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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Apr 15. 2018

묵호를 그리며

강태공인 사내는 물고기를 낚고

나는 시어(詩魚)를 낚는다

쓰디쓴 소주 한 잔을 미끼삼아

철렁이는 파도

육중한 냉동 창고가 바라다 보이는

묵호(墨湖)항 까막바위 아래 쭈그리고 앉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해 먼 바다 어디쯤에 살고 있을

심해어(深海魚)를 추억한다

한때는

부두의 적탄장에서 날아오르는 탄분 위나

바닷물로 질퍽이던 붉은 언덕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오징어다리를 물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상기된 얼굴에서도 볼 수 있었고

오만가지 사투리로 욕설을 퍼부어대던 아낙네들과

미스코리아 출신임이 분명한 카네기다방의 얼굴마담과

송판냄새 물씬 풍기는 제재소 담벽

양화점 뒤편의 창녀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아무도 본 적 없고

아무도 들은 적 없고

아무도 잡은 적 없어

아득한 옛날의 전설이 되어버린 신비의 물고기

강태공은 간간이 팔뚝만한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데

나는 주섬주섬 빈 술병을 거두어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등대에 오른다

바다밖에 없어

바다 말고는 아무 것도 보여줄 게 없는 등대

먹빛 바다에 외로운 등대가 불빛을 드리울 즈음

논골담길 허물어져가는 담벼락에

박제가 된 시어 몇 마리

덩그라니 걸려 있었다


2013. 1. 18. 현해당-

*내용 중 일부는 소설가 심상대 님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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