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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후 Jun 09. 2021

엄지공주 다시 보기

알뿌리 식물 같은 엄청난 생명력의 엄지공주

작고 여리고 힘없는 울보 엄지공주.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작은 소녀.

엄지공주는 본인의 의지 없이 주변의 인물들에게 휘둘리며 살아가다 우연히 행운을 만나 잘 살게 된, 그저 운이 좋은 울보였을까?

혹자는 엄지공주가 예쁜 것 하나로 툭하면 울고 아무것도 혼자의 힘으로 해내지 못하는 무능력하고 의존적인 존재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평범하지 않은 엄지공주의 삶을 공감하지 못하는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그녀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사랑하는 엄지공주를 꽃나라 왕자에게 빼앗긴 다른 동물들의 시기 어린 질투 같은 것일 거라 생각한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지 않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처럼 본인이 그녀의 상황을 직접 겪는다면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


엄지공주는 우선 태생(?)이 남다르다.

(사전적으로 태생은 포유류에서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엄지공주는 사람의 형태이니 태생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인간의 엄마가 아닌 튤립 꽃 태생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적인 이야기로 보았을 때 성격이 순하고 여린 것으로 보인다.

동물로 치자면 육식보다는 초식에 가까울 것이고, 생물로 보자면 동물보다는 식물에 가까운 온순한 성격이었을 것이다. 게임 캐릭터로 치면 힐러 역할의 자연친화적이고 치유적인 성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타인에게 힐링을 해주지만 약해 보여서 타인이 자발적으로 돕게 만드는 관상초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너무나 약해 보이는 식물의 성질은 꽤나 끈질기다.

뽑아도 뽑아도, 잘라도 잘라도 계속 생겨난다.

이곳이 아니면 저곳에서 자라난다. 일정한 조건만 갖춰지면 무한대로 번식한다.

식물의 생명력은 동물을 능가하며, 단지 혼자 움직이지 못할 뿐, 엄청난 번식력과 생명력을 지녔다.

또한 엄지공주의 요람이었던 튤립은 알뿌리 식물로 겨우내 죽지 않고 땅속에 있다가 봄이 되면 새로운 꽃을 피워내는 강인한 식물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작은 엄지공주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알뿌리 같은 엄청난 생명력을 가졌을 것이다.

게다가 요정이 준 씨앗에서 나온 아이여서, 만약 엄마에게서 더 오랜 시간 보살핌을 받았다면 스스로 날개가 생기고 마법가루를 썼을지도 모른다.


 

▲ 요정 씨앗의 튤립 태생(?)인 그 작은 엄지공주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엄지공주는 작은 자신의 모습이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몸으로는 엄마를 도울 수도 없는, 도리어 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꽃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존재만으로도 보는 이에게 힐링을 해주지만 본인 스스로는 엄마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형 같은 아이였을 테고, 어디 가서 밟히지 않고 엄마 옆에서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존재였을 것이다.

엄마 역시 엄지공주를 작고 여려서 안아줄 수도 뽀뽀해 줄 수도 없는, 그저 꽃처럼 예뻐해 주고 보호해주어야만 하는 아이로 대했을 것이다.  이처럼 엄지공주는 엄마에게 보호받고 키워졌지만 어쩌면 여기서 본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이 학습되었을 수도 있다. 사람의 일을 할 수 없는 너무나 작은 사람.


그렇게 엄마 옆에서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자라던 어느 날, 바깥세상은 고사하고 집 안 구경도 다 못했는데 밤사이 두꺼비에게 납치되었다.

우락부락하고 거칠게 생긴 두꺼비는 생각보다 똑똑했고, 엄지공주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연잎 위에 올려놓았다.

엄지공주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도, 집으로 가는 길도 몰라 당황스럽고 슬프고 두려워서 울었다. 다정하게 돌봐주던 엄마도 보고 싶고, 따뜻하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로 달달 떨고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데 어디선가 물고기가 다가와 연잎 뿌리를 끊어주고 나비가 날아와서 연잎을 연못 밖으로 끌어 내보내 주었다.

이렇듯 주변의 착한 동물들이 예쁜 엄지공주를 돕고 싶어 서로 안달이 난 듯 도와준다.


본인 스스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냥 울어서, 예뻐서 도움을 받아서 얄밉다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쁘다는 것 때문에 안전한 엄마의 집에서 납치당하고 여기저기서 색시를 삼겠다고 달려드는 동물들 때문에 자꾸 황당한 일을 겪는다고 상상해보라. 그것은 세상에 나갈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작은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나 큰 풍파인 것이다.

