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 여행보다 더 의미있는 여행(feat.오마이뉴스)

새해 첫날, 시부모님이 트렁크에 가득 실어주신 것

by 윤슬

2026년 새해 첫날 아침, 해돋이 대신 남편과 시부모님을 뵈러 가기로 했다. 아침 7시 무렵 성수대교에 비상등을 켠 차들이 즐비했다. 순간 큰 사고가 난 줄 알고 쳐다보았다. 롱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군인들처럼 행군하듯 성수대교를 줄지어 걷고 있었다. 성수대교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한 행렬이었던 것이다. 그들 덕분에 성수대교에서 전남으로 향하는 긴 여행길에 새해 첫 일출을 준비하는 해님의 붉은 기지개를 볼 수 있었다.

▲성수대교와 고속도로에서의 해돋이 ⓒ


우리는 무안으로 내려가는 차에서 2026년 첫 해와 무지개를 보았다. 왠지 모를 설렘과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감에 들떠 신나게 운전을 했다. 시부모님은 시골에서도 늘 다양한 일정으로 바쁘게 지낸다. 혹시 약속이 있을까 걱정되어 정안휴게소에서 새해 인사 겸 염탐 전화를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일정 있으신가요?"


"너희도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해라. 오늘 점심은 마을회관에서 다 같이 모여 떡국 먹는다."


아차차, 시부모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고 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대문 앞에서의 깜짝 방문을 포기하고 이실직고를 했다.


"저희 무안 가는 길이에요, 2시간 후 도착해요."

"어메, 어쩐 일이다냐. 아부지가 노인회 회장인디, 서류 정리를 잘해서 군에서 상금을 줬어야. 그 상금으로 오늘 회관에서 다 같이 떡국 먹을 건데, 너희도 같이 먹자."


우리는 귤과 롤케이크를 넉넉하게 사서 마을 회관으로 갔다. 스무 명 남짓한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마치 본인들 자식인 양 모두 반갑게 인사하며 '잘 왔다'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얼떨결에 우리는 주민 일원이 되어 떡국을 먹었다.


손맛 일품이었던 새해 첫 떡국

▲전남 무안 차뫼마을의 회관


역시 전라도 손맛은 일품이었다. 굴과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떡국은 부드럽게 속을 달래주었고, 달달한 겨울 시금치가 듬뿍 들어간 잡채도 맛있었다. 가정에서 직접 만든 도토리묵에 무안 특산품인 자색 양파로 양념한 도토리 묵무침 또한 최고였다. 시부모님께 식사를 대접하러 갔다가 오히려 우리가 대접을 받은 모양새가 되었다. 롤케이크를 상에 놓으며 시어머니가 말했다.


"이거 서울에서 온 거여. 맛있게들 잡수셔요."

"엄마, 그거 무안에서 산 건데?"

"니들이 서울에서 왔으니께 서울 빵이지. 호호"


마을의 최고 어르신의 나이는 95세였다. 자녀 분들과 식사가 있어서 불참하셨다고 했다. 덕분에 이날 회관에서는 94세 어르신이 최고참이었다. 70대의 어르신들이 94세 어르신의 식사 수발을 들고 간식을 챙기는 모습이 뭉클했다. 이런 모임이 없었다면 독거 어르신들은 집에서 쓸쓸히 TV를 벗 삼아 식사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부모님이 장을 보고, 부녀회장을 비롯한 몇몇 회원들이 그 식재료로 정성스레 떡국과 반찬을 만들고, 아랫목이 따끈한 회관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새해 첫 식사를 하는 이 뜻깊은 자리에 우리 부부가 함께 하는 영광을 얻게 되어 감사했다.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상경하기로 한 후 큰방에서 1시간 동안 낮잠을 잤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불편해할까 봐 큰방에 있는 전용 의자 대신, 주방의 식탁 의자에 앉아 유튜브를 보며 우리 부부가 깨기를 기다렸다. 시아버지의 배려에 죄송하면서도,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 한 편이 뜨거워졌다. 입이 자꾸 마른다는 시아버지를 위해 지난 일본 여행에서 사온 사탕을 드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냉장고와 창고에서 이것저것을 꺼내셨다. 동치미, 갓김치, 파김치 그리고 무안 황토 고구마까지. 새해 첫날 시부모님과 가볍게 식사하고 올라오자고 출발한 여행길이었는데, 트렁크가 한 가득 찼다. 내일 출근할 아들이 걱정되신 어머니는 식당에서 밥 먹고 헤어지자고 제안했다. 센스쟁이 어머니.

▲한우 갈빗살과 서비스로 나온 차돌박이 육회 ⓒ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긴 김치 3종 세트와 겨울 대표 간식 고구마를 차에 싣고, 무안 시내에 있는 한우 맛집으로 갔다. 시아버님이 좋아하는 소갈빗살 4인분을 주문했다. 서비스로 차돌박이 육회도 나왔다. 역시 시골 인심이 최고다. 갓김치 장아찌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반찬이다. 숯불에 고기를 구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82세의 시아버지와 78세의 시어머니는 최근 임플란트를 위해 치과 진료를 받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말했다.


"치과에서 진료 보려고 기다리는데, 다른 사람 엑스레이가 보였어. 세상에나 임플란트가 8개나 있더라고."

이 말을 듣고 있던 시어머니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시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임플란트 8개 인디."

"와하하하하"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고, 시아버지는 말을 이어 나갔다.

"어머니 발치 할 때 입 주변이 다 멍들어서 엄청 고생했제. 많이 묵게 당신."


식사 후 주차장에서 시부모님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는 서울로 출발했다. 당일치기 전남 여행은 처음이었지만, 차가 막히지 않은 데다 크루즈 기능을 활용하니 생각보다는 수월했다. 뜻밖의 방문에 좋아하시는 시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그 어떤 해돋이 명소 방문보다도 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서울로 가는 차에서 남편과 2000년대 유행가를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이야기하며 호두과자를 먹는 것도 또한 행복이었다.


"여보.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서로 의지해서 같이 병원도 가고, 회관에 모여 마을 사람들과 식사하시는 게 참 좋은 거 같아. 우리도 그렇게 같이 늙어가자."

"응 그래."


천천히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부모님과 어르신들을 보며, 우리의 노후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았다. 사춘기 자녀들을 키우며 노후 준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인생의 방향성을 잡고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해 배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미래를 대비하며 2026년의 계획을 세워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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