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 셋은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자매이다.
연애를 할 때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시누이가 셋이라 좋겠다."
그때 나는 남편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시누이가 셋인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있단 말인가.
2024년 봄, 친정 엄마는 생을 마감하고 아빠 곁으로 떠났다.
엄마가 작고 한 지 3주 지나는 날은 내 생일이었다. 내 곁에 친정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4주 후는 49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례식과는 또 다른 슬픔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딸로서의 역할과, 외며느리로서의 역할이 겹치는 힘든 생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시아버지의 팔순 잔치 날이기도 했다.
출근하듯, 습관적으로 옷을 입고 행사장으로 갔다. 선물은 미리 준비해 놓아 부담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멋쟁이 시아버지에게 직장 다니는 며느리 찬스로 명품 옷을 선물하고 스타일링을 해드렸다. 지인들은 명품을 알아보고 한 마디씩 했다.
“아따, 옷 멋지네~누가 사줬단가?”
“우리 메누리가 사줬지”
시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었다. 마음은 슬픈데 웃어야했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웃고, 먹고, 이야기하다 보니, 우울하고 슬픈 기분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서 빨리 잔치가 끝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잔치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 찰나, 둘째 시누이가 본인 집에서 시아버지의 2차 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5분만 있다가 가라고 간곡히 말했다. 시누이 집에 도착하자 나는 허물어지듯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시누이 세 명이서 2차 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막내 시누이가 새하얀색 진주 모양의 초콜릿이 듬뿍 올라간 우아한 케이크를 들고 나왔다. 그 케이크는 아버님이 아닌 내 앞에서 멈추었다.
“우리 며느리, 생일 축하한다. 고생했다”
내 생일 축하 모임이라고 하면 사양하고 집에 갈까 봐, 시아버지 2차 파티를 핑계로 댔던 것이다. 시아버지는 두툼한 봉투를 건네며 나를 꼬옥 안아주었고, 케이크에 있는 며느리 공로상을 낭독해주었다. 이윽고 시어머니가 향긋한 꽃다발을 건네며 말했다.
“너는 이제 며느리 아니고 우리 집 넷째 딸이다’”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시아버지 팔순 준비하느라 바쁘고 분주한 와중에도, 나를 챙기는 시누이들의 마음이 고마웠고, 다시 엄마가 생긴 것 같아 좋았고, 아빠 같은 시아버지의 품이 포근했다.
이제서야 고백한다. 결혼 19년 차인 지금, 시누이 셋은 나에게 축복이며 자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