당신이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원치 않는, 게다가 이곳저곳에서 납치를 당하면서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축축하고 우락부락한 두꺼비나 붕붕 대는 풍뎅이, 햇빛과 꽃을 싫어하고 뾰족한 손톱을 가진  두더지 같은 동물들의 집적거림이 끊임없이 들어온다면 항상 웃으며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그냥 잠깐의 집적거림이 아니라 색시가 되어 맘에도 없는 그 얼굴을 보면서  도망도 못 가고 평생 비위를 맞추라고 한다면...? 아... 상상만으로도 진저리 날것이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근육을 키워서 면상을 한 대 치고 도망가겠다고... ^^;;

그러나 엄지공주는 공격의 의지가 전혀 없는 힘이 약한 작고 어린 소녀이고 “요정”의 “씨앗 태생”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동화에서 보여주는 엄지공주는 잘 우는 성격이다.

당황스럽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제정신으로 웃을 수 있는 어린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떤 것도 혼자서 해낼 수 없고 자꾸만 원치 않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작은 소녀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눈물이었다.

'눈물은 마음의 아픔을 씻어주는 약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울고 나면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며 정신을 다시 안정적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엄지공주는 경험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두려움과 고통을 알아주는 친구도, 터놓고 말할 상대도 없는 엄지공주에게 눈물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것은 다시 살아갈 힘을 주며 지독한 현실을 버티게 해 주었을 것이다.


눈물은 순수함이다.

동화 속의 악당들은 잘 울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어른이 되면 대부분은 잘 울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예전만큼 순수하게 거리낌 없이 울기 힘들다.

울지 않기 때문에 어른이 되는 걸까, 어른처럼 보이려고 울음을 참는 걸까?

동화 속의 주인공들은 어쩌면 순수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눈물이 순수함을 잃지 않게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지공주는 긍정적이고 강인한 마음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그저 힘없이 울기만 하는 무기력한 소녀가 아니었을 거라는 것이다.

풍뎅이에게 버려져 길을 헤매고 다녔을 때도 엄지공주는 혼자 긴 시간을 살아냈다.

타는듯한 여름 땡볕도 이겨내고, 모진 바람을 견뎌냈고, 주먹만 한 빗방울이 쏟아지는 곳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렇게 힘든 고비를 버티다 얼어 죽기 직전, 생명의 은인인 들쥐 할머니에 의해 구출되었지만 말이다.

들쥐 할머니는 분명 생명의 은인이지만 온전히 좋기만 한 분은 아니었던 듯싶다. 엄지공주를 거둬주고 키워줬지만 엄지공주와 두더지와의 결혼을 통해 한몫을 챙기고 싶었던 듯하다. 혹은 순수하게 엄지공주가 돈이 많은 곳에 시집을 가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들쥐 할머니는 엄지공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더지와의 결혼을 강요한다.

만약 엄지공주가 본인의 의지 없이 끌려다니는 소녀였다면 “찍”소리 없이 들쥐 할머니의 바람대로 조용히 결혼했을 것이고 쓰러져있는 제비가 아프건 말건 쓱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두더지와 결혼해야 하는 그 암울한 상황에서도 제비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은 정신적인 강인함과 여유,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엄마나 들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었기에 혹은 주변의 동물들에게 받은 도움과 친절을 다시 되갚는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들쥐 할머니에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엄지공주는 본인의 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두더지와 결혼하기 싫다고... 하지만 결국 들쥐 할머니의 욕심과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 때문에 싫은 결혼을 강요당하고 끝까지 거부하지는 못한다.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날…

마지막으로 따뜻한 햇볕을 보러 다녀오겠다며 굴 밖으로 나간 엄지공주는 결국 제비를 타고 남쪽으로 날아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누가 엄지공주였어도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돌봐주어 믿고 있던 들쥐 할머니가 본인의 욕심 때문에 엄지공주를 불행으로 몰고 가는데, 두더지와 결혼하면 비타민 D 결핍과 우울증으로 정신이 말라서 시들어 죽을 것 같은데, 당장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면 평생 도망칠 기회만 노리는 탈옥수 같은 존재가 될 텐데...

마지막으로 햇빛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밖에 나갔을 때, 제비가 아니었어도 엄지공주는 분명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타인의 결정에 의해 좌우되도록 그냥 그렇게 내 버려두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만난 꽃나라 왕자는 그간 엄지공주와 결혼하려던 여타의 동물들보다 훨씬 더 다정하고 매너가 있었고, 엄지공주도 두 볼이 상기될 정도로 맘에 들어했으므로 해피엔딩이 맞는 듯하다.

꽃나라 왕자는 최소한 엄지공주 본인의 의지와 선택으로 만난 사람이니까 납치나 강제결혼같은 경우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니 말이다.

(결혼 후의 현실이야 그 다음의 이야기이고…)


엄지공주는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괴로운 현실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하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었고,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것은 끊임없이 견뎌내고 살아내고자 하는 알뿌리 같은 내면의 힘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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