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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Oct 09. 2017

고양이 유치원

휴일 아침 느긋한 기분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기사들을 검색하고 있으려니 고양이 유치원이 성업 중이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아침 출근길마다 나보다 앞서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우리 집 고양이 모모를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많았는데 유치원이 생겼다니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만치 않을 경비는 어떻게? 경비는 그렇다 쳐도 날마다 등하교는 또 어떻게 하고? 학부모 총회라도 열리는 날엔?      


어찌하다 보니 고양이 두 마리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길고양이 출신인 롱이와 나름 족보 있는 집안에서 온 모모는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확연히 다르다. 전형적인 페르시안 고양이인 모모는 체구가 작고 털이 길며 성격이 유순하다. 그에 반해 길고양이 출신인 롱은 뱅갈고양이 후손으로 체구가 크고 털이 짧으며 의심이 많고 공격적이다. 


모모는 집 밖에 나가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잘 따르며 특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별한 장난감이 없으니 종이박스나 플라스틱 바구니, 비닐봉지 등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장난감이다. 가끔 사람보다 더 기발한 아이디어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볼 때면 창의성이 결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실감한다. 


한편 롱은 길고양이 출신으로 아직 야성이 많이 남아있어서인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고 그런 까닭에 집 밖에 나가는 것도 극도로 꺼려한다. 가끔 병원에라도 가는 날이면 거의 전쟁 수준이다. 몸무게 8㎏이 넘는 녀석을 캐리어에 넣는 일도 보통 힘든 게 아니지만 병원에 도착해서는 아무리 달래도 캐리어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니 억지로 끌어내다 보면 물리고 긁히고 도무지 팔이 성한 곳이 없다. 


이렇게 성격이 다르다 보니 둘 사이도 그저 데면데면하다. 롱이 가끔씩 난폭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모모는 가능하면 롱과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하고 롱 역시 굳이 모모와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둘이 서로 사이좋게 어울려 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한 길 사람 속도 모르는 세상에 하물며 고양이의 속내를 어찌 알겠는가?      


지인들과 대화중에 어쩌다 고양이 얘기가 나오면 대개 고양이는 영물이어서 집안에 두면 안 된다거나 또 반드시 주인에게 해코지를 한다는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그러면서 왜 야생으로 살도록 놔두지 않고 집에 데려다 기르면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핀잔을 놓는다. 생각해 보니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고양이는 고양대로의 생존 방식이 있고 사람은 사람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는 법인데 멀쩡한 녀석들을 데려다가 방안에 가두고 거기다가 몹쓸 짓[중성화 수술]까지 더해 종족마저 보존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자 달생편에, 새로서 새를 기른다고 하는 ‘이조 양조(以鳥養鳥)’가 있다. 옛날 노나라 사당에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노나라 군주는 좋아서 소, 양, 돼지를 요리해 대접하고 순임금의 음악인 구소를 연주해 즐겁게 하였으나 새는 근심과 슬픔에 젖어 먹고 마시지 못하다가 결국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고 한다.      


로드킬로 인해 비명횡사할 위험도 없고, 한 겨울 먹이를 찾아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을 어슬렁거릴 필요도 없으니 우리 집 롱이 모모는 분명 축복받은 고양이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보호를 명분으로 중성화 수술을 시켜서 비좁은 아파트 안에 감금하였으니 비록 안락한 잠자리와 풍족한 먹이가 보장된다고 해도, 저 아파트 지하실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썩은 짐승의 고기로 허기를 달래면서도 새끼들의 재롱을 보며 하루의 피로를 씻는 길고양이들의 즐거움만 하겠는가? 더구나 둘이 야생에서 만났다면 부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나로 인해 남녀의 즐거움도 모르는 석남 석녀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롱이 모모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치원에 보내기는 물적, 시간적 제약이 뒤따르니 이를 어쩌랴?  201612 hyunhae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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