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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Apr 15. 2018

친구

백석(白石)의 시 <고향>을 읽다가

나는 문득 막역지간이라는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새삼스레 우정을 논할 나이도 아니련만

나도 모르게 莫逆之間이라는 한자를 칠판에 쓰고

아이들에게 망양록(亡羊錄)에 나오는 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었다.


옛날에 한 노인이 그 아들에게 물었다.

“너에게 친구가 있느냐?”

아들이 대답하기를,

“저에게는 형제처럼 정을 나누는 친구도 있고

나고 듦을 함께하는 친구도 있고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잘못을 지적해주는 친구도 있고

생사를 같이할만한 친구도 여럿 있습니다.”

하더란다.

“애비에게는 다만 한 명의 친구밖에 없는데

너는 어찌 그리도 많은 친구를 가졌단 말이냐?

어디 한 번 네 친구들을 시험해보자꾸나.”

하고는 돼지를 잡아 흰 띠로 묶고

거적으로 덮어 죽은 사람인 것처럼 한 후

지게에 짊어지고 밤에 친구의 집을 찾아가게 했단다.

아들이 친구의 집을 찾아가 부탁하기를,

“여보게, 내가 여차여차하여 그만 사람을 죽이고 말았으니

나를 좀 숨겨주고 절대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 주게!”

하였으나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지 뭐냐.

“그래서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나요, 선생님?”

그러자 이를 잠자코 지켜 본 노인이 이르기를,

“아무도 너를 숨겨주는 이가 없는데

그래도 친구가 있다고 하겠느냐?

성 남쪽에 내 친구 아무개가 살고 있으니

한 번 그에게 가서 부탁해보자꾸나.”

하고는 몸소 지게를 짊어지고

친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친구는 얼른 노인을 골방으로 데려가 숨기고 술을 내어와 권하면서

“그래, 어디 다친 데는 없던가? 그대가 불행히 이런 일을 당하였으니

내 응당 그대와 함께 도망하겠네. 처자식이 대수겠는가?”

하더란다.


아, 모름지기 친구란 그런 것이라고

그래야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아이들의 입에서

“선생님께도 그런 친구가 있나요?”

라는 질문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교실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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