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해당 이종헌 Oct 09. 2017

누구세요?

  가족이 생겼다. 둘째가 태어나고 17년 만이니 가족들이 모두 흥분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둘째 아이 친구 집에서 기르던 새끼 고양인데 길거리에 버려진 것을 거둔 것이라고 했다. 비좁은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서 그동안 반려동물 기르는 일을 탐탁지 않게 여겼었는데, 본래 집에서 기르던 것도 아니고 어미 잃은 불쌍한 녀석이라는 말에 왠지 짠한 생각이 들어 아내와 아이가 하는 대로 맡겨두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개,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과 아주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양이는 몰라도 개는 어려서부터 나도 아주 좋아했었고, 특히 큰 아이가 세 살 때인가 설을 맞아 고향에 갔다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하고 등에 식은땀이 난다. 그때 시골집에서 기르던 복실이라는 개가 있었는데, 진돗개 혹은 진돗개 잡종으로 추정되는, 건너편 양계장 주인이 쏜 공기총에 맞아 다리를 절뚝이며 찾아온 것을 아버지가 거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다소 외진 곳이어서 인가는 없고 좀 떨어진 곳에 양계장만 하나가 있었는데 복실이는 바로 그 양계장 닭을 야금야금 잡아먹고살던 떠돌이 개였다. 아버지의 정성스러운 치료에 감동했는지 복실이는 그때부터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타고난 야성은 어쩔 수 없었는지 밤이 되면 여기저기 산속을 헤매고 다니며 입에 피를 묻히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 복실이를 세 살짜리 철없는 아이가 끔찍이도 좋아하여 온종일 쫓아다니면서 목을 끌어안고 등에 올라타고 별짓을 다해댔으니... 그래도 복실이는 싫은 내색 한 번 안 했다.  그래서 사달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음력설이었으니 엄동설한인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아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여기저기 집 안팎을 뒤지며 야단법석을 떠는 와중에 가만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무래도 복실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 복실이가 잘 간다는 집 뒤편 산 중턱을 올라가 보니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하여 정신없이 달려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멀리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 곁에서 복실이가 이쪽을 향해 반갑게 꼬리를 흔들어 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고맙던지... 아이가 개를 따라갔는지, 개가 아이를 따라갔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끝까지 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준 복실이를 생각하면 아무리 짐승이라도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큰 아이는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청년이 되었는데, 지금도 어쩌다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날이면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복실이를 추억하곤 한다.

작은 플라스틱 케이지에 담겨 집으로 온 녀석은 만 하루가 지났음에도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하고는 금세 친해져 그다지 경계하는 빛을 보이지 않는데 나이 든 주인은 생긴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꼬박 밤을 새운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고, 아내는 녀석들이 좋아한다는 음악을 틀어놓은 채 새로 산 변기에 모래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모래도 그냥 모래가 아니고 변기에 버릴 수 있도록 물에 잘 녹는 천연 곡물로 만든 것이란다. 그나저나 이름을 지어야 할 텐데... 갑작스레 쳐들어온 녀석이라 미리 생각해 놓은 것도 없고 이를 어쩐다?  201411 hyunhaedang


이전 07화 유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