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곰 Oct 06. 2020

#14. 선생님, 집에 안 가요?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산다는 것

내가 맡는 반은 유독 방과 후에 오래 눌러앉는 아이들이 많다. 모르는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이 반 애들은 선생님을 좋아하나 보네~ 그러니까 집에 안 가지."하고 말한다. 아니다. 애들은 지들끼리 노는 게 좋으니까 남는 거다. (올해는 코로나로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이상하다.)


보통 아이들은 반에서 방과후교실이나 학원에 가기 전 남는 시간을 때운다. 공놀이를 하다가 시계를 깨 먹고, 틱톡으로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보드게임을 하다가 싸우는 난리판 속에서 나는 혼자 자판을 두드린다. 아무래도 소음에 역치가 높은가 보다. 하도 시끄러우니 담임이 없는 줄 알고 혼내러 왔다가 내가 멍하니 일하고 있는 걸 알고 옆 반 선생님과 서로 머쓱해한 적도 많다.  


몸이 힘들거나 기분이 안 좋거나 작은 것도 거슬리는 날이 있다.

그러면 아이들이 교실에 침입한 것처럼 느껴진다. 방과 후에 남아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너네 집에 안 가냐! 집에 좀 가라!"

스스로도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애들과 같이 지내는 게 내 일인데 때로는 애들이 귀찮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게 좀 딜레마다.


왜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가 없는 걸까.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건가.


요즘엔 모든 일을 성심성의껏 하고 싶다.

어떤 이는 관성에 젖는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그것이 편한 길이라고 한다. 교사는 열심히 하기도 쉽고 풀어지기도 쉬운 직업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이전까지 전임자들이 해왔던 대로 하는 것. 숫자를 바꿔서 공문을 올리고, 지도서 그대로 수업을 하고, 되도록 아이들 신경 쓰지 않으면서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는 방식.


오늘도 공문을 쓰다가 내가 '작년의 나'에도 못 미칠 만큼 일을 대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종일 정신은 딴 데 가 있고,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도 '아직 날짜가 남았으니까~' 하다가 결국 기한을 놓치고, 그렇게 자책하다 시간을 다 보내기 십상이다. 

네 시 반, 탁구교실에서 신나게 땀을 흘리고 온 주헌이가 가방을 챙기며 묻는다.


"그런데 선생님은 집에 안 가요? 왜 맨날 늦게 가요?"

"그러게... 왜 맨날 늦게 갈까."


아이들한테는 늘 변하라고, 좀 고치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도 조금 다르게 하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어제와는 다르게, 그보다 조금 낫게 만드는 것이 너무도 힘에 부친다. 이런 날에는 표면상으로는 여러 일을 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만 하게 된다.

 니체는 영원회귀 법칙을 말하면서 현재의   영원히 반복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 이런 날, 나는 작아진다.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적어도 지금 나에게 혁명은 관성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것이다. 중력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권태와 대충의 늪에서 벗어나 진짜 몰입하며 살고 싶다. 뿌듯한 마음으로 퇴근하고 싶다.

교사가 온전히 하루를 살아낼 때, 아이들 앞에서도 떳떳하게 미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3. 우리 반에는 물음표 요정이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