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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게 Nov 22. 2023

내 팔자에 ‘딩크’라고 써있나요?

충격! 아이 없고 철도 없는 두 아줌마, 유명 철학원에 갔더니...

신년을 앞두고 친구와 철학원에 다녀왔다.

(쫌) 넓고 (아~주) 얕은 지식인답게 명리학에도 살짝 발을 담갔던 나로선, 대충 내 사주가 어떤지 알고 있었기에 돈 주고 사주를 본 지는 꽤 오랜만이었다. 지난 술자리에서 얼큰히 취한 친구가 1급 비밀인 양 '기가 막히게 용한 철학원 예약에 성공했는데 너도 껴줄까?' 속삭인 덕에 급조된 행사였다.



20대 초중반, 그러니까 대학생 때부터 취준생 때까진 사주를 참 많이도 보러 다녔다.

당시 사주카페 같은 곳이 유행이었고, 길게 웨이팅 줄이 늘어선 사주&타로 천막도 많았다. 대부분의 20대 청춘들이 그렇듯- 안개가 자욱한 길을 홀로 걷듯 미래가 겁나고, 현재가 불안했던 나는 애써 미리 들여다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그깟 취업운과 연애운을 참 열심히도 들쳐 봤다.    


20대 후반, 결혼 직전에 남편과 궁합을 본 적도 있다.

더 이상 사주를 통해 궁금한 게 없을 때였는지, 혹은 남편을 보고 '이 남자다!' 싶어서였는지- 연애운 한번 보지 않고 1년의 순탄한 연애 후, 원하는 예식장이 비는 날짜에 맞춰 결혼 날짜를 잡았다.

이미 날까지 잡은 마당에 굳이 궁합을 본 건, 당시 같이 일했던 선배의 '목동 맘들과 방송국 놈들이 몰래 가는 철학원이 있다. 아이의 인생 혹은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를 기가 막히게 브리핑해 준다'는 제보에 혹해서였다. 그 선배 덕분에 예약권을 겨우 얻어 사주를 보러 갔고, 꽤 만족스럽고 유용한 인생 브리핑을 들었던 것 같다. 나이 때마다 겪을 사건과 주의할 것들을 (심지어 죽는 날까지) 알려줬는데, 시간이 흐르며 그 내용들이 희미해져 실전에 활용은 못했다.


30대 초반엔 일이 너무 힘들어 커리어에 대한 조언을 구하러 철학원을 찾은 적도 있다.

나름 명리학을 공부한 이후여서 그런지 지불한 돈에 비해 상담받은 내용이 썩 새롭거나 유용하지는 못하단 느낌이 들어, 그때부터는 돈 주고 사주를 보지 않았다. 그로부터 4~5년 만에 내돈내산 철학원 방문이었다.



남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그날의 철학관


정말 용~하다는 간증에 가까운 후기들 덕분일까- 어딘가 강렬한 포스의 역술가 아저씨 앞에 절로 공손해지는 태도로 나의 생년월일을 말씀드렸다. (사주 전문가, 사주쟁이, 명리학자, 역술가 선생님.. 뭐라고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울지 한참 고민 한 끝에 '아저씨'로 통칭하기로 함)

만세력을 살펴보던 아저씨는 내 사주를 풀이하기 시작했는데, '큰 산(이런 사주는 어쩌고 저쩌고), 흙과 물이 많아서 (어쩌고 저쩌고), 불과 금이 부족해서 (어쩌고 저쩌고)...' 역시 나도 잘 아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도 해석자마다 달라지는 사주풀이의 스토리텔링은 늘 흥미롭기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재밌게 듣고 있는 와중에, 다소 충격적인 표현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이런 여자 중매 절대 안 서줘"

내 멘탈을 띵- 하게 때린 과격한 멘트에 비해 뒤따르는 이유는 좀 허무했다. '살림을 안 해'

내 사주는 '남자 사주'라서(이 또한 참 많이 들은 얘기..) 여자 다운 '아내, 엄마' 역할에 안 맞는다는 것.


말이 나온 김에 (나 한정) 최대의 난제, 6년 넘게 답을 미루고 있는-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에 대해 물었다.

