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생기나요?
26년 1월 28일 오후 04시 50분
요 며칠 계속 마음이 삐딱하다. 윗분과의 관계설정에서 조금씩 삐뚤어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걱정이 된다. ‘”네, 네” 하면서 ‘예스맨’ 다운 기질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윗분과의 관계설정이 언제나 어렵다. 내가 변화면 되는데, 내가 바뀌면 되는데, 몇 번이고 마음을 먹고 행동으로 옮겨 보려 해도 모난 기질이 어느새 빼꼼히 고개를 들고 나와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하다.
말을 아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더더욱 하면 안 된다. 그런데 말을 아끼다 보니 속병이 생기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러다가 내가 제명에 못 살 거 같다. 그래서 실컷 혼자 욕도 해보고 다른 동료들과 험담을 해봐도 결국 모든 대미지는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 참 어렵다.
그래서 찾은 방법 중에 하나가 글쓰기다. 말로 못한 말, 글로 열심히 써보는 거다. 너는 이래서 잘못했고, 그 잘못함으로 인해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었는데, 넌 그것도 모르고 앞뒤 문맥 따지지 않고, 니 하고 싶은 말만 토해내고 있으니 난 정말 힘이 든다. 내가 정말 몇 년만 더 젊었었도 이런 꼴 보기 싫어 그만두겠다고 했을 건데, 내 나이와 요즘 경제 여건이 나아지지 않으니 이 또한 어쩌냐, 참고 넘어가는 것이다. 너 이렇게 운 좋은 줄 알아라라고 퍼부어 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설령 그렇게 나도 나의 배설물을 토해 냈을 때 그 순간 속에 있는 무언가가 확 내려가는 쾌감을 느낄 줄 모르나, 그 후 밀려올 후 폭풍은 여름철 태풍보다 강력하게 나의 삶을 뒤흔들어 놓고, 어지럽혀 놓을게 자명하다. 그래서 하지 못한다. 오늘도 참자. 이 또한 지나가겠지 생각하며 혼자 위안을 삼고 위로를 하고 독려를 한다.
대부분의 월급쟁이 및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삶이 이럴 것이다. 물론 안 그런 사람이 더 많기를 바란다. 나는 현재 그렇다. 계속 윗분들과 케미 좋게 뭘 만들어 가야 하는데, 시대는 변했어도 아직 옛사람의 사고방식이 남아 있어, 윗분들께 어떻게 하면 잘 보일지 알고, 그렇게 하는 걸 지극히 싫어하는 1일이긴 한데, 계속 뭔가 어긋나서 삐뚤어지고 있다. 이제 그분들만 봐도 너무 싫고, 소통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침묵으로 소통의 창구를 닫아 버린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나이를 먹어 사회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지고 요령도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초년생과 같은 고민과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아직 덜 성숙했나 싶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하면 노련해지고 익숙해지는 걸까? 과연 그 시간이 오려면 얼마 정도 사회에서 굴러먹어야 그런 노련미를 발산할 수 있을까? 혹 이건 시간의 문제라기 보단 사람의 문제일까? 가끔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너무 능글맞게 선배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는데, 이분은 이런 노련미를 언제 체득한 걸까? 아님 이것도 자기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연기일까? 우리 모두 살아가기 위해 각자만의 방법으로 노련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에게 노련미는 없는 것 같다. 매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오래 하고 시간이 쌓이면 이전보다 쉬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만은 안다. 그래도 예전보다 제법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10여분 정도는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게 어쩌면 내가 없다고 생각하는 노련미가 생긴 결과인 걸까?
매일매일,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쌓여가는 시간들 속에 사회의 부딪힘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노련미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 지금은 얼마이고 몇 시간을 더 투자하면 기초에서 기본으로, 그다음은 고급으로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켜준다고 가르쳐 주는 학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새로운 만남이 힘겨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 나에게 또 다른 에너지와 노련미를 성장시켜 주는 시간이면 좋겠다. 오늘도 하루를 견디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당신께 응원을 보낸다. 나는 노련미를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