갔다.

모두가 떠났기 때문에 정씨 할아버지는 불편함을 느낄 수 없다.


편리함을 누려본 적도 없지만,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그 또한 떠나가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굴피집 부뚜막에 앉아 초피 열매를 다듬고 있는 정씨 할아버지. 그의 모든 생활은 굴피집 지붕 아래 이뤄진다)


불편함을 불편한 줄 모른 채, 매년 봄이면 초피와 두릅을 따고 각종 모종을 심는다. 이어지는 여름에는 800평 밭에 김을 메고, 굴피 지붕을 새로 이을 굴참나무 껍질을 벗긴다. 굴피지붕을 새로 잇다보면 어느덧 감이 익고, 수확할 시기가 된다. 그 사이 틈틈이 초피열매를 팔고, 부추를 팔고, 한 근에 5만원도 넘게 받는다는 하수오를 캐다 판다. 겨울이 오기 전 쓰러진 나무들을 져놓고 그렇게 아들,딸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될 돈을 모으고 손녀들에게 줄 용돈을 챙겨둔다.


그렇게 정씨 할아버지는 홀로 지낸다.

한 여름 장맛비가 내릴 때도, 할아버지만을 위한 눈이 소복이 쌓일 때도 언제나 굴피집과 함께 홀로 지낸다.


이쯤 되면 물어볼 수밖에 없다.

“왜 산중에 혼자 사세요. 무섭지도 않으세요?”

“사람이 무서운 거지, 짐승은 무섭지 않아요. 멧돼지도 사람을 무서워해서 먼저 덤비는 법이 없어요”.

그의 대답은 언제나처럼 높임말, 왜 혼자 사는지에 대한 물음엔 줄곧 답을 않는다.


아랫마을 대평리 어르신들 또한 걱정이 많다.

“거기 혼자 계시다 다치거나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혼자 계시냐, 얼른 내려 와라”.

“사람은 제 죽을 때 되면 아는 법이래요. 나도 죽을 때 되면 다 아니 걱정 안해도 돼요.”


(△ 하수오 씨앗을 날려보내는 정씨 할아버지. 사무곡에서의 생명은 이어진다.)


어쩌면 세상이 겁날 수도 있다.

어느새 시장 사람들도 할아버지의 사투리를 온전히 알아듣지 못하게 됐고, 산 아래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할아버지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말이다. 여든 다섯 평생의 인생과 굴피집을 함께 두고 내려오기에 아래 세상에서의 정씨 할아버지는 너무도 작고 외롭다.


어쩌면 우리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정씨 할아버지 또한 아들을 위함이다.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유배를 택한 것일 수 있고,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인 굴피집을 더 온전히 지켜주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그렇게 정 할아버지는 지금도 굴피지붕 아래 흙을 바르고 기둥을 다시 세우고, 해마다 조금씩 지붕을 덮고 있다.


할아버지가 굴피집을 지키는 것인지, 굴피집이 할아버지를 지키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렇게 사무곡에는 정씨 할아버지와 굴피집이 살아가고 있다.


채널A 휴먼다큐 <한번 더 해피엔딩>

12월 16일 (수) 저녁 8시20분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