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인천국제공항에서 강아지 케이지 구하기
코로나 직격탄을 맞고 어김없이 텅 빈 공항에서 근무하던 날이었다. 여행 가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그나마 있는 승객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뿐. 멀리서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오는 서양인 탑승객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어디로 가시나요?”
“애틀랜타로 갑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애틀랜타행 비행기에 탑승할 강아지는 아까 다 체크인했는데... 비행기에는 반려동물이 최대로 탑승할 수 있는 마리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항공사는 미리 예약을 받고, 사전에 승인을 해준다.
“고객님 혹시 사전에 반려동물 동반 서비스 예약을 하셨나요?”
“네. 했는데요.”
“잠시 고객님 예약 기록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고객의 예약 기록을 확인해보니 미국인 승객은 코드쉐어(공동운항) 항공사에 반려동물 동반 서비스를 신청했으나 기존 예약으로 인해 허용 마리 수가 초과되어 신청이 반려되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고객은 그 사이 연락처가 바뀌어서 신청이 불가하다는 메시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반려동물과 함께 가시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미국인 승객은 울음을 터뜨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늘 비행기를 꼭 타야 되는데, 강아지를 내버려 두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당황했을 것이다. 작고 귀여운 갈색의 포메라니안과 함께 카운터에서 울고 있는 승객을 보고 있는데 너무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이 승객을 강아지와 함께 비행기에 태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본 결과 몇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고객님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비즈니스 클래스로 티켓을 업그레이드하시면 비즈니스 클래스에는 아직 한 마리 여유가 있어서 동반 탑승이 가능합니다. 두 번째는 내일 비행기로 티켓 일정을 조정하는 겁니다. 마지막 방법은 강아지와 승객의 동반 탑승이 아니라 강아지는 화물칸으로 태우는 방법입니다.”
보통 7KG가 넘지 않는 강아지는 승객의 발 밑에 케이지를 두고 기내에 같이 탑승한다. 승객은 강아지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갈 수 있고, 강아지는 주인과 떨어지 않아 불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7KG가 넘는 강아지는 승객들의 캐리어가 실리는 화물칸으로만 운송이 가능한데, 요즘 비행기에는 화물칸에도 온도조절 장치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무리 없이 운송이 가능하다. 승객은 마지막 방법을 택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강아지를 화물칸에 태우기 위해서는 철망이 달려있는 하드케이지가 반드시 필요한 것! 공항에는 강아지 용품을 파는 곳이 없거니와 비행기 출발 시간 한 시간 반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케이지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승객이 모르는 곳에 가서 케이지를 제 시간 안에 구해올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어디에 파는지라도 알아봐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번뜩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24시간 동물 병원에 연락을 해보는 것. 영종도에 위치한 모든 24시간 동물 병원에 연락을 해봤지만 케이지는 없다고 했다. 점점 범위를 넓혀 서울 쪽 까지 연락을 해보는 수밖에... 몇 차례 연락을 해보았더니 강서구에 있는 한 동물병원에 규격에 맞는 케이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 상 강서구까지 왕복하면 비행기는 이미 떠나 있을 시간인 게 문제였다.
“일단 강아지 케이지를 파는 곳은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가지고 오는 게 문제네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또다시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퀵 서비스에 연락을 해보았다. 그런데 퀵 서비스 업체도 배달 기사가 강서구 동물 병원에 가는 시간과 동물 병원에서 인천공항까지 오는 시간을 합치면 한 시간 반 안에 못 온다는 단호한 대답만 전달해줄 뿐이었다.
가까스로 케이지를 파는 곳을 찾았는데, 가지고 올 시간이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승객과 나는 점점 더 발을 동동 굴렀다.
방법이 없는 걸까.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 보다. 본래 여행이 필요한 서류나 물품들은 본인이 준비해서 와야 하기에, 항공사 직원이 이렇게까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는다. ‘안타깝지만 오늘은 힘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수속 거절하는 것이 내가 했어야 할 일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희망을 승객한테 보여준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이 승객을 핸들링하고 있는 것을 계속 보고 계시던 매니저님이 다가오셨다. 본래 업무도 못하고 한 시간 째 이 승객만 붙잡고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도 죄송한데 매니저님이 해결책을 들고 오셨다.
“지금 케이지만 들고 공항에 오면 되는 거지? 그럼 내가 남편한테 부탁할게.”
그렇다. 오늘은 마침 토요일이어서 보통 직장인은 쉬는 날이었고, 마침 매니저님 댁이 강서구였던 것이다. 그렇게 정말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강아지 케이지가 공항으로 도착했다. 그것도 수속 마감 오 분 전에.
다행스럽게도 그 승객은 여정 변경 없이 원래 계획대로 강아지를 데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한 시간 반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승객은 비행기 출발 시간을 보며 애를 태웠는지 티켓을 주자마자 고맙다는 인사 한 번 없이 출국장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해냈다는 뿌듯함을 속으로 느끼고 있었던 터라 내심 서운하긴 했으나 승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게이트로 뛰어가 무사히 비행기 좌석에 앉으면 그때 승객은 마음속으로 고마워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