어리석은 질문이란 건 알고 있다.

"지금은 아이 없는 삶에 만족하는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요?"

"아이라는 연결고리가 없어서 이혼이라도 하면 어떡하죠? 제 사주에 이혼수는 없죠?'"

"아이를 갖더라도 노산인데,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그런 것도 사주에 나오나요?"

"남편도 이대로 괜찮다고 하는데, 속마음은 아니면 어쩌죠? 마음이 바뀌면 어쩌죠? 사주로 알 수 있나요?"


질문 보단 푸념에 가까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을 늘어놓았다. 사주 아저씨에게 해답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꼭 해야 하는 선택을 수년간 미루며 쌓이고 쌓인 물음표들이 요즘 틈만 나면 터져 나온다.    



사실 사주카페를 들락거리던 20대 초반부터, 사주를 보러 가면 응당 2세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결혼할 남자가 나타난 20대 후반 이후에는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20대 때는 아이가 있다. 특히 딸이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던 것 같다.

결혼 직전에 찾아간 (인생 브리핑을 해주는) 유명 철학원에서도 삼십몇 살에 아이를 낳는다고 했는데, 그때도 딸이 하나 라고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남편 사주에도 딸이 하나 있는데 엄~청 예쁜 딸이 나올 거라고 해서 우리 남편이 로또라도 맞은냥 기뻐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30대에도 아이에 대해 물어보면 있긴 있다고 했다. 이상한 건 생년월일은 그대로인데, 나이가 들수록 2세에 대한 사주풀이가 조금씩 소극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몇 살에 낳을 거다. 이런 이런 아이다'에서 '아이가 있긴 있는데, 노력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철학원에선 '몸을 만들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 말에 내가 '굳이 그렇게 까진..' 식으로 시큰둥하자, 아저씨 입에서 또다시 충격적인 표현이 튀어나왔다.


"이런 사주는 그냥 개 새끼 키우면 되지~ 이런 생각한다고, 왜 내 새끼 내버려 두고 개 새끼를 키워~?!"

개 새끼, 내 새끼 .. <쇼미 더 머니> 디스배틀 마냥 라임까지 맛깔나게 살린 멘트에 웃음이 터지는 것도 잠시-


"왜 남의 집 대를 끊기게 하냐고! 애를 낳아야지 당연히~"라는 아저씨의 호통에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 드렸다. 여기까지 타격감은 제로였다. 그런데 진짜 킥은 뒤에 나왔다.


"남들이 다 낳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근데 왜 안 낳냐고!", "근데 진짜 문제는- 이게 문제인지를 자기만 몰라! 남들 낳는다고 나도 낳아야 하나? 이렇게 생각을 해.. 이게 아주 문제인데 그걸 몰라", "착하긴 겁나 착한 대신 생각 없고, 계획 없고, 이기적인 사주야!"

속사포랩처럼 이어지는 디스에 정신이 얼얼했다. 근데 진짜 용하긴 용한 게-

'남들은 다 낳는다 = 나도 낳아야 한다' 이건 진짜, 진심, 도저히 내 머리로썬 절대 이해가 안 되는 논리이고,

'대다수가 하는 게 대부분 맞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보면 공복에도 고구마를 먹은 듯 속이 답답해진다. 이 철학관 꽤 하네..



아저씨에게 '감사합니다~' 하며 상담 비용을 드리고 나왔다. 귀담아듣지도 않을 얘기를 5만 원이나 주고 들었으니, '돈 잘 버는데, 쓰는 건 더 잘 쓴다'는 말 또한 맞는 거 같다.

그렇다면 '남들 낳으니까 나도 낳아야지'가 안 되는 나는 정말 (문제인 줄도 몰라서 더) 문제인 걸까.

'내 새끼 대신 개 새끼를 키우는' 내 친구(나를 철학원에 데려간 친구는 공교롭게도 아이 없이 강아지를 키우는 2인 1견 가족이다)는 정말 이상한 걸까.


착하지만 생각이 없단 소릴 들은 나는- 그래도 그 철학원 아저씨가 싫지 않고, 그가 떠든 얘기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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