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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형광 Jan 31. 2021

작업치료사가 키우면 안 되는 두 마리의 강아지

아이를 만나기 전에 개조심!

2013년

어린 작업치료사에게 발달평가가 의뢰된다.

어린 작업치료사는 아직 ‘환자’가 내 무지를 아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전자의무기록(EMR)에 기록된 이름, 나이, 진단명, 의사의 경과기록 등을 자신의 검사지에 빼곡하게 적는다. 아이의 경과 기록에는 CPSQ 라고 적혀 있고, 어린 작업치료사는 준비하던 검사도구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치료해야 하는 문제를 찾기 위해, 나름 생각한 작업치료사답다고 느끼는 질문을 한다.

.

.

“손, 발을 못써서 못하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지금 못하는 것들 중에, 작업치료실에서 훈련하길 기대하는 게 있으세요?”

“인지가 좋아지면 뭘하고 싶으세요?”

.

.

그렇게 ‘작업치료사’에 의해

아무것도 못한다고 ‘결정된 아이’가

아직은 ‘어린’ 작업치료사에게 의뢰되었다.


2021년 1월 30일.

어느덧 어렸던 작업치료사는 시작을 준비하는 어린 작업치료사가 될 학생들을 만난다.

이제는 발달평가를 위해 검사도구를 사용 방법을 교육할만큼 자란 치료사는 강의마다 어린 시절 했던 자신이 잘못 알고 있던 것에 대해 반성하며 이야기를 전한다.


“여러분은 아이를 만날 뿐이고,

그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함부로 아이를 추정하지 마라”


전자의무기록 프로그램은 병원 내의 의료진들이 서로 간의 소통을 위해 참으로 유용하다. 여러 분야의 관점과 기록들은 환자의 의료사고를 방지하고, 환자들의 경우에는 반복적인 대답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병원 인증의 단골 질문은 “검사 및 처치 전, 의무기록을 환자정보를 확인했습니까?” 일 정도로 환자를 만나기 전의 기록 확인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초기 검사를 하기위해 저장된 기록을 확인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무시무시한 “맹견”들이 있다. 바로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종의 위험한 개들이다.


작업치료사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은 종류의 검사도구를 사용한다. 아이들의 경우 간단한 10분 짜리검사 도구부터, 검사 시간만 50분 이상이 걸리는 검사자에게도, 아이에게도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녀석들도 존재한다. 병원에서 검사를 위해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30분이다.

각각의 검사도구에는 매뉴얼이라고 불리는 친절한 안내책자가 포함되어 있지만,

오..영어...영어


다른 나라의 언어를 오래 보는 것은

너두 나두 건강에 해롭다.

급한대로 하는 방법만 어찌어찌 확인하기도 벅차다.


그래서 대부분의 치료사들은 제한된 시간 내에 평가를 끝내기 위해 누군가가 기록한 작업이 아닌 정보들(진단, 장애유형 등등)을 통해 미리 예측해서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시도들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선입견’과 ‘편견’을 나도 모르게 끌고와 작업이 아닌 ‘장애’를 확인하는 검사를 하는 듯한 실수를 범하기도한다.


또다른 검사를 단축(?)시키려는 외부요인이 있다. 바로 병원 내 수많은 검사절차에 질려버린 보호자의 요구도 어린 치료사들에게는 큰 스트레스이다.  분명 안내받고 치료실로 오셨을 텐데 “그거 꼭 해야 해요?” “그냥 치료해주세요”... 가끔은 검사부터 해야 한다면 간혹 치료실에서 화를 내시는 분들도 계시다... 난감하다. 그래서, 아이의 기록은 엄마와 선생님이 “알고 있는” 수준에서 추정하고 기록한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흔히 “척 보면 안다”는 일부 치료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작업”이라는 부분은 개인의 내적 동기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척 보면 아는 작업치료사”는 궁예의 후예일 가능성이 크다.



환자를 만나는 직업은 간혹 나도 모르게 의뢰된 이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라는 전제로 사람을 대한다.

이러한 ‘선입견’은 진단이나 장애가 무엇인지에 따라 더욱 짙어져 ‘작업을 하는 사람’은 정작 보이지 않고, 작업을 방해할 것이라고 검사자에 의해 예상된 부분을 유도하는 질문들로 구성된 초기인터뷰로 검사를 이끌게 된다. 그렇게 정해진 답이 내려진다.


하지만, 이렇게 유도된 질문의 답으로 메워진 작업치료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속에는 자칫 아이의 잠재능력을 확인할 기회까지 뺏길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의 장애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는 사람들의 ‘편견’은 무시무시하다.


최근 만나게 된 아이가 다른 큰 병원의 유명한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보았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하고, 집에서 알아듣고 반응하는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 어머니에게


“네.. 그래 봐야 강아지 수준이죠..”


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유명하다는 그분의 장애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으로 아이의 장점은 엄마의 오해로 치부되었다.(퉷)


현재, 우리 이쁜 강아지는 치료시간에 눈으로 대화에 참여한다. 얼마 전 보호자에게 추천해드린 안구마우스로 컴퓨터 게임도 했다. 공부나 어려운 과제에는 동공 지진도 관찰된다.(아마 눈으로 욕하는 법도 배워가는 중이다.)...못하는게 없다.


작업치료 중재 전 아이를 분석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검사도구들...


혹시 당신은 미리 내놓은 결론에 따라 유도된 검사점수를 맞추고 있는것은 아닌가?

또, 검사도구를 단순히 “문제찾기”도구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검사 점수가 낮은 건 아이가 못난 게 아니고,

검사 점수가 낮은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지, 그 검사도구의 결과가 숫자로, 문서로 정리되었을 뿐이다.


검사도구의 매뉴얼을 차근차근 읽어본다면,

우리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그곳에 아주아주 중요한 내용이 쓰여있다.


“이 검사도구의 결과는

아이의 모든 발달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아이를 만날 뿐이고,

그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아이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아이를 추정하지 마라.


그리고, 가급적이면 아이가 할 수 있는, 하고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 검사를 시행했으면 한다.


변호사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면,

작업치료사에게는 ‘건강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치료사의 유니폼의 무게로부터 나오는 추정은 누군가에게 큰 사회적 낙인을 만든다. 당신이 유니폼을 입고, 아이를 만나는 순간 아이(클라이언트)의 작업 참여를 위한 중재 과정은 검사받는 동안 이미 시작되고 있다. 당신의 한마디는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감출 수도 있다.


우리는 아이를 만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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