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우리 반 회장 주헌이는 참 귀엽고 특이한 아이다.
이 아이는 점심시간마다 급우들의 주목을 끄는 재주가 있다.
반찬으로 나온 모든 것을 비벼먹기 때문이다.
사건이 커진 건 어느 날 주헌이가 디저트로 나온 에그타르트를 한 데 섞어먹으면서부터였다.
아이들이 술렁였다.
다음 날 예정된 디저트가 블루베리 요거트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하니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
나는 오전부터 아이들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골자는 주로 이런 것이었다.
"선생님, 주헌이가 요거트도 비벼 먹는대요. 으으..."
"선생님, 주헌이 좀 말려주세요~ 얘, 진짜 이상해요."
대망의 급식시간, 아이들은 주헌이 식판을 힐끔대거나 주위를 서성이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나는 기웃대는 아이들에게 훠이훠이 손짓을 하고 나서 묵묵히 밥을 먹었다.
그 날, 주헌이는 쏟아진 관심에 부응하듯 요거트까지 함께 비벼먹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볼 때까지 부른다.)
이거 보세요~ 맛있겠죠? 먹고 싶죠? 음하하하하"
물론 내 쪽으로 식판을 내밀며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거트 사건으로 왜인지 자신감을 얻은 주헌이는 본격적으로 급식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얘들아, 이거 봐~ 맛있겠지? 너희도 비벼 먹어봐. 진-챠(꼭 이렇게 발음한다.) 맛있어."
점심시간마다 비빔 전도사가 되어 급우들을 끌어들이기에 바빴다.
익숙해진 옆 자리 아이들이 고개를 박고 뚝심 있게 식판을 비우는 동안 멋모르고 가까이 온 아이들은 기겁하며 도망을 쳤다. 친구들의 아우성에 굴하지 않고 활기차게 설교를 하는 주헌이를 위해 어디선가 다 비벼먹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변호도 해줬다.
친구들이 시들해지자 주헌이는 선생님에게 끈기있게 식판을 보여주었다.
"맛있겠다야. 주헌아, 너는 전주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심드렁하게 대꾸해주면 엄청나게 좋아했다.
감귤푸딩이 나왔던 날은 좀 심상치 않았다. '이건 아니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비벼먹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몇몇이 어린이 회의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편할 수는 있지만 개인의 취향인데 이걸로 토의를 하기는 힘들지. 우리 반 전체의 문제라고 느껴지면 다시 이야기해보자."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친구들이 싫어하면 푸딩은 안 섞겠다던 주헌이는 고민을 조금 하다 "역시 비벼먹는 게 좋겠어~!!" 하고 뿌듯하게 수저를 들었다. 다시 주위가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옆에 앉은 하원이가 한숨을 푹 쉬며 한 마디 했다.
아 그럴 수도 있지~!
나는 그 날 오후에 차이를 차별로 대하지 않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친구의 식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했다며 하원이를 폭풍 칭찬했다.
감동에 찬 나의 장광설로 소동은 일단락됐다.
주헌이는 요즘도 밥을 비벼먹는다.
왜 비벼먹냐고 물으니 이렇게 먹어야 맛있고, 영양소도 한 번에 섭취할 수 있어 일석이조란다.
그에 따르면, 비벼먹기에도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절대 김치는 넣지 않는 것. 김치 맛이 세서 비빔밥 맛을 죽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비빔교 신도를 늘리려고 애쓰는 중인데 애석하게도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다. (나만 은근히 설득 당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차이를 인정하고, 함부로 차별하면 안 된다고 질리도록 가르친다.
그렇지만 '특이하고, 이상하고, 별난' 타인과 공존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다소 과격한(?) 식성을 가진 친구도 그러할진대 외모, 나이, 국적, 인종, 성별, 성적 지향이 천차만별인 세상 사람들은 오죽할까.
교과서 속 명제는 2D지만 현실은 4D다. 우리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 속에서, 객관식이 아니라 서술형인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차이는 쉽게 차별이 된다. 편견에는 늘 그럴듯한 이유가 붙는다.
주헌이의 비빔밥은 나와 우리 반 학생들에게 무엇보다도 좋은 시험 문제가 됐다.
못 본 척하고 싶은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삶을 뚫고 불쑥불쑥 튀어나올 것이다.
더 나은 답을 써 내려가기 위해 내일은 급식을 살짝 섞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